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유명한 베스트셀러다. 오래전부터 여러 지인에게 추천을 받았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빨치산은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 치열하고도 슬픈 기억,
얼어 죽고
굶어 죽고
끝내 총에 맞아 죽어가던 비극의 서사.
그렇기에 책을 펼치기까지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가슴 시린 이야기를 마주할 용기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그 망설임은 기우였다. 빨치산 아버지 이야기를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내다니.
소설은 아버지의 갑작스럽고 덧없는 죽음으로 시작해, 장례를 치르는 삼일 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가의 재치 넘치는 글솜씨에 빨려 들어가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까워 문장을 아껴가며 읽어야 했다. 빨치산으로서 아버지의 삶도 치열했겠지만, 빨치산의 딸로 살아온 작가의 삶 또한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진 세월을 견뎌내고, 고단했던 삶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필력에 감탄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첫 문장부터 강렬했다.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라고 시작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첫 문장이 겹쳐 떠올랐다.
작가의 어머니 또한 빨치산이었다.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 더 풀어쓰자면 여자도 공부를 할 수 있는 세상, 가난한 자도 인간 대접받는 세상에 불과했다. 신자유주의 대한민국도 그 정도는 해준다.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사회주의란 그저 지나간 첫 남자가, 지나갔으므로 가장 그리운, 뭐 그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p 21)
아버지는 평생을 호구로 살았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p 102)
"목숨을 건 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p 147)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p 181)
"아버지는 백운산에서 가장 오래 있긴 했지만 이산 저산 떠돌며 48년 겨울부터 52년 봄까지 빨치산으로 살았다. 아버지의 평생을 지배했지만 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건 고작 사 년뿐이었다. 고작 사 년이 아버지의 평생을 옥죈 건 아버지의 신념이 대단해서라기보다 남한이 사회주의를 금기하고 한번 사회주의자였던 사람은 다시는 세상으로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작 사 년의 세월에 박제된 채 살았던 것이다." (p 252-253)
사람은 죽었을 때, 비로소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장례식 삼일 동안 만나는 숱한 사람들이 나누는 추억을 통해,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기억하게 한다.
베스트셀러 순위는 출판사의 마케팅 덕분이라며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인정한다. 베스트셀러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재미와 감동이 모두 있는 작품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