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왜 보냐. 혼모노 읽으면 되는데

by 사막여우

배우 박정민의 추천사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로 유명해진 책이다.


길티 클럽
스무드
혼모노
구의 집: 갈월동 89번지
우호적 감정
잉태기
메탈


표제작인 <혼모노>를 포함하여 7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다소 낯선 단어인 '혼모노'는 일어로 진짜를 뜻하며, 반대말인 가짜는 '니세모노'라고 한다. 7개의 단편은 각기 다른 서사를 띠고 있지만, 결국 모두 '혼모노'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연 무엇이 진짜인가?


두 개의 반쪽 사과가 합쳐진 표지 그림은 우리에게 '어느 쪽이 혼모노인가?'라고 묻는 듯하다. 혹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 속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처럼,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그리트 그림 속 대상은 파이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파이프를 그린 '그림'일뿐이기 때문이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반'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역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을 등장시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진짜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소설'이기 때문이다.



길티클럽

연예인의 스캔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유명인에게 논란이 될 만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으레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만약 그 대상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일까, 아니면 그저 '내가 믿고 싶은 모습'일까.


스무드

한국을 방문한 재미교포 듀이가 우연히 광화문에 들렀다가 태극기 부대 집회에 휩쓸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방전된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도움을 청했을 뿐인데, 어르신들은 젊은 청년이 집회에 나온 것을 반가워하며 함께하자고 친절을 베푼다. 듀이의 부모님은 한국인이지만 정작 그는 확고한 미국인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말도 전혀 하지 못한다. 이들은 끝내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나누면서도 따뜻한 정을 느끼고 좋은 기억만을 안고 헤어진다. 여행은 견문을 넓혀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듯 여행 중 겪은 단편적인 경험으로 섣부른 편견을 가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모노

한때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었으나, 이제는 신이 떠나버린 선무당(니세모노)이 등장한다. 그가 모시던 신인 '장수할멈'은 나이 어린 신출내기 무당에게 가 버렸다. 신이 무당의 몸을 빌려 뜻을 전한다면, 과연 진짜는 무당일까, 아니면 그가 모시는 신일까.


구의 집: 갈월동 89번지

수록장 중 가장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건축과 교수 여재화와 그의 제자 구보승이 갈월동 89번지에 위치한 국가 기관 건축물을 설계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마치 실화처럼 몰입해서 읽게 되지만 두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이다. 실제로는 고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진짜와 가짜가 교묘하게 섞여 있어 한 편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건축은 인간을 위한 공간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고문하기 위한 공간도 '인간을 위한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복도 천장을 좀 더 높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천장이 높아져 잔향이 생기면 취조실에서 새어 나온 비명이 복도를 울리게 될 것이고, 그 소리에 다른 이들의 공포가 극대화될 테니까요." (p 182)


"피조사자들은 아마도 눈을 가린 채 계단을 오를 겁니다. 선생님이 설계한 대로라면 여기가 몇 층인지 감으로나마 알 수 있겠죠. 안심할 겁니다. 계단 수를 세며 탈출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죠. 하지만 나선형 계단에는 층의 구분이 없습니다. 내가 몇 층에 있는지 알 수 없죠. 방향감각이 무뎌진 데다가 계단 폭이 좁고 경사가 가팔라 안정성마저 상실된다면, 그들이 느끼는 공포감은 극대화될 겁니다." (p 188)


"제가 선생님의 뜻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것을요...

빛이 공간의 형태를 드러내 조사자에게 두려움을 심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 무력감을 안길 거라고.

희망이 인간을 잠식시키는 가장 위험한 고문이라는 걸 선생님은 알고 계셨던 거죠?" (p 191-192)


"정오가 되면 수직창으로 빛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빛이 공간을 타고 흐를 때에야 벽면이 붉게 칠해져 있다는 것, 욕조와 샤워기, 이동식 변기, 칠성판이 숨 막힐 정도로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 인지된다. 빛은 벽을 천천히 훑다 곧 스러지고 그는 어둠 속에 홀로 놓인다." (p 198-199)


우호적 감정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며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요즘 회사의 트렌드를 보여준다. 그리고 귀농한 사람들의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공동체가 실상은 그렇지 않은 이중적인 모습을 그린다.


잉태기

품 안의 자식을 병적으로 감싸고도는 서사가 등장한다. 한 아이의 육아 방식을 두고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팽팽하게 대치한다. 그런데 그 '아이'는 이미 임신까지 한 성인이다. 이 기형적인 보호는 진정한 모성일까, 아니면 자기 연민일까. 그도 아니라면 그저 상대를 이기고자 하는 욕심이나 속물근성일까.


메탈

헤비메탈이 삶의 전부였던 고등학생 단짝친구 셋이 나이가 들며 점차 평범한 생활인을 변해가는 과정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들이 학창 시절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메탈'일까. 아니면 '메탈을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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