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세계 3대 박물관을 꼽을 때 보통 프랑스 루브르, 이탈리아 바티칸, 영국 대영 박물관을 이야기한다. 혹 바티칸 대신 메트로폴리탄을 포함하기도 한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람객 수 세계 4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메트로폴리탄 역시 5위권 내에 드는 세계적인 박물관이다.) 루브르와 대영 박물관이 왕실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하며 시작된 것과 달리, 메트로폴리탄은 미국의 막강한 자본력과 기증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다르다.
오픈 시간에 맞춰 메트로폴리탄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햇살은 뜨거웠고 입장 줄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다행히 오픈과 동시에 입장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최근 메트로폴리탄은 현대백화점 앱만 있으면 무료입장이 가능해졌다. 신용카드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백화점 회원이 아니어도 그저 앱을 설치하고 가입만 하면 된다. 덕분에 우리 세 식구 모두 무료로 입장했다. 정말 최고의 혜택이다.
메트로폴리탄은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오랜 시간 계속된 중축으로 인해 서로 다른 건물들이 미로처럼 연결된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하루에 모든 것을 보는 건 불가능하기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우리는 인상주의, 현대 미술, 르네상스, 그리고 이집트 관을 중점적으로 둘러보기로 했다.
먼저 지도를 얻으러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지도 한 장을 집어드는 나에게 직원이 대뜸 어디를 찾느냐고 물었다. 인상주의 회화가 있는 800번대 전시실을 물었더니, 그는 지도 위 825방을 콕 집으며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거기에 고흐가 있어. 난 네가 거기를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
딱히 고흐를 먼저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동양인 여행객들이 고흐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직원의 짐작대로 2층 19~20세기 유럽 회화관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공간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사실 나 역시 아주 오래전 메트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 전시실부터 찾아가 관람을 시작했었다.
오픈 런의 보람이 있었다. 그 인기 많은 방에 우리 가족밖에 없어서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정말 고흐 그림이 많았다.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을 제외하면 여기가 고흐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흐 그림 중 내가 좋아하는 '첫걸음마'이다. 평생을 고독 속에 살았을 고흐가 이토록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을 담아냈다니.
800번대 전시실은 고흐뿐만 아니라 인상주의 작가별로 구획이 잘 나뉘어 있었다. 파리 오르세 박물관만큼이나 근대 회화와 조각이 많았다. 여기는 대체 그림을 얼마나 사들인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이도 본인이 아는 그림이 많아서 신나게 관람했다.
메트에도 조르주 쇠라의 유명한 작품,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있다. 단, 우리가 아는 그 거대한 완성작이 아니라 작은 습작이다. 아이는 아는 그림에 반가워했다가 유명한 그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다. 습작이어서 점묘 표현은 다소 투박했지만 전체적인 구도와 색감은 완성작과 유사했고, 작가의 고민과 연구의 흔적이 보여 흥미로웠다.
원래 19세기 유럽 회화사는 '고전주의-낭만주의-사실주의-인상주의' 순서로 흐르지만, 우리 가족은 인상주의부터 관람을 시작했기 때문에 정석적인 코스 대신 인상주의부터 시간을 거꾸로 혹은 발길 닿는 대로 즐기며 관람했다.
18세기 카날레토의 풍경화도 볼 수 있었다. 그랜드 투어를 통해 베네치아를 방문했던 영국 귀족들이 베네치아 여행의 필수 기념품으로 꼭 구매했다는 바로 그 그림들이다. 2년 전, 우리 가족도 베네치아를 여행했던 추억이 있어서 더욱 친숙하고 반가웠다.
현대와 동시대 미술은 1,2층에 걸쳐 전시되어 있었다. 2층의 일부를 관람하다가 한국인 하이라이트 투어 시간이 되어 투어 장소로 이동했다.
한국어 투어는 매일 있는 것은 아니다. 홈페이지에서 투어가 있는 요일을 확인하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방문한 것이다.
낮 12시, 1층 534번 방에서 한국어 투어가 시작된다. 시간 맞춰 그 장소로 가서 선착순 30명이 스티커를 받으면 참여 가능하다. 정원인 30명을 넘긴 상황이었지만 도슨트는 친절하게도 모두에게 스티커를 나눠주셨다. 멀리서 오셨을 텐데 몇 분 더 많으면 어떠냐며.
