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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Sep 04. 2024

그때 헤어지면 돼

지금 현재를 즐기면 돼

습관처럼 브런치 마당으로 들어선다.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다가 잔잔한 울림을 주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잊혔던 노래 하나가 글 속에 포근히 담겨 있는 게 아닌가. 아, 내가 좋아했던 이 노래, 하루에도 수없이 듣던 건데. 무엇이 바빠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은 채 까맣게 잊고 있었을까.


내가 이 노래를 처음 만난 건 버스를 타고 광화문을 가던 길이었다. 창밖으로 낙엽이 뒹굴던 늦가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가슴에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헤어지면 돼'는 전율이 오를 지경으로 온몸을 파고 들어왔다.  감미로운 곡조와 아련하게 들려오는 가사는 단번에 내 마음을 빼앗아갔다. 알아보니 로이킴이 부른 <그때 헤어지면 돼>라는 노래였다. 그해 가을은 노래 하나에 의지하여 낭만에 푹 빠져들 수가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내내 곁을 지켜주던 이 노래를 브런치 마당에서 다시 만나다니.


GAVAYA 작가는 '지구복 활용법'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책을 출간한 분이다. 음악 분야의 크리에이터로서 세상에 좋다고 소문난 노래는 거의 다 글로 표현한다. 하나의 주제로만 글을 쓴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 고집스럽게 한 길을 가고 있다. 귀에 익숙한 노래 죄다 모아 깊이 있는 글로 표현해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분인가 보다. 어떤 노래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거나 듣고 싶다면 GAVAYA 작가의 방을 방문해 보자. 가수를 이해할 수 있으며 노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다양한 시각까지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노래와 가수를 연구하여 독특한 색채로 글을 쓰는 작가한테 만족감을 얻을 것이다. 한 우물을 깊이 파는 GAVAYA 작가가 조만간 음악 관련 출판사의 눈에 띄어 '노래에 깔린 문학 세계'라는 주제로 두 번째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로이킴의 <그때 헤어지면 돼>를 다시 들어보았다. 한동안 잊고 있던 사람을 갑작스럽게 만난 듯 왜 이리도 가슴이 뛸까. 역시 듣고만 있어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처럼 절절한 심정이 된다.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은 연인과 당장 헤어지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며시 읊조린다. 헤어질지도 모르는 그 애타는 마음은 저 깊은 곳에 숨겨둔 채로 차분한 척 잔잔한 척 애원한다. 나는 그 목소리 듣자마자 직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에게 헤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지금 이 노래 절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노래를  어젯밤 카톡으로 남자 친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흉을 보던 딸아이한테 보내주려 한다. 남자 친구의 잔소리가 듣기 싫다는 거다. 내가 아는 그는 세상에 법 없이도 살 만한 인성을 가진 착한 청년이다. 모든 것을 스스로 척척 해내는 그의 말  잔소리로 들으면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원래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롭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롭다'라는 토까지 달면서.  


딸아이의 남자 친구를 처음 본 것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탄다고 우리 아파트에 나타났을 때다. 남편과 나는 21층 베란다에서 딸아이의 남자 친구를 훔쳐보려고 길게 목을 빼고 내려다봤다.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 그는 멀리서 봐도 인상이 좋아 보이는 건강한 청년이었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것은 딸아이와 무척 잘 어울려 보였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그를 본 것은 부산까지 자전거 투어를 하기 위해 집으로 자전거를 가지러 왔을 때다. 자전거 점검을 하는 동안 밖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게 전부지만 우리 부부는 첫눈에 반해버렸다. 활짝 웃는 얼굴과 겸손한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티 하나 없이 순수해 보이는 눈망울은 딸아이와 좋은 인연이 될 만했다.


그는 인도 태생으로 스물둘부터 조국을 떠나 독립된 생활을 해왔다. 대학 졸업 후, 인도에 있는 삼성회사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근무다가 한국으로 왔다. 카이스트에서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선배들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 성균관 대학에서 MBA를 딸 수 있도록 지원까지 받았다. 우리는 1등한테 주는 트로피와 수료증을 들고 활짝 웃는 그를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인도에 대해 아는 게 무언가. IT강국이라는 것과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나라라는 것. 참, 인구수로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라는 사실밖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고, 카레의 나라로 알고 있는 정도이니. 또 하나 구구단을 20단까지 외운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을 정도이다. 딸아이가 인도 남자를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보수적인 우리 부부가 아무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였다는 거다. 머리가 좋고 능력 있는 것보다 더 마음에 드는 건 순수하고 착하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고 체격 또한 튼실하니 더 바랄 게 뭔가.


자칭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는 우리 딸은 어떤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졸업까지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을 들어갔다. 과가 맞지 않는다고 전과를 했는데 마치지 못하고 다시 미국 대학을 들어갔다. 방학 때 잠깐 나와 알바를 한다는 것이 그만 딸아이 앞날을 흐리게 하고 말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딸아이한테 다가온 그는 지극정성으로 해주었다. 특히 "서로 성장시켜 주는 만남이 되자."라고 했다니 부모로서 얼마나 고마운가. 가끔 우울 속으로 빠져들던 딸아이가 웃음을 되찾으며 생기를 갖기 시작했다. 모든 게 그의 덕분이라 생각했다. 딸아이는 정신 쓰는 게 싫어서 몸으로 하는 노동 알바를 찾음으로써 우울을 애써 누르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딸아이의 자존감을 높여 주려고 많은 격려를 해주었다.

"너는 잠재력이 있는 아이면서 왜 발휘하지 않는 거냐?"

그가 했다는 이 말 한마디에 나는 딸아이의 앞날을 성장시켜 줄 만한 짝으로 일찌감치 점을 찍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면서 소소한 만남을 갖던 중에 그는 평소에 살고 싶어 하던 캐나다로 떠났다. 그가 떠난 지 3개월 후에 딸아이는 캐나다 대학에 입학했다. 기숙사에 들어간 딸아이한테 그는 생활에 요한 것들을 적극 지원해 주었다. 십 년 넘도록 해외에서 독립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으로 실직적인 도움이었다.

"엄마, 어떻게든 학교 마치고 여기서 취업할 거야."

나는 딸아이의 마인드가 굳건해진 것 같아 흐뭇해하면서 그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심지가 굳은 남자를 만난다는 것은 일생일대에 든든한 길잡이를 만나는 격이다.  


나는 이 노래를 보내주면서 사랑하는 사람끼리 꼭 들어야 하는 거라고 말하련다. 아마 첫 소절만 듣고도 엄마의 마음을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앞으로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위해주면서 더 예쁜 사랑을 나누리라 기대한다. 헤어질 것에 대한 염려 대신,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서만 신경 써도 모자른다고. 가사말처럼 그때 헤어지면 돼,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낸다면 헤어지는 일 따위는 절대 없을 거라 확신한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지금 현재를 마음껏 즐기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

딸아, 눈을 감고 가사를 음미해 봐.  


'나를 사랑하는 법은

어렵지 않아요

지금 모습 그대로

나를 꼭 안아주면 돼요


너를 사랑하는 법도

어렵지 않아요

한 번 더 웃어주고

조금 더 아껴주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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