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표 대신 남편을 믿어도 될까?

뉴욕 도착

by 사막여우

코로나 이후 2023년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세 식구는 앞으로 2년에 한 번씩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2025년 여행지로 여러 후보지가 있었는데, 최종적으로 뉴욕이 선정되었다. 예전처럼 전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순 없지만,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국, 뉴욕에서의 여행은 아이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특히 시댁 친척 대부분이 미국에 살고 있어, 큰 아버님, 큰 어머님들 연세가 많으신 만큼, 더 늦기 전에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는 유학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추억 여행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박물관과 미술관을 좋아하기 때문에, 뉴욕의 문화적인 매력도 큰 이유였다.


여행 일정은 총 14박 16일로 계획되었고, 중간에 워싱턴 DC를 3박 4일 다녀오는 것 외에는 뉴욕에만 머물기로 했다. 유럽 여행 때는 휴직 중이어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이번에는 학교 업무도 많아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도 도시 간 이동이 많지 않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오전 9시 40분에 출발해 13시간의 시차를 거쳐 같은 날 오전 11시 10분,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터미널 1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는 별다른 문제없이 빠르게 통과했고, 위탁 수하물이 없어 바로 공항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공항 내부로 연결된 전철을 타려고 했는데, 직원 같은 어떤 분이 공사 중이라며 공항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다. 공항 일부가 공사 중이기는 했다. 하지만 공사 때문에 이동 동선이 변경되어야 한다면 표지판으로 알리면 될 것을 여행객에게 개인적으로 설명하는 상황이 이상했다. 공항 직원이 아니라 택시를 유도하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

얼떨결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공항으로 들어와 원래 계획대로 내부로 연결된 전철을 탔다. 미니멀리즘 여행을 추구하는 우리 가족은작은 기내용 캐리어 두 개만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굳이 공항 택시를 탈 필요는 없었다.


공항터미널 1에서 Jamaica Station까지는 에어트레인을 타고 이동했고, 그곳에서 지하철 E라인으로 갈아탔다. 환승 위치를 두고 남편과 잠깐 논쟁이 있었다. 평소엔 내가 여행 경로와 계획을 모두 준비하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남편이 옳았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굳이 내가 나설 필요 없다' 남편은 미국에 오래 살았고 뉴욕에거주했었다. 반면 나에게 뉴욕은 약 20년 전, 배낭여행으로 일주일 정도 머물렀던 기억이 전부다. 이번 여행은 남편을 믿어보기로 했다.


뉴욕 지하철은 예전보다는 많이 깨끗해졌지만, 서울 지하철과 비교하면 여전히 더럽고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아이는 뉴욕 지하철에 다소 충격을 받은 듯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오후 1시에 숙소에 도착했다. 모든 숙소는 남편이 예약했는데, 위치가 매우 훌륭했다. 타임 스퀘어와 도보 1분 거리. 창문은 열리지 않았지만, 유리창에 비치는 전광판 불빛만으로도 타임스퀘어가 얼마나 가까운지 느낄 수 있었다.


체크인은 오후 3시부터 가능해 그때까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몇 걸음만 걸으니 바로 타임스퀘어였다. 토요일 오후라 관광객들로 붐볐다.

타임스퀘어


뉴욕타임스

타임스퀘어 주변의 뉴욕타임스 건물을 찾아갔다.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건물이라 일부러 간 건데, 사전 정보가 없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만큼 평범한 모양이었다.

뉴욕타임스

렌초 피아노는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하다. 평범한 전면과 달리 건물 측면에 드러난 구조선을 보니 퐁피두 센터가 연상되는 것이 렌초 피아노가 설계한 건축물이 맞는구나 싶다. 두 건물의 형태나 규모는 다르지만, 구조를 외부로 드러내는 건축적 특징은 비슷한 것 같다.


점심은 미국의 패스트푸드 체인인 칙플레(Chick-fil-A)에서 먹었다. 남편이 유학 시절 자주 찾았던 곳으로, 뉴욕 보다는 미국 남부 지역에 매장이 더 많다고 한다. 처음에는 케첩 용기의 크기와 양에 놀랐다. 크고 두꺼운 케첩 포장을 여러 개 제공했다. 흥미롭게도 햄버거 안에는 커다란 치킨 한 덩어리만 들어 있고, 야채나 소스는 없었다. 다소 의외였지만 담백하고 맛이 좋았다. 소스가 없어서 케첩을 따로 주는 것 같았으나, 케첩 없이도 충분히 맛있었다. 남편이 추천한 벌집 모양 감자튀김도 만족스러웠다. 아직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은 브랜드지만, 국내에 진출해도 좋을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쉑쉑버거보다 더 맛있었다.

칙플레(Chick-fil-A)

오후 3시가 되어 호텔로 돌아와 체크인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아주 오래된 호텔이었다.


전망은 벽뷰였지만, 그조차도 너무나 뉴욕 스러웠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뉴욕에 사는 남편의 후배가 야경을 보여주겠다며 찾아왔다. 마침 시차 때문에 잠도 오지 않던 터였다. 차도 없고 아이가 있어 밤 외출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는데,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덤보

남편의 후배는 말하지 않으면 한국인인지 알기 어려울 만큼 독특하고 개성 있는 외모를 가졌다. 또한 매우 친절했다. 덕분에 우리는 편안하게 차를 타고 롱아일랜드 시티, 갠트리 플라자 공원, 덤보, 브루클린 브리지 파크까지 뉴욕의 밤거리를 구석구석 누빌 수 있었다.


갠트리 플라자 공원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밝게 빛나는 두 개의 빌딩 중 왼쪽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오른쪽 파란색 건물은 서밋이었다. 당시에는 크라이슬러 빌딩만 눈에 들어왔다.


숙소에 돌아오니 새벽 3시였다. 곧바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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