투어는 약 한 시간 동안 5~6점의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는 코스다. 하이라이트 투어라고 하지만, 박물관의 대표작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도슨트의 개인적 아이디어가 반영된 투어이다. 설명하는 사람에 따라, 또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코스는 매번 달라진다고 한다. 오늘 우리와 함께해 주신 도슨트는 조각 전공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조각 위주로 설명을 해주셨다.
중간중간 회화 작품도 감상했지만 그리스 아르카익기의 쿠로스로 시작해 현대 작가의 조각 작품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이번 투어는 조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도슨트께서 쿠로스, 키아로스쿠로, 마티에르 같은 전문 미술 용어들도 알려주셔서 아이가 열심히 들었다. 단어가 어려운지 나에게 몇 번씩 되물으며 열심히 외우는 아이의 모습이 기특했다.
메트로폴리탄은 규모가 큰 만큼 당일 재입장이 가능하다. 게다가 센트럴파크 옆에 위치해 센트럴 파크와 함께 묶어 방문하기 좋다. 박물관 내부 식당은 가격도 비싸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센트럴파크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뉴욕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할랄 푸드 트럭의 맛이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내가 꿈꾸던 뉴욕 여행은 센트럴파크에서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매일매일 빡빡한 일정의 강행군이었다. 공원은 아름다웠지만 서울의 비둘기만큼이나 다람쥐가 많았고 날은 너무 더웠다. 결국 푸드트럭에서 산 도시락을 서둘러 먹고 시원한 박물관으로 복귀했다.
이동 통로마다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로댕의 주요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르네상스 회화관은 일반적으로 국제 고딕 양식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곳엔 고딕 회화 옆에 신즉물주의 화가 베크만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베크만은 후기 고딕의 표현주의 양식과 제단화 형식에 영향을 받아 3단 제단화 형식을 즐겨 사용한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이 미술사적 연결고리를 실제 작품의 배치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니 그 감동이 훨씬 강렬했다.
국제 고딕부터 18세기 회화까지 전시되어 있는 이 공간에 맥락을 계승한 현대 회화를 과감히 개입시킨 연출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특별 기획전도 아닌 상설 전시에서 이런 파격적이고 세련된 조합을 보여주다니, 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누구인지 궁금해질 정도로 훌륭한 통찰이었다.
그 옆에는 현대 구상회화 작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도 있었다. 베이컨은 밑그림 없이 캔버스에 직접 물감을 올리고, 손이나 헝겊으로 거칠게 문지르며 우연 속에서 필연적인 형상을 만들어 낸다. 이 거칠고 표현주의적인 작품이 고딕 회화와 나란히 놓이니, 베이컨의 기괴한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엘그레코의 톨레도 풍경과 세잔의 풍경화, 엘그레코의 인물화와 피카소 청색시대 인물화도 짝을 이루고 있었다. 르네상스 작가와 현대 작가의 작품이 함께 놓여, 시대를 뛰어넘어 예술적 영감이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보여주었다.
오래전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고도, 톨레도를 여행하며 엘 그레코 그림을 처음 보았었다. 당시에도 그의 그림은 르네상스 회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파격적이고 현대적인 분위기에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오늘 이곳 메트에서 세잔의 풍경화 옆에 걸린 엘 그레코를 다시 마주하니 그때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도 묘하게 닮아 있는 그림에서 시대를 앞서간 거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엘 그레코와 피카소. 나란히 걸린 작품 속에서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이 유사함을 볼 수 있다. 뼈만 남은 듯 앙상하고 길게 늘어난 팔다리, 창백하고 우울한 푸른 톤, 신비롭고 영적인 분위기까지. 스페인 태생인 피카소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엘 크레코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엘 그레코는 스페인에서 활동한 그리스 출신 화가로, 엘 그레코(El Greco)도 본명이 아니라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엘 그레코가 르네상스의 완벽한 비례를 깨고 주관적인 변형을 시도했다면, 세잔은 그의 구도에서 영향을 받아 사물을 원통, 구, 원뿔로 환원하며 형태의 해체를 실험했다. 그리고 피카소는 이 두 스승의 유산을 결합하여, 대상을 조각내고 재조립하는 큐비즘을 완성해 냈다.
피카소는 엘 그레코를 '영혼의 아버지', 세잔을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불렀다. 엘 그레코를 피카소가 부활시켰고, 그 부활은 곧 현대 미술의 위대한 시작이 되었다.
북유럽의 르네상스 피터 브뤼헐의 '곡물 수확'이다.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를 읽은 뒤로, 나에게 이 그림은 그 책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되었다.
