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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정연 Jan 12. 2019

지루한 일상, 지루한 결과?

예전에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반복되는 하루가 너무 지겨웠다. 그날따라 너무 하루가 지겨워 아침부터 두통과 함께 짜증이 밀려왔다. 강의와 상담을 취소하려는 생각이 너무 강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잡힌 스케줄이라 어쩔 수 없이 그날의 하루를 험한 인상으로 시작하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즐겨듣던 음악은 세상에 둘도 없는 소음으로 들렸고, 거리에 다니는 모든 차가 ‘김 여사’가 운전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내 앞에서 달리는 자동차는 기어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모든 게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신호가 바뀌면서 앞에 달리던 차는 급정지를 하고 안전거리를 지키지 못하고 바짝 따라붙었던 나는 그만 앞차와 추돌 사고를 내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앞차가 B**라는 수입 자동차였다. 보험으로 처리하고 내 차는 공업사로 견인해가서 수리해야 했는데 어느새 나는 강의와 상담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배웠다. 사고 나기 전까지만 해도 반복되는 하루를 짜증 내고 지겨워했는데 이 사고 후 아무 일 없이 지겹게 반복되는 하루가 소중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사람들이 여행을 다녀온 후 모두가 그다음 날 일상적으로 다시 돌아가는 걸 싫어하는데, 우리가 아무 일 없이 지겨운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를 기억한다. 특히 학생들을 매일 상대하는 나는 며칠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대한민국은 큰 슬픔에 빠졌다. 내가 유가족은 아니지만 분명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녀가 학교 다녀오고, 싫어하는 잔소리와 남들과 똑같이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유가족들은 남들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일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여서 일상의 소중함과 행복을 간절히 원한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매일 지겹게 보지만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인 것이다. ‘잘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라는 표현보다 ‘아무 일 없을 때 조심해야 한다.’가 더 어울릴 것 같다. 지겨운 과정과 반복은 지겨운 결과를 맺지 않는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집중력은 더 짧아지고 조바심과 함께 재미만 추구하는 경향을 많이 본다. 매일 학교 가는 것을 지겨워하고 오로지 의미 없는 즐거움만 찾으려고 한다. 얼마나 지겨웠으면 남학생 가방은 책 한 권 없이 텅텅 비어있고, 여학생 가방은 책 대신 화장품으로만 채워져 있다. 학교 끝나자마자 학생들은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의미 없는 즐거운 행위들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이 되면 다시 인상을 쓰면서 반복되는 지겨운 하루를 욕하고 저주까지 한다.

그런데 이런 학생들은 ‘꿈’이 없다. ‘꿈’이 있다 해도 그것은 오늘 지금 당장 의미 없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꿈’이다. 집중력도 짧고 조바심만 늘어나니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른 채 ‘꿈’이라는 단어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긴다. 그런데 ‘꿈’만 갖는다면 하루는 의미 있는 반복되는 하루가 된다.

고등학생들이 졸업하면서 종종 이렇게 크게 외친다.

“고생 끝. 행복 시작!”

하지만 대학교 마치고 남자는 군대 약 2년 마치면 대략 26살이 된다. 자신이 행복 시작이라고 크게 기대를 하였지만, 오히려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졸업 후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전에는 느끼지 못한 중압감과 함께 직장 생활을 매진한다. 이 과정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과정을 ‘지겨움’으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의미 있는 반복’으로 만들 것인지 선택하는 것이다.

학생 중에 중학교 때부터 ‘프로파일러’의 꿈을 가진 학생이 있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목표한 대학교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스스로 꿈을 정했다는 것도 있지만, 스스로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만든다.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고 그 시간에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공부해야 한다고 거절하고, 특히 공부할 때는 휴대전화도 다른 방에 두어 공부에 방해받지 않게 한다. 그렇다고 이 학생이 공부만 하는 학생은 아니다. 중학교 때 도내 대회 2위에 입상한 배구부 주 공격수이고,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는 학생이다. 내가 이 학생의 마음을 떠보려고 ‘오늘 하루는 공부 쉬어!’라고 했더니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 공부 쉬면 어제 공부한 것 잊어버려요. 또 오늘 안 하면 어차피 내일 또 해야 하는데 그럼 두 배로 해야 하잖아요, 그럼 힘들어서 안 돼요.” 이 학생은 매일의 일상생활을 지겨움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의미 있는 반복들로 보고 그 과정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꿈이 없다면 반복은 지겹지만 꿈이 있다면 반복되는 과정은 신나는 과정이 된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반복은 필요하다.

