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슬픔을 기억하는 방식

9·11 메모리얼

by 사막여우

뉴욕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다.

호텔의 조식은 특이하게도 픽업 스타일이다. 메뉴는 샌드위치와 요거트 두 가지 타입이 있고, 사이드로는 과일이나 빵, 음료는 커피, 차, 오렌지 주스 중 고를 수 있다. 원하는 메뉴를 말하면, 종이봉투와 컵홀더에 음식과 음료를 담아 준다. 물론 식당에서 먹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렇게 픽업해서 가져올 수 있는 방식이 꽤 편리했다. 주로 남편이 식당에서 조식을 받아와 방에서 간편하게 아침을 먹었다. 시간이 없을 땐, 도시락으로 챙겨가서 먹을 수도 있었다.


단점이라면, 숙소에 식사할 만한 테이블이 없다는 점이다. 방 안에는 책상과 의자 하나, 그리고 안락한 소파 하나가 전부다. 그래서 음식을 흘릴 가능성이 있는 아이는 책상에서 먹게 하고, 남편과 나는 침대나 소파에 대충 걸터앉아 먹었다. 총 9박을 머물 예정이라, 같은 조식을 아홉 번이나 먹게 되면 질릴 줄 알았지만, 의외로 꽤 맛있어서 괜찮았다.


어제 오후 뉴욕에 도착해 밤나들이까지 하고 새벽에야 잠이 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충분히 쉬고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숙소가 있는 타임스퀘어에서 지하철을 타고 로어 맨해튼으로 이동했다. 오늘의 일정은 '9·11 메모리얼 뮤지엄' 방문이다. 뉴욕 여행의 필수 코스는 아니지만, 미국인들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인지 학생 단체 방문객이 많았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으로 무너진 그 자리를 기억하고자 조성된 공간이다. 내가 20년 전 뉴욕을 여행했을 당시, 이곳은 '그라운드 제로'라 불리며 아직 공사 중이었다.

그래서 기존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와 달리 남편은 90년대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전망대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아치형 패턴이 반복되는 외벽이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고 기억했다.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지금은 그 자리에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rld Trade Center)’가 세워졌고,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같은 디자인의 거대한 사각형 분수 두 개가 조성되어 있다. 분수를 둘러싼 패널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9·11 메모리얼

아래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줄기는 마치 눈물 같았다.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딘가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물은 단을 따라 흘러내리다가, 두 번째 홀에서는 시선의 각도 때문에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이 가슴 깊숙이 느껴졌다. 작품명은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로 제목 그대로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며 흘리는 눈물을 형상화한 듯한 공간이었다.



이 야외 전시 공간 아래에는 '9·11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

기존의 건물 구조를 그대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입장하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

전시장에는 2001년 9월 11일, 그날의 상황이 전 세계 여러 언어로 설명되어 있다. 당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시선이 담긴 사진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어두운 통로를 걸으며 자연스럽게 그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이 공간을 지나면, 한층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간다. 에스컬레이터 옆에 있는 계단 역시, 당시의 구조물을 그대로 활용한 듯한 인상을 준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


전시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1. 상징적 공간

9·11 메모리얼 뮤지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거대한 규모의 상징적 공간이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 지하의 기초 구조물을 일부 그대로 남겨둔 이 공간은, 그 자체로 강한 울림을 준다.
911과 관련된 잔해들과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압도적인 공간감이 주는 엄숙함 속에서 관람객은 그날의 끔찍함을 감각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9·11 메모리얼 뮤지엄

특히 망가진 소방차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테러 직후 불이 난 트레이드 센터에 소방차가 출동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아무도 건물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소방관들은 건물 안으로 진입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은 무너졌다. 건물 잔해 속에서 회수된 이 소방차는, 희생된 소방관들과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2. 기록 전시 공간

두 번째 공간은 9·11 테러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와 기록을 담고 있는 전시 공간이다. 다양한 영상 자료, 설명 패널, 그리고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공간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개인적인 자료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좁은 공간에 전시물이 밀집되어 있어 동선 정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일 수도 있다. 상징적인 공간은 넓고 탁 트인 반면, 이곳은 상대적으로 밀도 높은 구성으로 방문객에게 더 직접적인 정보를 전달한다.


또한, 트레이드 센터뿐만 아니라 펜타곤 테러에 관한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사고 당시 사람들의 전화 음성들이 시간 순으로 재생되며, 발신 위치가 지도에 표시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각 전시 코너에는 티슈가 배치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박물관에서 티슈를 배치한 것은 처음 보는 일.