병세가 깊어져 말조차 앞뒤가 맞지 않던 저자의 형은 어느 날 문득 치킨 맥너겟을 찾았다. 저자는 형을 위해 맨해튼 밤거리를 달려 맥너겟을 사 왔고, 형제는 병실에서 둘만의 작은 소풍을 즐겼다. 저자는 그 짧고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 그림을 바라본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농부들의 평범하고도 숭고한 장면이다.
그리고 저자가 말했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메트로폴리탄에서 10년간 경비원으로 근무한 뒤 뉴욕 도보 여행 가이드로 변신하여 이 책을 썼다. 어린 시절, 그의 어머니는 미술관에 가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를 고르기 전엔 집에 가지 못하게 했고, 그 영향은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를 만들어 냈다.
10년의 근무를 마치고 메트를 떠나던 마지막 날, 그는 자신만의 최애 작품을 추려낸다. 그가 선택한 단 하나의 작품은 초기 르네상스 화가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였다. 고통스러운 형상임에도 형 톰을 떠올리게 해 준다는 그 그림을 보며 그는 말했다. '이 그림이라면 확실히 내가 메트 바깥으로 품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프로이트는 상실한 대상에게 쏟았던 리비도(에너지)를 새로운 대상으로 옮겨 쏟는 과정을 '애도'라 정의했다. 반면 상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도되지 못한 상실은 무의식 중에 '우울'로 남아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메트로폴리탄에서 보낸 10년은 사랑하는 형을 잃은 슬픔을 예술에 투영하고, 서서히 세상 밖으로 다시 나갈 힘을 만들어 내는 '애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집트 관 입구에 있는 덴두르 신전 전시 공간은 정말 압도적이다.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과 신전 주변의 잔잔한 물은 마치 나일강변을 연상시킨다.
1970년대 아스완 댐 공사 때 수몰될 뻔한 것을 미국이 기증받아 가져왔다고 한다. 이 거대한 신전을 통째로 옮겨와 실내에 복원했다니. 그 스케일이 정말 놀랍다. 또한 흥미롭게도 이 신전은 고대 이집트 왕국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한다. 신전 벽면 부조에 새겨진 파라오가 이집트의 왕이 아니라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라고.
과거 메트로폴리탄 방문 당시, 마침 '미라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그때 보았던 그 미라의 모습이 꽤나 강렬했다. 나는 아이에게 진짜 미라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전시장에는 화려한 관들만 가득할 뿐 붕대를 감은 실제 미라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여러 직원에게 미라의 위치를 물었지만, 다들 '글쎄?', '저쪽인가?'라고만 했다. 그러다 한 직원이 말했다. '네가 저 관을 깨부수면 그 안에서 볼 수 있지'라고. 농담이었겠지만 좀 어이가 없었다.
결국 우리가 찾은 건 얼굴에 데스마스크가 씌워진 미라 정도였다. 메트로폴리탄에서 아이에게 붕대 감긴 온전한 미라를 보여주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후 여행에서 방문한 자연사 박물관에서 이날을 보상받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볼 수 있었다.
메트로폴리탄은 보통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수요일 휴무) 운영하지만, 금요일과 토요일은 오후 9시까지 연장 운영을 한다. 마침 오늘이 그날이었지만, 오픈런으로 체력이 바닥난 우리 가족은 5시에는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강제로 나가라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우리는 하나만 더 하나만 더 하다가 결국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온종일 딱딱한 대리석 바닥을 걸었더니 발이 많이 아팠다. 이번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날이었다.
여행이 일주일 넘어가자 아이가 한식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오늘 몹시 피곤했던지라 저녁으로 한식을 먹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숙소 주변의 한식당을 찾았다. 아시안푸드 골목인지 각종 종류의 아시안 식당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한식당만 대기줄이 있었다. 유명한 맛집도 아니고, 그냥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한식당이어서 찾아간 것일 뿐이었다.
남편은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해외에서 한식당이 이렇게 붐비는 건 처음 본다고. 더 놀라운 건 주방장도, 직원도, 홀을 가득 메운 손님들도 대부분 한국인이 아니었다. 외국인이 만들고 외국인이 즐기는 모습, 이것이 진정한 한식의 현지화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남은 여행 기간 내내 어딜 가나 한식당은 늘 만원이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남편은 순두부, 나는 떡볶이, 아이는 김밥을 주문했다. 아이는 오랜만에 보는 김밥에 반가워했다. 한국에서 흔하디 흔한 김밥 한 줄을 2만 원이나 주고 먹게 될 줄이야.
숙소에 도착하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이렇게 타이트하게 여행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내일은 좀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