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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 사회 이야기

아버지가 없는 나라, 어머니의 나라

by 사막여우
20180907_231945.jpg 어머니의 나라, 아버지가 없는 나라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모쒀족의 모계사회에 관한 책 ‘아버지가 없는 나라’와 ‘어머니의 나라’이다. 모쒀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원조 모계사회의 후손이다. 진정한 미스터리는 그들이 어떻게 모계사회가 되었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현대사회에까지 고대의 모계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느냐는 것에 있다. 깊은 산속에 오랜 시간 고립되어 살아왔기 때문이라는 설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지만 아직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모쒀족은 문자가 없기 때문에 역사적인 기록도 거의 없고, 구전되어 온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는 모쒀인인 양 얼처나무의 개인적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어머니의 나라’는 중국계 싱가포르 변호사인 추 와이홍이 모쒀인 사회에 들어가 직접 생활하며 경험한 이야기를 쓴 책이다. 모쒀인의 관점과 모쒀인을 바라보는 외부인의 관점 차이를 비교하면서 읽어볼 수 있다.


‘아버지가 없는 나라’는 양 얼처나무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의 삶이 매우 드라마틱하고 흥미롭기 때문에 영화로 제작되어도 좋을 것 같다. 반면에 ‘어머니의 나라’의 추 와이홍은 변호사답게 모쒀족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모쒀족에 대해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인문서적이라고 볼 수 있다.


모쒀족은 일반적인 부계사회와 다른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먼저, 집의 구조가 독특하다. 집의 중심은 ‘어머니의 방’인 커다란 공간이다. 이 방에서 가모장인 어머니는 음식을 만들고 밥도 먹고 손님도 맞이하고 잠도 잔다. 이 큰방 양쪽으로는 2층 건물이 있다. 오른쪽 아래엔 닭장이 있고, 연장과 사료를 보관한다. 2층엔 합판으로 두른 여러 개의 방이 있다. 방마다 문이 있고, 좁은 발코니 쪽으로 작은 창문이 있다. 그 방들은 딸들을 위한 방이다. 왼쪽 건물에도 아래층엔 마구간과 돼지우리가 있고, 그 위는 손님이나 아들들이 머무를 방이 있다. 아들들의 방과 딸들의 방의 특징은 입구가 집 내부가 아닌, 외부로 나 있다.


밤이 되면 아들들은 애인의 방으로 찾아가고, 딸들의 방에는 애인이 찾아온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기 전에 아들들은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어머니의 집에서 모계혈통을 계승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분가라는 개념이 없이 태어난 집에서 평생을 산다.


사랑은 계절과 같아서 왔는가 하면 또 가버리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모쒀족 여자들은 평생에 걸쳐 여러 애인을 갖고, 많은 자녀를 낳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아버지가 전부 제각각일 수도 있으며,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사는 법이 없다. 아이들은 어머니 집에서 자라고, 모계의 성을 물려받으며, 사촌들(이모네 아이들)과 함께 자란다. 같이 사는 남자는 집안 여자들의 형제나 외삼촌뿐이다. 모쒀족 아이들은 한 명의 아버지 대신 여러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어머니도 많은 셈인데 이모를 아재 아미, 즉 ‘작은 엄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아버지가 없는 나라. p15)



‘엄마는 나를 언제 낳았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날짜만이 아니라 연도까지도...’ ‘아버지가 없는 나라’의 첫 문장이다.


모쒀인들은 생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생일은 어머니가 고통을 겪은 날이기 때문이다. 양 얼처나무는 자신이 태어날 때 자신을 받아준 아주머니를 통해 그때가 말의 해였으며, 초겨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1966년 생이라고 추정한다. 모쒀인은 개인의 생일을 기념하지 않고 나이는 구정이 되면 다 같이 한 살 먹는다.


아이들은 13세가 되면 성년식을 한다. 성년이 되면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방을 가지게 되며, 이때부터 남녀는 애인을 만들어서 함께 밤을 지낼 수 있다.