여행이 끝날 무렵, 아이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을 물었을 때 아이는 '모두 다 좋았다'고 했지만, 9·11 메모리얼은 제외한다고 말했다. 9·11에 대해 책을 읽은 적이 있어 크게 충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날의 많은 기록물들이 아직 초등학교 3학년인 어린 아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던 것 같다. 박물관에서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많이 무서웠다고 했다. 그 부분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아차 싶었다. 어린아이와의 관람은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영상실

전시의 마지막에는 영상 상영실이 있다. 약 2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영상은 테러 직후 맨해튼이 사실상 고립된 ‘섬’이 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배를 몰아 수많은 사람들을 대피시킨 시민 영웅들의 이야기였다. 또 다른 공격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한 자발적 행동이었다.


9시간 동안 수천 명을 실어 나른 그들의 행동은 분명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상이 굳이 이 뮤지엄의 유일한 상영 콘텐츠로 자리할 만한지는 의문이 들었다. 테러의 참혹함을 다룬 전시 전체의 분위기와는 다소 결이 다른, 전형적인 ‘미국식 영웅주의’에 가까운 연출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테러를 당했지만, 그래도 멋진 사람들이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느껴졌다. 마치 할리우드식 감동 서사의 한 장면처럼. 일부러 시간을 맞춰 입장해 관람했는데, 이런 내용인 줄 알았으면 굳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로어 맨해튼

오큘러스

박물관을 나오면 길 건너에 새가 날개를 편 듯한 독특한 건축물이 눈에 띈다. '오큘러스(Oculus)'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스테이션이 자리한 복합 공간으로, 내부에는 '웨스트필드'라는 쇼핑몰도 함께 있다. 거대한 곡선 구조와 뼈대 같은 외형으로 쇼핑몰 공간이 마치 고래의 뱃속처럼 느껴진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속 은하수를 표현한 '밤하늘의 등뼈'를 떠올리게 했다.

오큘러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스테이션

무려 뉴욕 지하철 노선 12개가 지나가며 뉴저지로 가는 통근 열차도 탈 수 있는 교통의 허브 장소이기도 하다. 쇼핑몰에는 다양한 상점과 식당이 입점해 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웨스트필드 푸드코트

놀라웠던 건, 푸드 코트 중심에 한국 음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아시아 음식이라고 하면 중식이나 일식이 대부분인데, 중식은 없었고, 일식은 한쪽 구석에서 초밥만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장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김치볶음밥을 주문했는데, 아이는 미국까지 와서 무슨 김치볶음밥이냐며 이해할 수 없어했다. 그때는 아이도 몰랐지. 곧 미국 샌드위치를 지겨워하게 될 것을.




점심을 먹고 나서는 박물관 남쪽으로 걸어, 월스트리스로 향했다.

월스트리트의 황소상이 이렇게까지 인기 있는 장소였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황소의 머리와 엉덩이 양쪽으로 긴 줄이 늘어서 있어, 우리는 그냥 옆에서 대충 사진을 찍고 지나쳤다.

그 옆에는 멋진 고전 건축물이 하나 눈에 띄었다. 바로 아메리카 인디언 국립박물관. 스미스소니언 재단에서 운영하는 이 박물관은 무료이기도 하고 날이 더워 들어가 보려 했지만, 하필 화재 경보가 울려서 확인해야 한다고 입장이 중단되었다. 모두가 밖으로 나와야 했고, 우리는 아쉽게 발길을 돌렸다.


그 옆, 항구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면 배터리 파크가 나온다.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페리를 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며칠 뒤 예약해 둔 배도 여기서 탈 예정이기에 위치를 미리 확인했다. 멀리 서지만 자유의 여신상도 볼 수 있었다.


배터리 파크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 근처 마트인 타깃(Target)에 들렀다. 아이의 식염수, 드림렌즈용 용액, 콜게이트 치약, 도브 비누 등 자잘한 생필품들을 구입했다. 의도치 않게 치약이 여행 기념품이 되었다. 작은 사이즈 하나만 살 생각이었는데, 세 개가 묶인 세트밖에 없어서 결국 그걸 샀다.

숙소로 돌아와 타깃에서 사 온 간단한 먹거리로 저녁을 해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방문할 예정이다.

keyword
이전 01화계획표 대신 남편을 믿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