프랑스 정신과 의사인 크리스토프 앙드레 박사는 <나라서 참 다행이다.> {북폴리오}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가? 그렇다. 충분치 않다. 생각하고, 행동하고, 우리를 발전시키는 것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인간의 뇌는 사유를 위한 것 이전에 행동을 위한 것이다. 바로 그래서 머리로는 완벽히 이해해도 현실적으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의 결실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수공업자나 예술가처럼 똑같은 행동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행동은 소소하되 규칙적이어야 한다. 한 번으로는 안 된다. 과연 끝이 있기는 한가? 그 답은 ‘그렇다’와 ‘아니다’ 둘 다다.”

우리는 모두 꿈이라는 창작물을 만들어나가는 예술가다. 심장을 의미하는 영어 ‘heart’라는 단어에도 ‘art'라는 단어가 있다. 잘 갈고 다듬는 과정을 즐기고 심장이 있는 가슴을 더 타오르게 하면 멋진 창작물을 만든다. 반면 그 과정을 지겹게 생각하고 포기하고 절망한다면 그것은 한낱 어디에도 쓰지 못하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 뜨거운 증기가 뚜껑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것처럼 꿈을 정하고 매일 꿈을 생각하여 마음속에서 끓어오르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반복된 행동의 뚜껑이 들썩거려 어느새 꿈이라는 물이 뚜껑을 밀어내고 넘치게 된다.

쇠붙이가 면도날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날마다, 규칙적으로, 그리고 정해진 일정한 방향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숫돌을 가는 길 방법뿐이다. 정해진 일정한 방향으로 갈다가 어느 정도 한쪽 면이 완성되면 어제와 다르고, 또 다르고 앞으로도 달라져야 한다. 숙련공이 반복적인 일정한 방향이 지겹다고 무시한다면 그것은 한낱 쇠붙이에 불과하다. 꿈을 매일 생각하는 게 힘이라면 반복은 기술이다. 꿈이 건축 설계도라면 반복은 강한 기둥이다. 꿈이 앞으로 무슨 인생의 예술을 만들지 아는 것이면, 반복은 예술 도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꿈은 남들과 나 스스로 자신에게 환호성을 듣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반복은 실제로 그렇게 만든다. 꿈이 보증된 백지수표라면 반복은 멋지게 수표를 쓰는 법을 아는 것이다.

나도 가끔 슬럼프가 와서 반복되는 하루가 지겹게 여겨질 때가 있다. 한때 그런 하루를 지겹다고 여겨 남에게 의존하거나 술에 의존하였지만, 그것은 단지 그 순간뿐이지 그다음 날 지겨웠으면 더 지겨웠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진다. 그런데 요즘은 많은 독서량과 그리고 오늘 하루 스케줄을 보며 글을 써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중에 글쓰기가 하루를 지겹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오늘 하루를 감사할 일이 많았음을 일깨워준다. 샤워하고 조용히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든지 아니면 펜으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써본다. 처음에는 나 역시 반복되고 지겨운 하루의 일정한 패턴만 썼는데, 그 일정한 패턴에서 자신의 마음이 많이 가는 일에 글을 써본다. ‘그 일을 할 때 혹은 그 공부를 할 때 왜 내가 이런 감정이 들었지?’ 이런 반복은 글을 쓸수록 자신의 내면과 감정의 소리를 듣게 되며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꿈도 더 선명해지고 반복적인 하루가 행복한 과정이 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처럼 꿈을 위한 반복은 피할 수 없다. 지겹다고 여기는 대신 반복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기차를 타고 있는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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