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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09. 2023

어리고 철없어도 괜찮아

언제부터였을까 초등학교를 채 졸업하기 전에 나는 애늙은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어른들은 어쩜 그렇게 애가 생각이 깊고 어른스럽냐며 나를 예뻐했고, 친구들은 어른스럽다며 나에게 멋지다고 말했다. 좋은 뜻이라고 생각했다. 일찍 철이 들었다는 것은 조금 더 어른스럽고 지혜롭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 어른이라기엔 아직 어린, 그렇다고 마냥 어리지는 않은 나이가 되고 나니 “어른스럽다”라는 말이 조금은 서글픈 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른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또래 친구들처럼 마냥 해맑고 즐거울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았다. 맞벌이에다 주말부부였던 부모님의 사정상 나는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 때문에 부모님은 나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도록 하셨다. 또래 중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중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고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고작 12살이었다. 


중학생 때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하기 위해 왕복 2시간 거리에 있는 중학교로 홀로 전학을 갔다. 고등학생이 되자 오빠의 투병생활이 시작되었고 나는 네 가족이 살던 아파트에서 홀로 남아 생활을 이어갔다. 내가 알아서 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들의 연속이었고, 가족들은 그런 내가 어른스러우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를 되돌아보면 힘에 부칠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혼자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며 창밖을 바라본 채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20대가 되기 전 나는 대부분의 상황들을 홀로 이겨내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오는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버텨냈다. 이러한 상황들을 담담하게 버티고 친구들과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스러워져야만 했었다.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게


어느 한 드라마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싫어하는 주인공에게 심리상담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눈앞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한다. 드라마를 보던 나는 그 대사를 듣고 눈앞에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내 기억보다 훨씬 어린 작고 빼빼 마른 어린아이. 기댈 곳이 없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일으켜 앞으로 꾸역꾸역 나아가던 어린아이가 서있다. 그 모습이 내 기억 속 모습보다 훨씬 더 작고 연약해 보여 마음이 아리다. 


그저 조금은 더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고, 꼭 참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고, 어린아이처럼 때론 주저앉고 멋대로 굴어도 괜찮다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길을 지나다 해맑게 웃는 어린아이들을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티 없이 맑은 웃음이 아주 오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괜스레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서글퍼진다. 어른스러운 아이는 어쩌면 어른스러워져야 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 놓여있던 가슴 한쪽이 곪아있는 아이가 아닐까. 그러니 나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아니 어른스러운척하는 아이에게 성숙한 모습이 대견하다고 말하기보다 어린아이답게 참지 말고 가끔은 감정에 솔직해져서 철없이 행동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 나이에 맞게 더 어린아이답게 학생답게 작은 것에도 많이 웃고 솔직하게 울 수 있도록,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도록 어른들이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철없는 우리 모두 언젠가 어른이 된다.


20대 후반이 되고 사회에 나오니 주변의 철없는 사람은 욕을 먹는다.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뭔가 내 나이가 실감된다. 사회적으로 이젠 마냥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철이 없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생각한다. 그것이 과연 어른들께 혼나야 마땅한 일일까?


내가 생각하는 철없는 사람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정말 사리분별 할 줄 생각이 어린 사람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들의 오지랖에 의해 그렇게 불리는 자신의 인생에 도전적인 사람들. 후자에 가까운 사람들을 보면 도전적인 자신의 삶의 태도에 부럽기도 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이에 맞게, 직급에 맞게,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게 행동하지 않는 그들의 방식이 단단해 보여 멋지기도 하다. (내가 부러워하는 후자의 사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철없는 과정이 지나야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다.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받고 깨닫는 과정을 거쳐 우리 모두는 나이를 먹고 세월을 쌓아 어른이 되니까. 그 과정에서 너무 일찍 아프거나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은 우리 모두 미성숙한 철없는 존재에서 어른이 되어가니까. 그러니 미리 서둘러 어른스러워질 필요는 없다. 철없는 어린아이여도, 철없는 어른이어도 괜찮다. 우리는 모두 그 기간을 거쳐 언젠가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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