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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엄마의 넷째 딸

by 두움큼

우리 집 자매들 중에서 제일 예쁘고 똑 부러진 건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넷째 딸이다.

언니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주택은행(현 국민은행)에 입사했고,

그 어렵다는 공인중개사 시험을 단번에 합격해서 십여 년 전부터 번듯한 부동산 사장님이 되었다.


나와 열 살 터울 언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강릉 여행을 데리고 갔다.

언니도 아직 어린 21살이었는데... 바다를 한 번도 못 봤던 11살 동생을 데리고 오죽헌과 경포해수욕장을 갔다가 언니 자취방이 있는 도시에서 방학을 보내게 했다.(사실 언니 자취방이 어떤지 잘 보고 오라는 아빠의 특명도 있었다.)

시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동시집을 여러 권 사줬고, 언니 학교캠퍼스 나무그늘 아래서 같이 책을 읽었다.

언니는 표현이 많지 않아도 속정이 깊고 여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어릴 적 나는 언니를 동경했다.


언니는 공부를 워낙 잘해서 아빠 친구였던 교장선생님은 아직도 언니 칭찬을 많이 하신다.

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질투가 날만큼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아빠와 언니의 남사친 아빠가 같이 일을 하고 계시는데

'아빠아~ 나 시험 잘 봤어! 이거 봐봐.' 통지표를 휘날리며 달려갔더니

'역시 우리 딸' 기특해서 으쓱한 아빠의 표정과 우리 집 아들은 통지표 한번 가지고 오는 꼴을 못 봤다며

씩씩대는 남사친 아빠의 표정 대비가 아직도 생각난다고 웃는다.


엄마는 위에 언니들도 많았지만 틈만 나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쩜 머릿결도 이렇게 곱니?' 예뻐해 주셨다고.

언니가 입이 짧아 밥을 잘 안 먹으니 계란프라이를 공깃밥 안에 숨겨서 꼭 두 개를 넣어 주시고,

도시락에도 항상 두 개를 담아 주셨다며 사랑을.. 아니 편애를 듬뿍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지금껏 내가 지켜봐도 엄마는 언니를 많이 좋아하신다.

이유는 물어본 적 없지만 유독 언니를 안쓰러워하시고 사랑하시는 게 느껴져서 어쩔 땐 서운해지기도 한다.






언니는 촉이 좋다. 공인중개사로 집터를 많이 느끼다 보니 그런 건지, 영혼이 맑아서 그런 건지.

단연 나보다 기운을 잘 느낀다. 그래서 언니 느낌은 대체적으로 잘 맞았다.


'다음 달 엄마 생신에 꼭 올게. 앞으로 엄마 생신 몇 번밖에 못 챙겨드릴 것 같아.' 하면서 언니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뭐야! 왜 그런 말을 해?' 물으니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엄마 심장이 힘들어서 일 그만할래 하고 멈추면 다음날 아침에 엄마가 눈을 못 뜰 수도 있는 거잖아.' 하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런 무서운 말은 하지도 마!' 하며 나는 실제로 그런 아침이 오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우리 엄마한테 더 잘하자!"







엄마는 봄이 되면 가지, 애호박, 쪽파 텃밭작물에 굽은 허리로 봄나물까지 뜯어와 언니에게 바리바리 택배를 보내신다.

가을이 되니 엄마는 새벽같이 밤을 주우러 나가셨다.

어제는 '밤은 언니가 추석에 와서 가져갔지만 좀 더 보내고 고구마도 보내면 좋겠지?' 하고 물으신다.


쉰이 된 넷째 딸이 아직도 그렇게 아기 같은지 해줘도 해줘도 부족해서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내 새끼 입에 들어가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 뭐라도 더 먹이고 싶은 여든 엄마의 마음.


그런 엄마를 보고 있으니

'지금도 우리 엄마는 참 딸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있는 힘껏 정성을 다해 주신다!'는 생각이 들어

목이 턱 하고 막혀 왔다.

지금껏 받은 그 사랑에,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랑에 그저 감사하다.


이번에는 언니의 촉이 제발 맞지 않기를. 그런 아침은 쉬이 오지 않기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넷째 딸을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십 년은 더 우리 곁에 계셔주시길 바라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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