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산마애불의 정식 명칭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서울에서 가는 길은 멀었다. 막히는 도로를 달려 약 3시간 만에 도착했다.
삼존상은 용현자연휴양림 가는 길, 용현 계곡 옆에 있었다. 날씨가 너무 좋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계곡 물소리가 들려 피로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마애여래삼존상 입구
마애여래삼존상 관리사무소
계곡 위 작은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올라가면 마애여래삼존상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별도로 주차비와 입장료는 없다.
유홍준 교수 추천 문화유산 답사
유홍준 교수 추천 문화유산 답사코스가 붙어 있다. 이 장소들에 대한 내용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과 3권에 자세히 나와 있다.
마애여래삼존상 해설
관리사무실에는 문화관광해설사 분이 상주하고 계셔서 해설을 요청드리면 바로 나오신다. 해설사님을 따라 돌계단을 조금만 올라가면 마애불을 볼 수 있다.
마애여래삼존상
10월 초 오전, 서서히 해가 비추기 시작한다.
우리 일행은 초등학교 2학년 두 명이 있었기 때문에 해설사님께서 최대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다. 마애여래삼존상이라는 용어부터 말씀하셨는데, 마애는 돌을 깎아 만든 부조를 말하고, 여래는 진리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중앙은 현세불을 의미하는 여래입상, 좌측에 과거불을 의미하는 제화갈라보살입상, 우측에 미래불을 의미하는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여래 입상의 수인은 오른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아래로 내린 여원인인데, 시무외인은 모든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주는 것, 여원인은 중생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한다는 의미이다.
마애여래삼존상
해가 서서히 이동하며 여래상 얼굴에 가을 햇살이 가득 채워진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불상의 미소가 달라지는데, 특히 가을 오전이나 저녁 햇살이 비출 때 '백제의 미소'를 가장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동지 방향을 향하고 있다.
1959년 한 나무꾼이 인바위 아래 있는 이 삼존불을 발견했다. 그때 나무꾼은 이렇게 설명했다. 환하게 웃는 산신령이 한분 새겨져 있고, 양옆에 본부인과 첩이 있다. 첩이 다리를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며 슬슬 놀리니까 본부인이 짱돌을 들고 던지려고 한다.
이 삼존상의 얼굴은 실존 인물을 옮겨 놓은 듯하다. 본존불은 백제의 남성, 보살입상은 여성, 반가사유상은 아이의 얼굴이라고 한다.
미술사학자 김원용 교수는 서산 마애삼존불을 '백제의 미소'라 명명하며 가장 백제적인 얼굴이라고 평가했다. 예전에 만났던 부여 정림사지 박물관 관장님의 얼굴이 이 불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는데, 그분은 부여 토박이셨다. 마치 진정한 백제인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마애여래삼존상. 2010년 겨울
십여 년 전 흐린 날 방문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맑은 날 다시 찾길 정말 잘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사실 허공이다. 마애불 발견 후 계단과 이 공간을 만들어 불상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했다. 이마애불은 절벽에 새겨져 있어 원래 절벽 아래에서 올려다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애불과 눈 맞춤이 가능했는데, 그 이유는 불상이 아래를 향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옆에서 보면 그 기울어진 모습을 보다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서산마애불 옛 모습. 1959.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이 마애불은 웅진이나 사비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성 백제 시대에는 한강을 통해 중국과 교류했지만, 남부로 수도를 옮긴 후에는 태안을 거쳐야 했다. 이곳은 바로 태안으로 향하는 길목이었고, 1500여 년 전 백제인들은 이 절벽 위의 불상을 보며 여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1959년 발견된 삼존불은 1965년 보호각을 설치했지만, 오히려 습기와 곰팡이로 인해 손상되었다. 결국 2007년 보호각을 철거했고, 지금은 그 흔적으로 주춧돌만 남아 있다.
해설사님이 이제 '문화재'라는 용어 대신 '문화유산'이라고 부른다고 하셨다. 아들이 질문했다. "왜 여기는 문화재라고 적혀 있어요?" 해설사님이 웃으시며 "아직 표지판을 바꾸지 못해서 그래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계속 지적을 해 주면 서서히 고쳐지겠죠?"라고 말씀하셨다.
삼존불 위로는 거대한 돌지붕이 있고, 주변 돌산이 든든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자연이 만든 보호막이 비와 바람을 막아주어 1500년을 이 자리에서 버텨 왔다. 인간의 손길이 더해진 보호각이 오히려 해를 입힌 것은 아이러니하다. 석굴암의 사례에도 볼 수 있듯이, 조상의 지혜를 깨닫고 현대인의 오만함을 반성하게 된다.
용현 계곡
삼존상을 내려와 용현 계곡에서 잠시 쉬다가 다음 장소인 수덕사로 이동했다. 계곡물이 너무 맑았다. 여름에 다시 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