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 팁부터 BTS 스팟까지
오늘의 일정은 UN 본부 가이드 투어였다. UN 본부는 사전에 예약한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다. 영어 투어는 시간대별로 다양하지만, 한국어 투어는 수가 많지 않다. 가능한 한 한국어로 듣고 싶어 약 한 달 전 미리 예약해 두었다.
숙소가 있는 타임스퀘어에서 UN 본부까지는 다소 애매한 거리다. 지하철역에서도 꽤 걸어야 해서, 뉴욕 여행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내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42번가를 가로지르는 M42 버스였다. 참고로 뉴욕의 도로는 애비뉴(Avenue)와 스트리트(Street)가 격자 형태다. 42번가를 따라 이동하면 정거장은 애비뉴 순서로 이어지고, 반대로 애비뉴를 따라가면 스트리트 번호로 정거장이 바뀐다.
유모차를 끈 백인 아주머니가 버스를 타려 했다. 뒷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기사는 만원 버스라 불가능하다고 거절했다. 결국 그녀는 유모차를 힘겹게 끌고 앞문으로 올라타더니 버스 안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좀 뒤로 가주세요! 여기 유모차 있어요! "
와, 이 아기 엄마 패기 있다. 우리는 유모차 끌 때마다 혹시 주변에 폐를 끼치진 않을까 늘 조심하곤 했는데.
그런데 아주머니는 이내 자기 앞에 서 있던 우리에게 명령하듯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그때부터 뭔가 느낌이 싸했는데, 역시나, 이후에도 계속 아이를 데리고 탔는데 왜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느냐며 큰 소리로 투덜거렸다. 급기야 근처에 있던 할머니가 기침을 하자, 그녀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이도 있는데 마스크 좀 쓰세요! Disgusting(역겨워)!"
아이는 Disgusting을 영어 학원 단어시험으로만 접했는데 실제 상황에서 어떤 느낌으로 쓰이는지 알 거 같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실전 영어 수업.
버스는 42번가 끝에서 멈췄다. 투어 전, UN 본부 바로 맞은편에 있는 방문자센터에 들러 출입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 사전 예약을 완료하면, 예약 확인 이메일과 함께 한 개의 웹사이트 링크가 전송된다. 해당 링크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한 뒤, 방문자 전원의 정보와 증명사진을 등록해야 한다. 이 과정을 마치면 출입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만약 사전 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현장에서 직접 정보를 입력하고 사진을 찍어서 카드를 만들 수 있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다. 우리의 경우, 미리 등록한 남편의 증명사진이 조금 어두워서 현장에서 다시 찍어야 했다.
완성된 출입카드에는 사진이 인쇄되며, 이 카드를 지참하고 UN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투어 중에도 계속 옷에 부착하고 있어야 하고, 투어가 끝나면 그대로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다.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면 본격적으로 UN 건물에 입장하게 된다. 로비에도 소규모 전시가 마련되어 있어, 투어 시작 전까지 그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오전 11시 15분 한국어 투어를 신청했다. 특별히 UN에 큰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선택한 일정이었다. 예상대로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초중고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었다.
가이드를 맡아주신 분은 UN 직원 중 유일한 한국인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와 일본어 투어도 진행하신다고. 그래도 모국어인 한국어로 설명할 때면 두 배속으로 두 배의 정보를 쏟아낸다고 하셨다.
투어는 UN의 역사, 평화 유지 활동, 세계 각국이 기증한 전시품, 그리고 다양한 회의실 등을 둘러보며 진행됐다. 아이에게 UN에 간다고 처음 말했을 때, “UN이 뭐야?”라고 물었었다. 그런데 막상 투어가 시작되자, 아이는 가이드의 질문에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대답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투어가 끝난 뒤 어찌된 영문인지 아이에게 물어보니,
“UN 간다고 해서 어제 구글링해서 미리 공부했어.”
아기인 줄만 알았는데, 언제 이렇게 커서 스스로 검색해서 예습까지 했을까.
내부에서 보는 전망도 좋다. 액자 같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이스트강 뷰도 일품이었다.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총회 회의장이다. 뉴스에서나 보던 그곳, 그리고 BTS가 연설하고 뮤직비디오도 촬영했던 바로 그 장소다. 회의실의 좌석은 각 나라별로 정해져 있지만, 특정 국가가 늘 같은 자리에 앉지 않도록 공평하게 순서를 바꾼다고 했다.
투어는 약 한 시간 정도로 비교적 짧게 끝났다.
지하에는 기념품샵이 있다. 딱히 살 건 없었지만, 각 나라별로 기념품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어 나라별 기념품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날이 더워서, 기념품샵 맞은편에 있는 Vistors Cafe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테이블은 꽤 낡았고, 메뉴도 종류가 많지 않았으며, 전반적인 시설도 별로였다. 이 소박한 식사의 가격이 $51.99, 한화로 약 73,000원이다. 미친 뉴욕 물가.
UN 정문의 문이 공교롭게도 7개였다. BTS의 Permission to Dance 뮤직비디오에서 멤버 일곱 명이 동시에 문을 열고 나오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또 영상 속에서 BTS가 행인들과 함께 춤을 추던 잔디밭은, 실제로는 직원 전용 정원으로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점심 식사 중에 서밋 전망대(SUMMIT One Vanderbilt)를 예약했다. UN에서 멀지 않은 거리여서, 다음 일정으로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