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4층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미국 미술의 시대가 시작된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서양 미술사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미술의 중심축이 유럽, 특히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전시장을 둘러보던 중, 미술관 보안요원이 남편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 아이의 아빠인가요?"
순간 남편은 당황했다. 무슨 일이지? 아이가 뭘 잘못 건드렸나?
"네, 맞는데요. 혹시 우리 아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보안요원이 대답했다.
"아니요, 여기는 수십억을 호가하는 작품도 많고 노출된 조각도 많죠.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 행동은 예측불허라 꼬마 손님이 오면 우리도 초긴장 상태로 예의주시합니다. 특히 저만한 또래의 남자아이라면 더더욱요."
그는 말을 이었다.
"당신 아이가 들어올 때부터 계속 지켜봤는데... 정말 놀랍군요. 작품과 절대적인 안전거리를 딱 유지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감상하고 있어요.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어서 칭찬해 주려고 불렀습니다. 혹시 따로 미술관 교육이라도 시켰나요?"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실은... 아이 엄마랑 박물관을 워낙 많이 다녀서요."
잭슨 폴록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독창적인 국제적 추상 양식을 만들어낸 화가로, 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술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회화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평면성’을 강조했다. 그는 르네상스 이후 오랫동안 화가들이 캔버스에 입체감을 부여하고 대상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 했던 착시 효과를 비판했다. 그림은 평평한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것이므로, 억지스러운 입체감 대신 본래의 ‘평면’이라는 성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린버그는 유럽의 현대 추상 미술이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지우고 단순한 색과 선만 남기며 평면성을 향해 나아갔다고 보았으며, 그 흐름이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평가했다. 폴록은 붓 대신 물감을 캔버스에 뿌리거나 흘리는 '액션 페인팅' 기업을 사용했다. 이로 인해 화면은 깊이나 원근 대신 오직 표면과 물감의 흔적만 남게 되는데, 그린버그는 이를 회화가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이론은 전후 미국의 경제적 번영과 맞물려, 문화적으로 유럽에 뒤처져 있던 미국이 예술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잭슨 폴록은 시대적 흐름과 평론가의 지지에 힘입어 성장한 화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액션 페인팅의 격정적인 표현과 달리, 균질한 색면과 거대한 평면 구성을 추구한 ‘색면 추상’ 경향도 나타났다. 이들은 일관된 색채와 단순한 형태를 통해 깊은 정서적 울림을 전달하고자 했다.
“크기는 감동에 비례한다.”
이 신념은 색면 추상 작가들에게 중요한 원칙이었으며, 바넷 뉴먼과 마크 로스코의 작업에서 잘 드러난다.
뉴먼은 질감을 철저히 배제하고 수직의 스트라이프(‘지퍼’라 불리는 선)를 중심으로 구성된 색면을 제시했다. 이는 회화의 형식적 본질을 탐구함과 동시에 강렬한 심리적 반응을 유도하려는 시도였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대형 캔버스 위에 겹겹이 스며든 색채가 관람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의 회화는 종교적 분위기와 명상적 태도, 그리고 숭고함을 체험하게 하는 공간을 형성한다.
그의 작품은 학생들 사이에서 “이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는 말을 듣는 그림 중 하나이다. 잭슨 폴록에 비해 한국에서는 덜 알려져 있지만, 미술 시장에서의 가치를 엄청나다. 실제로 2014년에는 그의 작품 '보라, 초록, 빨강'이 약 2,500억 원에 거래되어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네오다다는 다다이즘의 반예술적인 태도를 계승하면서도 이를 긍정적인 창조 행위로 전환했다.
제스퍼 존스의 '성조기'는 국기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국기 그 자체를 하나의 '사물'로 취급했다. 익숙한 이미지지만 거친 표면 처리를 통해 이것이 단순한 재현이 아닌 물질임을 인식하게 한다.
팝아트는 광고, 만화, 상품 등 일상의 이미지를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작가의 내면보다는, 우리가 매일같이 보는 대중문화가 주제가 된 것이다. 예술과 대중의 경계를 허물겠다는 시도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팝아트 작품을 보다 보면 오히려 “이게 왜 예술이지?”라는 의문이 더 들기도 한다. 수프 깡통과 만화 장면이 갤러리에 있고 고가에 거래되는 것이 더 난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마저 던지게 한다.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작품을 공산품처럼 대량 생산하며 ‘예술은 단 하나의 오리지널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자신의 작업실을 ‘팩토리(Factory)’라 부르며 조수들을 두고 작품을 찍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집 팬트리에도 있는 캠벨 수프가 미술관에 걸려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흥미롭다.
