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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17. 2023

과거에 나를 가두려 애쓰는 사람

끝내도 괜찮은 관계

참 고마웠던 친구가 있었다. 어쩌면 내 인생 가장 힘든 시절에 만났던 친구였고, 그래서 더욱 애틋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만나 참 오래도 싸우고 풀고를 반복하며 우정을 쌓아왔다. 좁은 자신의 세상이 전부라고 믿던 고등학생 시절에 만나 대학을 가고 이리저리 현실에 치이는 시간을 넘어 내가 직장에 다닐 때까지 10년 가까이, 우리의 관계는 친구였다.

  


 

그 친구와 처음 같은 반이 되었을 때 나는 참 힘든 시기였다. 아픈 오빠를 둔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혼자서 생활을 해야 했고, 생사의 기로에 놓인 오빠를 두고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내가 죄스럽던 시절이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많은 것들에 예민했고 날이 서있었다. 말하기 어려운 나의 상황에 사람과의 대화를 피했고 친구를 만들고자 노력하지도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이어폰을 끼고 혼자 엎드려 자던 학생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나와 투닥거림으로 관계를 시작해 훗날엔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사람이 되어준 것이 그 친구였다. 자존감이 바닥이던 나와는 다르게 반에서 친구가 많고 활기차던 친구였다.

 

해가 지나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때 오빠를 떠나보내고 우울증에 걸린 내게 그 친구는 다른 친구들을 만들어주었고 학창 시절에 한 줌의 웃을 수 있는 추억들을 만들어 주었다. 함께 재수를 하며 서로를 응원했고 가끔은 소원해져도 어느샌가 서로를 찾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우리의 관계가 정말 편하고 막연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샌가 서로 오고 가는 말과 행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을 때에도 서로가 편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7년의 우정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만큼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친구와 나의 사이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은 대학생이 된 후부터였다. 서로의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그 친구는 나에게 스스럼없이 무례한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우울한 학창 시절을 보내며 졸업한 나는 대학에 간 뒤 여러 활동들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미뤄왔던 나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인상이 달라졌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는 많은 것이 변했다. 언제까지고 과거에 갇혀 우울에서 허우적 댈 수는 없었다. 혼자서는 우울해지더라도 밖에선 애써 밝은 사람이 되었다. 관계에 대한 노력의 결과로 나에겐 먼저 연락 오는 동생과 친구들이 생겼고, 나를 챙겨주는 언니 오빠들이 생겼다. 환경을 공유하는 직장 동료들과 어른들이 생겼고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다.

 

나에게 변화가 생기자 그녀는 나에게 “넌 원래 이런 성격이잖아”, “너를 잘 모르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뱉기 시작했다. 그 이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바닥이던 시절을 웃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마치 현재의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표현하며 무시하는 말들을 내뱉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나의 과거는 그녀에게 잔뜩 꼬아진 안줏거리가 되었고 그녀의 비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그 친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조금씩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그 친구가 나에게 무언가 서운한 게 있을 거라는 생각과 힘든 시절 나에게 손 내밀어 준 그 순간이 진심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을 숙이고 한걸음 다가갔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라는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일에 우리가 틀어졌다. 오해를 풀기 위해 이야기하자던 나의 말을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미 자신은 기분이 나빴으니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깨달아버렸다. 언제나 이런 순간이 올 때면 내가 그녀에게 사과하며 붙잡았던 행동이, 그녀에게 여전히 고교 시절 아무것도 없는 바닥의 나로 보이게 했다는 걸. 나에게 생긴 기쁜 일에 그 친구는 운이 좋다며 나의 노력을 쉽게 여겼고, 슬픈 일이 있을 때 언제나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마치 나의 우울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에게 고마웠던 고교 시절 이후 꽤나 오랜 시간을 '우리'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저 넘어간다면 언제까지나 우리의 관계는 이럴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졌다.

 

나는 수없이 고민한 끝내 그녀에게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며 그동안 고마웠고 각자 행복하길 바란다는 연락을 보냈다. 그동안의 추억이 생각났고 오래된 인연의 마지막에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돌아온 답장을 보고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너한텐 뭐라도 좀 챙겨주려고 했던 거 잊지 마라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홀로 소중이 이어오던 우정을 잘라냈고 나를 애써 과거에 가두려고 노력하던 그녀와의 인연을 끝냈다. 아끼고 소중하게 대하던 것이 산산조각 깨져버린 느낌이었다. 친구와의 안 좋았던 상황보다 함께 좋았던 상황들이 기억나 마음이 아렸다. 함께 힘든 시절을 이겨냈고, 미래를 이야기하며 꿈을 꿨었다. 함께 종종 여행을 다녔고 서로의 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고 웃으며 함께 잠에 들었었다. 오랜 추억 때문인지 그녀가 밉다는 마음이 크지 않았다. '그녀에게 나도 한편으론 미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르니까' 

그저 그녀도 갇혀있는 과거에서 벗어나길 바라본다. 과거에 머무르는 시간은 잠시 나를 빛나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다가도 결국 지금의 현실을 보잘것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니까.

 

각자의 길에서 관계에 대해 서로 노력하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아가며 그렇게 각자의 지금을 살아가길 나는 바란다. 앞으로 나아갈 길 위에서 우리를 안아 줄 사람들은 아직 많으니까 서로에게 상처인 관계는 여기까지로 마침표를 찍었다. 마음이 아프면서도 후련하다. 어쩌면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으며 아팠던 나의 과거에서도 한 발짝 더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썸네일 출처 _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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