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고

할머니가 20살 때쯤 시집을 가셨다. 당연히 중매쟁이를 통해 간 시집이셨다. 서울 팔각정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남편의 집, 그러니까 나에게는 할아버지 집에서 시집살이를 하셨다. 시어머니와 3명의 형님이 더 계셨다고 한다. 매일 나물을 다듬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온 집안일을 하다 보면 저녁에는 시름시름 앓으셨고 한다. 그런데, 체력이 좋아 밤에는 시름시름 앓다가도 잠만 자고 나면 멀쩡해지셨는데 그게 싫었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다른 형님, 동서들은 그러다 아침까지 아프면 쉬었는데, 할머니는 아침에는 괜찮으니 한 번을 못 쉬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년을 사시다 차남이신 할아버지께서 집안으로부터 어떠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음을 아시고 할머니와 함께 집을 떠나셨다.

한 푼도 없이 집을 떠나신 할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안 해보신 장사가 없으시다. 한 번은 양말 장사를 하시는데 도둑맞으신 적도 있다고 했다. 또 소여물을 자르는 일을 하셨는데 이는 단순 반복 작업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여물을 작두로 자르는데 잘못해서 할아버지 검지 손가락도 잘렸다. 완전히 잘려나간 손가락 마디. 그 당시는 손가락을 이어 붙이는 의술도 없고, 병원에 갈 여력도 없으니 그대로 손가락을 잃으셨다. 벽돌을 만드는 일도 하셨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일터에 나가셨다. 할머니께서는 벽돌 만드는데 쓰이는 모래를 옮기셨다. 모래가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고 말씀하신다. 이런저런 일을 하시며 정착하지 못하시다가 경기도로 이사하셨다. 그곳에서도 할아버지는 장사를 하셨고, 할머니는 공장에서 일하셨다. 건전지를 만드는 일도 하셨고, 재봉틀일도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미싱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재봉틀 일은 하루에 정해진 옷감을 만들어야 하셨다. 그래서 마음이 급하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이 재봉틀 바늘이 옷감이 아닌 손가락을 지나칠 때가 있으셨다고 했다. 그러면 살갗 위에 바느질이 된 것이다. 말만 들어도 너무 아픈데, 할머니께서는 그땐 아픈지도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실밥을 투두득 풀고 다시 일하셨다고 한다. 먹고살기도 바쁜 와중에 아이는 다섯이나 낳으셨다.

그렇게 하루종일 일을 해도 하루 벌고 하루 먹고 살 정도셨다고 한다. 돈을 받으면 쌀을 사고 배추를 사고. 또 할아버지가 신김치는 안 드셔서 매일 김치 겉절이를 담그셨다고 한다. 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할머니는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어쩌다 쌀이 떨어지면 남은 밀가루에 물을 많이 풀어 묽은 반죽을 만들고 김칫국에 수제비처럼 떠 넣어 가족과 다 같이 드셨다고 한다. 또 비빔국수를 해도 넣을 재료가 없으니 고추장과 간장만 넣고 비벼 드셨다 했다. 그런데 난 할머니가 해주는 이 비빔 국수가 내 최애 국수이다. 힘들게 사셨지만 정말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신 할머니 할아버지,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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