만화 이미지를 차용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인쇄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쇄 망점인 ‘벤데이 도트(Benday dots)’를 붓으로 하나하나 그려낸 정교한 수작업이다. 이는 기계적 이미지와 회화적 표현의 경계를 흐리며 원본과 복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클래스 올덴버그는 딱딱한 사물을 부드러운 재료로 변형시킨 ‘연성 조각’이나 일상 사물을 거대하게 확대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서울 청계천 입구에 설치된 거대한 소라 모양의 ‘스프링’이 그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올덴버그를 싫어하지 않지만, 스프링에는 정이 가지 않는다.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채 제작되어서인지, 장소적 상징성이 결여된 느낌이다.
마르셀 뒤샹의 '왜 로즈 셀라비는 재채기를 하지 않지?'는 그의 대표작 '샘' 못지않게 난해한 작품이다. 새장 안에 각설탕 모양의 대리석, 체온계, 오징어뼈를 넣었다.
작품 제목에 등장하는 ‘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는 뒤샹이 사용한 또 다른 자아, 그의 부캐이다. 그는 종종 ‘로즈 셀라비’라는 이름으로 여장을 하고 다녔다.
조지 시걸은 실제 인물에 석고 붕대를 감아 본을 뜨는 방식으로 등신대 조각을 제작한다. 채색되지 않은 흰색 인체는 일상적 공간 속에서 정적이고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층 디자인 전시실에는 볼펜, 포스트잇, 의자, 크록스 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물건들이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었다. 아이는 낯익은 물건들이 전시장에 놓인 모습을 꽤 흥미로워했다.
오랜 관람으로 지치고 힘들어, 이제 좀 쉬자는 마음으로 야외 조각정원으로 나갔다. 그런데 무심코 눈길을 던진 끝에, 응? 저건 로댕? 마티스? 립시츠?
정원을 둘러보며 내가 직접 찾아낸 작품만 해도 로댕, 마이욜, 피카소, 립시츠, 헨리 무어, 마티스, 브랑쿠시 등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유명한 조각품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고 신기했다.
아쉬운 점은 작품 설명 패널이 눈에 잘 띄지 않거나 구석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만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만 보일 뿐, 정작 누구의 작품인지에 대한 안내는 부족했다. 휴식 공간에 예술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은 좋지만, 관람객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와 안내는 필요해 보였다.
미술관으로 다시 들어와서 1,2층의 남은 전시들을 돌아보았다.
2층에서 리처드 세라의 거대한 큐브 구조물을 만났다. 실물로는 처음 접했는데, 압도적인 크기와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을 걸으며 공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오픈런으로 10시에 입장해 폐관 시간인 오후 5시가 다 되어서야 미술관을 나섰다. 현대카드 할인(20%)을 받아 기념품도 알차게 구입했다.
미술관을 나와 근처에 있는 시그램 빌딩을 찾아갔다. 구글맵을 잘못 보고 한 블록을 지나쳐다가 다시 돌아와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시그램 빌딩을 찾기는 쉽지 않다.
미스 반 데 로에가 1958년에 설계한 이 건물은 현대 사무용 빌딩의 전형이 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워낙 많은 후대 건물이 이 양식을 따르는 바람에 지금 보면 그저 평범한 네모난 빌딩처럼 보인다.
예전에 시카고 여행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주택을 찍은 사진을 보고 친구가 “왜 남의 집을 찍었냐”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너무나 익숙해져서 오히려 특별해 보이지 않는 비운의(?) 걸작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록펠러센터도 둘러보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쇼케이스에 놓인 장독대를 발견했다. 웬 장독대? 알고 보니 한국 반찬 가게였다. 여기에서 삼각김밥을 사고, 근처 타겟에 들러 컵라면을 사서 호텔로 돌아갔다. 뉴욕 한복판에서 즐기는 삼각김밥과 컵라면, 완벽한 저녁 식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