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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Jan 14. 2024

보신탕 유감

요리책을 들여다보다

   내 취미 중 하나는 틈틈이 요리책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유튜브를 통해 볼 수도 있으나 사진이 있어야 눈요기하는 재미가 붙는다. 동적인 영상에서는 얻기 힘든 여유가 책 속에 있으니, 책장을 넘길 때마다 힐링하는 느낌도 빼놓을 수 없다.


토요일 아침 식사 후, 신문을 펼쳐 든 남편은 세상 구경에 흠뻑 빠져 있다. TV나 인터넷으로 볼 수도 있다지만 남편 역시 활자가 주는 안정감을 즐기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모처럼 한가하게 옆에 앉아 요리책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3년 후 보신탕집 역사 속으로!’라는 제목이 내 눈으로 얼핏 들어왔다. 앞으로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사육하거나 도살해서 유통 판매하는 행위가 금지된다.’라는 뉴스를 어제 보았다. '앞으로'란 3년 간의 유예 기간을 말하며 그동안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 유도한다는 내용이었다. 특별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니 국민 여론으로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나는 책을 후다닥 덮고, 남편을 향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지난날 얼마나 많은 견공들이 인간의 미각을 위해 몸을 바쳤을꼬?”

남편은 아무런 대꾸 없이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말문을 열어보려고 약 올리듯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보신하겠다는 사람들이 보신탕 먹고 과연 건강해졌을까?”


작년 여름, 세균이 투입된 실험용 개나 질병으로 죽은 개가 시장에 유통됐다고 얼마나 시끄러웠던가. 보관 상태조차 엉망이던 물 먹인 개가 불법으로 거래됐다는 뉴스로 여름 내내 설왕설래했다. 게다가 이를 사들인 식당에서 천 그릇이나 가까이 팔아왔다니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나는 보신탕 자체도 싫으나 불법이라는 말에 더욱 신경이 쓰였었다.


보신탕에 너그럽지 않은 나는 혼잣말로 남편한테 구시렁구시렁 자꾸만 시비를 걸었다.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자기가 기르던 개를?”

여전히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던 남편 역시 혼잣말처럼 대꾸했다.

나는 완전히 끊었잖아.”


삼복더위를 피해 가끔 계곡에서 직원 회식에 참석했던 남편. 당연히 닭백숙이나 오리탕을 먹는 줄 알았지, 그것을 즐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복날을 며칠 앞두고, 친구와 통화하는 중에 무심코 뱉은 그럼, 복날에는 보신탕이 최고지.”라는 말이 단서가 되어 들통이 났다. 그날 이후 복날 언저리만 되면 철저한 감시망을 쳐놓고 그것이 아닌 다른 보양식으로 눈길을 돌리게 하느라 애먹었다.


우리 속담에 복날 개 패듯이라는 속담이 있다. 개를 몽둥이로 때려잡는 건 육질이 연해진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다. 인간의 미각을 위해 동물이 그처럼 처절하게 죽임을 당해도 되는 건가. 인간의 이기심으로 동물을 그리 학대할 수 있는 건지 묻고 싶다. 더군다나 요즘 개를 인생 반려로 삼는 인구가 천만 명을 넘기는 시대 아닌가.


잠잠히 있던 남편이 발끈해서 톡 쏘아붙였.

보신탕이 뭐가 어때서 그래? 엄연히 우리나라 전통음식인데.”

혹시 자신도 병든 개를 먹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화가 난 걸까? 뾰로통해진 남편의 눈꼬리가 나를 노려보는 통에 무언가 하려던 말이 자라목처럼 쏙 기어들었다. 남편의 눈이 신문으로 되돌아가자 머쓱해진 나의 눈도 다시 요리책으로 갈 수밖에. 하지만 호시탐탐 반격의 기회를 노리느라 책장은 건성으로 넘겼다.


나는 동물보호협회 회원이나 반려인은 아니라도 개를 잡아먹는 것은 왠지 꺼림칙하다 못해 원시적이라 주장하는 쪽이다. 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 문화와 정서를 공유해 온 동물 아닌. 마당에서 집을 지키든, 침대에서 끌어안고 자든 동고동락해 온 개 하루아침에 식탁으로 올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개의 조상은 늑대라는 학설을 내세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이 야생동물이던 늑대를 집에 가두어놓고 가축으로 길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잡아야 했던 원시인들이 늑대를 잡아먹었을 것이고, 그 후손인 인간 개를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반박하는 쪽이다. 물론 내 귀에는 보신탕 문화를 합리화하려는 억지 주장으로밖에 들리지 않지만.


요리책 마지막 장에 삼계탕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더위를 이열치열로 다스린 슬기로운 민족답게 오뉴월 삼복더위로 허해진 몸을 오리나 흑염소, 또는 쇠고기로 보하자는 글귀가 마음에 와닿는다. 많고 많은 보양식 중 굳이 보신탕을 선택하자고 주장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 드디어 남편을 공격할 수 있는 순간이 왔.


내로라하는 요리사들이 모여 전통 요리를 총망라하여 만든 이 두꺼운 책에 보신탕 관련 사진 안 보이는 이유는 뭘까? 아무리 탈탈 털어도 아무리 샅샅이 훑보아도 사진은커녕 단 한 줄의 언급조차  않았으. 이쯤에서 나는 어깨에 힘을 주고 다시 반격에 힘을 는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음식이 왜 빠졌을까, 설명 좀 해보시구려.”

신문에 코를 박고 있던 남편이 고개를 들고 나를 망연자실 쳐다본다.


보신탕 금지법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남편을 곯려 줄 절호의 기회다. 고삐를 바짝 쥐고 확실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머리를 굴리려는지 말을 잇지 못하는 남편 앞에 요리책을 증거물로 들이밀었다.

, 이제 그만 백기를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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