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전
오늘의 일정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 방문이었다. 타임스퀘어 근처에 숙소를 잡은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주요 관광 명소 대부분이 도보권이라 이동이 무척 편리했다. MoMA 역시 숙소에서 걸어서 약 14분 거리였다. 월요일 아침, 맨해튼의 활기찬 거리를 가로질러 미술관으로 향했다. 예전 뉴욕 여행 때는 마침 MoMA가 공사 중이라 방문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이 첫 방문이었고, 그만큼 기대도 컸다.
뉴욕 현대미술관, 흔히 줄여서 'MoMA'라고 부르는 이곳은 서구에서 최초로 설립된 현대미술관이다.
비슷한 이름의 미술관으로 'MOCA'가 있는데, 이는 Museum of Contemporary Art의 약자로, 방콕 현대미술관 등이 이 이름을 쓴다. 주로 MoMA는 '모던 아트(근대미술)'를 중심으로, MOCA는 '컨템퍼러리 아트(동시대 미술)'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다. 한편,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은 'MMCA(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라는 이름을 쓰는데, 이름 그대로 근대와 동시대 미술을 모두 아우른다.
일반적으로 ‘모던 아트’는 19세기말 인상주의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전후까지의 미술을 의미한다. 그 이후의 미술은 후기 모더니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구분된다.
나는 ‘현대미술관’이란 이름을 보고, 현대(Hyundai) 그룹에서 운영하는 곳인 줄 알았던 어린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현대카드가 실제로 뉴욕 현대미술관에 후원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현대카드 소지자는 본인 포함 동반 2인까지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심지어 기념품 숍에서도 할인이 적용된다. 마침 남편이 현대카드를 갖고 있어 유용하게 활용했다. 거의 사용하지 않는 카드였지만 실적과 무관하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현대카드가 없었다면 하나 만들려고도 했다.
티켓은 일반 창구가 아닌 멤버십 데스크에서 카드를 제시하고 수령하면 된다.
MoMA는 총 6층 규모로 층마다 전시 성격이 다르다.
6층 기획전
5층 모더니즘 작품 (19세기말~20세기 초)
4층 포스트모더니즘 작품
3층 디자인 전시
1층 야외 조각 정원
가장 유명한 전시 공간은 단연 5층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주요 작품들이 이곳에 모여 있어, 오전 10시 개장과 동시에 관람객들은 약속이나 한 듯 5층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도 5층부터 관람을 시작했고, 이곳에서만 약 두 시간을 머물렀다. 마치 예쁜 아이 옆에 또 예쁜 아이가 있는 것처럼, 유명한 작품 옆에 또 다른 명작이 줄지어 있었다.
전시는 후기 인상주의 거장인 고흐, 고갱, 세잔의 작품으로 시작되었다.
생전에 고흐는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고, 세잔은 한 점도 팔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흐 사후 100년이 지난 1990년, 그의 '가셰 박사의 초상'은 당시 세계 최고가로 경매 낙찰되었다. 세잔의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역시 한때 최고가 작품이었으며, 2012년에는 카타르 왕족이 다시 약 2,900억 원에 구입했다.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 또한 카타르 왕족이 약 2,300억 원에 구매해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고가에 거래되는 이유는 단순히 그림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미술사적 영향력이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첫째, 미술사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가?
둘째, 기존 전통을 뒤집고 새로운 예술 언어를 창조한 선구자인가?
셋째, 동시대 및 후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
이들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은 현대 추상회화를 탄생하게 한 사람들이다.
고흐는 강렬한 감정과 붓터치로 표현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고갱은 원색의 사용과 상징성을 통해 마티스의 야수파 형성에 기여했다.
세잔은 형태 해체와 구조적 접근을 통해 피카소의 입체주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실제로 피카소는 '내 유일한 스승은 세잔'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갱에게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그림이 있었다니. 너무 귀여운 강아지 그림.
후기 인상주의 화가 중 고흐의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세 화가 중에서, 거실에 걸어둘 만한 예쁜 그림을 고르라고 한다면 고흐의 작품을 선택할 것 같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는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고흐라는 화가 자체가 워낙 인기 있는 건지, 아니면 별이 빛나는 밤이 특별히 사랑받는 작품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조금 의아했다.
