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허무

by 윤문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역사는 흐른다.

이 두 말을 조합해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역사는 흐르기 때문에 이름과 인생이 남아있는 인물만 수천, 수만 명이 있고,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에 이 중 입맛에 맞는 배경의 인물을 골라 마음대로 각색해도 된다.

물론 기본적인 건전함은 유지하고, 내 무미건조한 문체로는 생생한 묘사에 한계가 있다.

브런치에 올리지는 않지만(올릴 예정이다) 나는 수많은 2차 창작을 하고, 그 과정에서 역사나 인물을 아예 삭제하거나 만들거나 뒤집어 엎거나 성격을 바꾸거나 성별을 바꾸거나…. 수없이 많은 짓들을 한다. 비교적 중립의 위치에 있는 역사를, 내 입맛에 맞게 각색해버리는 건 너무 재미있다. 인물 하나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다. 여러 가지 관점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것도 재미있다. 음울한 현실이나 정사와 전혀 다르게 각색하는 것도 재미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없는 사건을 만들어버리거나 없는 인물을 만들고, 원한다면 아예 역사를 뒤집어 엎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재미 뒤에, 약간의 의문이 있다. 2차 창작되고 있는 사람이 돌아와서 내가 쓴 2차 창작을 본다면, 과연 달가워할까? 재미있어할까? 화낼까? 짜증낼까?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묘사한 이 사람의 모습은, 이 사람의 실제 행적과 성격과 얼마나 비슷할까?

이게 아무 상관도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프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어도, 어차피 죽으면 말이 없으니까 후세 사람 마음대로 각색할 수 있다. 약간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부분이다.

하긴, 원래 인생은 그런 거니까.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죽어버리면 아무 의미도 없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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