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박물관
세 명의 엄마와 세 명의 아들, 총 여섯 명이 고려대를 방문했다. 초등학교 방학이고 엄마들도 쉬는 날이라 다 같이 박물관을 가려고 했는데,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았고, 우리 중 고려대 졸업생 엄마가 있어서 내가 고려대 투어를 제안했다. 얼마 전에 서울대를 다녀온 아들이 고려대를 가고 싶어 하기도 했고.
나도, 졸업생 엄마도 고려대가 오랜만이었다. 고대가 한참 지하상가 만들고 고엑스몰이라 불릴 때 고대 친구들이 학교 너무 예뻐졌다고 해서 방문한 게 마지막이었던 거 같은데, 그것도 벌써 십여 년 전 이야기다.
예전부터 고대 정문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문에서부터 본관과 설립자 동상이 한눈에 보이도록 배치하여 더 웅장해 보인다. 연대도 이렇게 바뀌었던데 요즘 유행인가.
졸업시즌이라 그런지 평소에도 그렇게 하는지, 흰색 돌 건물에 크림슨 색 휘장이 드리워진 모습이 고풍스러웠다. 지금껏 고대 상징색이 빨강으로 알고 있었는데, 크림슨이었다. 고대 기념품 샵 이름도 크림슨 스토어이다.
중앙 광장에서 어디를 먼저 갈까 배회하던 중 학생 몇 명이 다가왔다. 스타트업 동아리 학생이었는데, 신입생이나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고대 투어 방탈출게임을 만들어 홍보 중이었다. QR코드로 들어가면 참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할 거 같아 하기로 했다. 캠퍼스 곳곳의 설명과 다음 미션 위치까지 상세히 나와 있어서 세 명의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신나게 미션을 수행했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캠퍼스를 구경시켜 주지 않아도 되었다. 얘들아, 이 건물은 말이야, 여기만 더 보고 갈까 이러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 수행을 완료하면 기념품도 준다.
요즘 대학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기업체 이름을 단 건물이 많다는 것, LG-POSCO 경영관, SK 미래관, 백주년기념삼성관 등등.
보통 대학들이 오래된 고딕 건물과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데 반해, 고려대는 새 건물들도 흰색 돌로 마감을 해서 전체적으로 캠퍼스가 통일감이 있어 좋았다. 보다시피 내부는 현대적이다.
미션 완료 후 점심을 먹었다. 뭔가 학생회관에서 학식을 먹어야 진짜 캠퍼스 투어 느낌이 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고대스러운 '호랑이 덮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정문을 벗어나 자연대로 이동했다. 캠퍼스가 하나로 연결되면 더 좋으련만.
비주얼을 문과에만 투자했는지, 이과는 갑자기 다른 학교 같다. 입구에서부터 주차장이 있다. 자연대로 이동한 이유는, 졸업생 엄마의 동기인 교수님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신공학관 로비에서 교수님을 만나 함께 올라가서 화학공학 실험실을 구경했다. 배터리, 건전지를 만드는 곳이었다. 기념품으로 그곳에서 만든 건전지도 하나 주셨다.
입학설명회를 많이 하셨는지, 공대 설명을 잘해 주셨다. 학교 홍보도 함께.
아이 엄마라서 뿐 아니라 고등학교 교사로서도 좋은 시간이었다. 언제 고대 교수님을 직접 대면하겠는가. 우리 학교 애들이 고대 공대를 많이 간다.
내가 이해한 내용으로는,
요즘 화학공학이 뜨고 있다. 공대를 간다면 전자 혹은 화공이 좋다. 공대를 간다면 대학원까지 가서 연구까지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고등학교에서 물 2는 꼭 들어라. 화학 전공을 하려고 해도 공대를 가려면 물 2는 듣는 것이 좋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다.
"저 화학 전공할 건데, 물 2를 꼭 들어야 할까요?"
"교수님이 꼭 들으라고 하셨어."라고 대답해 줘야겠다.
복도에 샤워시설이 있다. 화학 실험 중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 급히 몸을 씻을 수 있는 장치라고 한다.
고대빵이 있다는데, 이날 베이커리가 안 열었던가. 아무튼 사지 못했다.
기념품을 받으러 다시 문과대로 이동했다. 100주년 기념삼성관 1층에 백년사 전시실과 기념품샵이 있다.
아이는 고대 캐릭터인 호이를 좋아했다. 호랑이는 양감이 풍부하여 캐릭터로 만들기 좋은 비주얼인 것 같다. 기념품샵 크림슨 스토어에서 호이 캐릭터 키링을 구입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호이 캐릭터 키링이다. 아이가 찍은 사진으로 본인 카톡 프사가 되었다.
원형으로 된 로비가 인상적이었다. 2층부터 전자도서관과 박물관이 있다. 내부는 현대적인데, 외관은 역시 본관 건물에 맞추어 고딕양식으로 마감했다.
전시실 입구 바닥에 고려대 캠퍼스 모형이 있다. 마침 방탈출 게임을 했던 아이들은 자기들이 갔던 곳을 찾아보며 좋아했다.
백년사 전시실에서 하이라이트는 학생증이었다. 같이 간 엄마가 모처럼 모교 방문이라고 학생증을 챙겨 오셨는데, 1995년 디자인과 같았다. 박물관 유물을 가지고 계셨군요.
월드컵 4강 주역 사인볼, 정해성, 김현태, 홍명보, 최성용, 차두리, 이천수. 고대 출신이 많았구나.
축협의 인물들.
2층에는 역사·민속전시실과 고미술전시실이 있다. 개인적으로 고미술전시실이 좋았다.
동궐도는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을 상세하게 그린 궁중회화이다. 고려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다. 책으로만 봤는데 실물을 보니 정말 크다.
정선 말년의 걸작 청풍계도이다. 겸재는 청풍계 그림을 여러 장 그렸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간송미술관, 그리고 고려대 박물관에서 각각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박물관 조명 설치가 문제다. 유리 반사가 심해서 그림보다 내 얼굴이 더 잘 보인다. 사진도 측면에서 겨우겨우 찍었다. 쇼케이스 전시된 그림들이 전체적으로 반사가 많이 일어나고 특히 이 작품이 심했다.
쇼케이스 내부에 제습과 온도 표시도 이상했다. 원래, 유물은 습도 50%와 온도 18도를 유지해야 한다. 사진으로 찍어 두지 않아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쇼케이스마다 온도와 습도가 높았다. 관리가 잘 안 되는 것인지 기계가 고장이 난 것인지. 둘 다겠군.
조선시대 회화 작품이 많이 있었다. 전시 수준은 국립 박물관 급인데, 역시나 대학박물관은 관람객이 없다. 2층 상설전시관을 보고 돌아왔다. 이제 보니 3층에 현대 미술전시실도 있었는데 그걸 놓쳐서 아쉽다.
흰색 고딕양식 건물과 크림슨 휘장이 인상적이었다.
아이가 지금껏 가 본 대학 중 고려대 캠퍼스가 가장 예뻤다고 한다. 1위 고대, 2위 이대, 3위 연대... 서울대는 순위에 없다. 예전에는 연세대 캠퍼스가 예뻐서 영화, 드라마에도 많이 나왔는데, 이제는 고대가 우위인 듯하다. 아, 물론 문과대 한정이다. 자연대 교수님 말씀이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갈 때쯤이면 공대도 지하주차장 만들고 멋있어질 거라고 하셨다. 갈수만 있다면 가지요.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