전시는 인상주의를 시작으로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중요한 사조들이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인상주의
→ 입체주의, 표현주의, 야수파
→ 미래주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 신조형주의, 데 스틸
→ 다다이즘, 신즉물주의
→ 초현실주의
<달나라 여행>은 1902년, 조르주 멜리에스가 만든 짧은 영화다. 재미있어서 두 번이나 봤다. 우주비행사들이 포탄 같은 로켓을 타고 날아가 달의 눈을 들이받으며 착륙한다. 달에서 외계인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겪은 뒤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 인간이 실제로 달에 가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영화의 상상력이 놀랍고, 과학 단체를 풍자하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입체주의는 시기에 따라 세잔적 큐비즘, 분석적 큐비즘, 종합적 큐비즘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유명한 현대미술 작품 중 하나이며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린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세잔적 큐비즘에 해당한다. 세잔의 단순화된 형태, 아프리카 조각의 영향을 받아 대상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하고 해체했다.
피카소와 브라크가 공동 작업하던 시기인 분석적 큐비즘에서는 두 작가의 작품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대상을 철저히 분해하고 재구성하며, 색채는 갈색, 회색 톤으로 제한했다.
마지막으로 종합적 큐비즘 시기에는 다시 시각적 요소가 부활하며 신문지나 벽지를 붙이는 '파피에 콜레'와 콜라주 기법이 등장한다. 피카소의 <기타>가 대표적이다.
제일 위에 있는 작품이 피카소의 <기타>이다.
최초의 레디메이드이자 키네틱 아트인 뒤샹의 <자전거 바퀴>이다. 일상적인 나무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놓은 형태이다. 하지만 1913년 원작은 뒤샹의 동생이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려서 소실되었고, 현재 전시된 건 1951년에 다시 만든 세 번째 버전이다.
"원작은 동생이 쓰레기인 줄 알고 버렸대"
라고 아들에게 설명해 줬더니, 아들이 갑자기 울컥했다.
"엄마도 맨날 내 작품, 쓰레기라고 버리잖아!"
아니, 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내가 몬드리안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그림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이다.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뉴욕으로 온 몬드리안이 맨해튼의 격자무늬 도로와 화려한 네온사인, 그리고 브로드웨이의 재즈 음악 '부기우기(Boogie Woogie)'의 리듬감에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검은 선을 없애고 노랑, 빨강, 파랑의 작은 색면을 배치해 훨씬 더 역동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실제 뉴욕에 와서 이 그림을 보니 그 경쾌한 에너지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전시장 한쪽, 오랑주리 미술관을 축소해 놓은 듯한 방에 모네의 수련 연작이 걸려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작품 속에 파묻히듯 감상할 수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았다.
5층의 마지막 섹션은 초현실주의였다. 초현실주의에는 크게 두 가지 기법이 있다.
오토마티즘 (자동기술법): 무념무상으로 손의 흐름을 따라 기록하는 방식. (잭슨 폴록에게 영향)
데페이즈망: 익숙한 사물들을 엉뚱한 공간에 배치해 충격을 주는 기법. (달리,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1931)은 흐물거리는 시계로 유명한 작품이다. 배경의 절벽은 달리의 고향 카탈루냐 해안이고, 바닥에 있는 기괴한 형상은 달리의 옆모습이라고 한다.
바게트 빵을 머리에 이고 있는 달리의' 회고하는 여인' 조각상이다. 그동안 사진으로 앞모습만 알고 있었는데, 대머리인 여인의 뒤통수를 보고 우리 가족 모두 한참을 웃었다.
달리의 '작은 극장'은 11개의 유리 레이어로 이루어져 있다. 실물로 보니 그 유리 레이어가 확실히 눈에 띄었다.
5층 전시는 '마지막 초현실주의자'이자 '추상표현주의의 개척자'인 아실 고르키로 마무리되었다. 이제 4층으로 내려가면 본격적인 추상표현주의가 시작될 것이다.
5층에서만 2시간 넘게 보냈더니 지치고 배가 고팠다. 우리는 MoMA 내부 2층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른 층 전시를 이어서 관람하기로 했다.
이탈리아 식당인데, 우리가 늘 먹던 맛이 아닌 처음 맛보는 스타일의 요리였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