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자유의 섬 & 엘리스 섬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자, 사실상 미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뉴욕 여행이 결정되었을 때 아이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우리는 흔히 '자유의 여신상'이라 부르지만, 이곳의 정식 명칭은 여신이 아닌 그저 '자유의 상(Statue of Liberty)'이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선물했으며, 내부는 에펠탑을 만든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했다.
자유의 여신상을 만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가장 흔한 방법은 크루즈를 타고 주변을 지나는 것인데, 후기에 따르면 전날이나 당일에도 티켓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혹은 무료 통근 페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나도 오래전 뉴욕 여행 때 그 페리를 탄 적이 있는데, 꽤 가까운 거리에서 섬을 지나가며 여신상을 볼 수 있었다.
히지만, 섬 안으로 직접 들어가려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티켓은 입장 가능한 구역에 따라 세 종류로 나뉜다.
1. 크라운(Crown): 여신상의 왕관까지 올라가는 티켓
2. 발판(Pedestal): 여신상의 발판(기단부)까지 올라가는 티켓
3. 일반 입장(General Admission): 섬에 상륙하여 주변을 둘러보는 티켓
세 가지 티켓의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 문제는 '예약 시기'였다.
뉴욕 여행이 결정되자마자 아이는 '크라운'에 올라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여행 기간인 한여름 더위에 창문도 없는 좁은 동상 내부를 걸어 올라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예전 피렌체 두오모를 오르며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라 망설여졌다. 그러다 아이가 간절히 원하니 힘들더라도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을 땐, 이미 너무 늦은 뒤였다.
크라운 티켓은 최소 3~4개월 전에는 예매해야 했었다. 1학기 학교 업무로 정신없이 바빴고, 망설이다가 예매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결국 그다음 단계인 '발판' 티켓을 예매해야 했고 아이는 크게 실망했다. 혹시나 취소표가 나올까 싶어 종종 사이트에 들어가 봤지만, 끝내 표를 구하지 못했다.
자유의 여신상 방문 당일,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뉴욕 남단 배터리 파크로 향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페리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을 선 순서대로 탑승하며, 일정 인원이 되면 출발한다. 이때 타지 못하면 다음번 페리를 기다렸다가 타면 된다.
배가 출발하고 멀어지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는 풍경이 무척 멋졌다.
자유의 상이 있는 곳은 '자유의 섬'이라 부른다. 페리를 탈 때는 갈 때는 배의 오른쪽, 나올 때는 왼쪽에 앉는 것이 좋다. 그 방향에 앉아야 자유의 상 정면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리 노선은 '배터리 파크→자유의 섬→엘리스 섬→배터리 파크' 순으로 운행된다. 자유의 섬 관람 후 원한다면 엘리스 섬에 내릴 수 있고, 원치 않으면 그대로 배에 머물러 배터리 파크로 돌아오면 된다.
자유의 섬에 도착해 다음 페리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섬에 내리면 가장 먼저 무료 오디오 가이드 대여소를 만날 수 있다. 한국어 안내도 지원되어 섬 곳곳을 다니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주요 관람 포인트는 여신상 앞 광장에서의 기념 촬영, 여신상 내부 입장, 그리고 기존 박물관과 야외에 새로 개관한 박물관을 관람이다.
우리는 예매한 티켓으로 기단부 전망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로 3분의 2 지점까지 이동한 후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나온다. 동상 바로 아래 기단부를 빙 둘러싼 전망대에서는 위로는 여신상의 압도적인 모습을, 반대편으로는 뉴욕과 뉴저지의 탁 트인 전망을 조망할 수 있다.
만약 크라운 티켓을 예매했다면, 별도의 좁은 계단을 통해 여신상의 왕관까지 오르게 된다.
섬 끝자락에 위치한 새로운 박물관에는 여신상의 역사와 제작 과정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었다. 단순히 거대한 동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전시를 통해 본 그 규모와 정교함은 하나의 건축물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특히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한 치밀한 내부 도면을 보고 나니, 그 좁은 계단을 통해 크라운까지 직접 올라가 보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쉬워졌다. 마침 날씨도 선선해 밀폐된 내부라도 쾌적했을 텐데 말이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까.
섬 내 편의시설은 다소 아쉬웠다. 식당과 카페는 열악했고, 기념품 숍도 규모가 작아 딱히 눈길을 끄는 디자인이 없었다. 식당 야외 공간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내일 있을 친척들과의 만남 때문에 남편에게 연락이 왔는데, 섬이라 그런지 통신 연결도 원활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페리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서 줄을 섰다.
배에 올라타니 몹시 피곤했다. 그냥 숙소로 바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음 코스인 엘리스 섬을 들르기로 했다.
엘리스 섬은 19세기 이민자들이 미국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곳으로, 당시 건물은 현재 이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입구에서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이민자들의 삶과 인터뷰를 들을 수 있었지만, 나는 전시 내용보다 건축물 자체에 더 마음이 끌렸다. 넓은 홀에 앉아 있으니 그 옛날, 초조한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렸을 이민자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나무 손잡이, 돌계단, 앤티크 한 라디에이터와 돌출된 배관 등 오래된 건물만이 줄 수 있는 고풍스러운 역사성이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낡은 기숙사였다. 심사가 무한정 길어지면 이곳에서 지내야 했다고 했다. 마치 난민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삭막한 분위기에 아이는 무척이나 끔찍스러워했다.
박물관을 나와 배터리 파크로 돌아가는 페리를 기다렸다. 엘리스 섬에서 바라보는 자유의 여신상은 매우 가깝고 선명했다. 19세기 엘리스 섬에 묶여 자유의 땅을 눈앞에 두고도 갈 수 없었던 이민자들에게 저 여신상은 어떤 의미였을까.
맨해튼으로 돌아가는 페리는 고역이었다. 2층은 지붕이 없어 뜨거운 햇살이 그대로 내리쬐었고, 1층은 앉을 곳은커녕 손잡이조차 없어 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흔들리며 버텨야 했다. 이동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이날 일정 중 가장 피곤했던 순간이었다.
배터리 파크에 도착해 주변의 인디언 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을 방문했다. 예전 월스트리트를 방문 당시 더위를 피해 들어가려다 화재 경보 오작동으로 문이 닫혀 발길을 돌렸던 곳이다. 이번에는 운 좋게 관람할 수 있었다.
화려한 보자르 양식이 돋보이는 웅장한 이 건물은 19세기 뉴욕항의 세관 검사를 하기 위해 지어진 옛 세관 건물이다. 현재는 미국 초대 재무장관을 기념해 '알렉산더 해밀턴 미관세청'으로 불리며, 내부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분관인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인디언'이라고 하면 흔히 미국 원주민만 떠올리기 쉬운데, 이곳은 북미뿐만 아니라 남미, 알래스카 등 아메리카 대륙 전역의 다양한 원주민 문화를 아우르고 있어 생각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덕분에 꽤 오랜 시간 머물며 관람했다.
박물관을 나와 월스트리트의 증권 거래소를 잠시 둘러본 뒤,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가며 피곤했던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