모쒀인들은 개를 소중히 여긴다. 중국인들과 달리 개고기도 먹지 않는다. 여기에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모쒀인과 개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옛날에 신은 모든 피조물에게 각기 다른 수명을 주기로 결심한다. 신이 외치는 숫자에 가장 먼저 대답하는 동물이 그 숫자만큼 목숨을 얻게 된다. 신은 새벽녘에 “1000”을 시작으로 숫자를 외치기 시작한다. 개는 60이라는 숫자를 받았다. 게으른 인간은 가장 마지막 수명인 “13”을 불렀을 때야 느긋하게 일어나서 13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수명을 더 달라고 졸라대자 신은 다른 동물과 수명을 바꾸는 것만 허락해 주었다. 당연히 어떤 동물도 인간과 수명을 바꿔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개에게 부탁한다. 개는 잠시 생각한 다음, “좋아, 행복하게 산다면 13년으로 충분해. 대신 하루에 세 번 밥을 주고 나를 때려서는 안 돼. 그러기로 약속하면 목숨을 바꿔줄게.”


이 이야기는 아이의 성년식 때 들려준다. 그들이 성인이 되는 열세 번째 해는 개와 수명을 바꾼 해로 이때부터는 개가 바꿔준 수명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개에게 특식을 주며 평생에 걸쳐 개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어머니의 방’ 뒤쪽으로 ‘삶과 죽음의 방’이 있다. 이 방은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고 아기가 태어날 때와 사람이 죽었을 때만 사용한다. 모쒀인은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이상적인 삶으로 생각한다. 장례풍습도 독특한데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경직되기 전에 웅크린 태아 자세로 만든다. 새로운 어머니의 자궁에서 새 생명을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관도 정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다. 무릎을 구부려 턱에 닿게 하고, 팔로 다리를 감싼다. 그래서 평소에 아이들이 이런 자세를 하고 난롯가에 앉아 있으면 어른들이 야단을 친다고 한다.


이 사회에서는 여성을 새로운 생명을 탄생케 하는 힘의 원천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삶과 빛의 영역을 담당하는 것이 여성의 신성한 의무라고 믿었다.

이 사회에서 삶과 빛을 맡는다는 건 죽음과 거리를 둔다는 뜻이기도 했다. 여기엔 동물을 잡거나 직간접적으로 시체를 다루는 일이 전부 포함되었다. 더럽다고 여겨지는 일은 남자들이 도맡아 했다. 같은 의미에서 여자들은 장례식에서 시체를 염하고 만지는 일을 해서는 안 되었다. 달갑지 않은 이 일은 남자들의 몫이었다.(어머니의 나라. p97)


‘오래전, 모쒀인들은 여성이 가진 씨앗이 땅 위에서 파란 풀로 자라나려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생명의 씨앗을 품고 있는 여성은 그것을 실제 생명의 탄생으로 이끌어내기 위하여 씨앗에 물을 줄 남성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나라. p180)


모쒀인에게 물뿌리개 역할을 하는 이상적인 남성은 키가 크고 건강하며 잘생긴 남자이다. ‘물뿌리개’는 가족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남성의 경제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추가로 고려사항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즐겁기 위해서 쾌활하거나 유머러스한 성격을 들 수 있다.


모쒀사회에서 여자는 소박한 점심식사나 우아한 다과회, 혹은 조용조용한 저녁식사를 즐기지 않는다. 여자들은 한번 파티를 열면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느라 무조건 밤을 새우고 논다.(어머니의 나라. p172)


다른 여성 들과 경쟁적으로 미모를 가꾸는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모쒀 여성들은 치장을 삼갔다. 이들은 화장도 하지 않았는데, 외모에 이목이 집중되기를 별로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나라. p167)


대부분의 사회에서 결혼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뭔가를 희생해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그것이 주로 여자의 성적인 자유와 즐거움이다. 여성의 성생활을 통제하기 위해 전족, 부르카, 여성의 사회적 격리 등이 있었다. 반면 사랑과 성이 평등한 사회에서는 이혼율이 높다. 모쒀족은 성적인 자유와 사랑, 경제적인 안정, 혈통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았다. 오직 결혼제도만 없다.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에서 인류는 오랜 시간 동물이었다가 사람 행세를 하게 된 것은 최근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오랜 시간 모계사회였는데 부계사회는 최근에 나타난 일시적인 제도일 수도 있다. 오늘날 가족제도에서 오는 불합리의 원인이 부계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부산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모계사회는 남성들에게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 13세부터 마음껏 애인을 만들어도 되고 평생 처자식 부양할 의무 없이 어머니의 집에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 제도가 없다 보니 이 사회에서는 결혼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일어나지 않는다. 시기적으로 '아버지의 나라'보다 '어머니의 나라'가 한 세대 뒷 이야기이다. '어머니의 나라' 속 남성들 사이에서는 모계사회를 떠나 돈이 많은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회적 변화가 나타난다. 예전에 비해서 오늘날은 모계 문화가 강하지 않고,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관광 사업으로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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