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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22. 2023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인생이라도

우울을 지나가는 중입니다


인생이 지루해, 재미가 없어

 

한창 재기 발랄하고 미래를 꿈꾸었을 10대 때 나의 고민이다. 바람에 뒹구는 낙엽만 봐도 즐거울 나이라는데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인생이 재미가 없었다. 지루하고 따분했다. 남들은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하던데, 나는 벌써 일찍이 알 것 같았다. 내 인생은 앞으로도 지루하고 재미없는 시간들의 연속일 거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생각의 출발점이 아주 작은 생채기였을 거다. 생채기 난 마음이 아물기도 전에 그 자리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고, 그 상처들이 수없이 반복되자 더 이상은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결국은 우울증이라는 병에 이르게 된 나는 인생=고통이라는 생각을 정립했다.

그 무렵의 나는 어른에게 보호받지 못하던 빈털터리 10대인 내게 세상에 내가 마음 편히 있을 곳은 단 1평도 허락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으니까 ,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그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지루하고도 괴로운 이 시간들을 고통 없이 끝내고 싶다는 게 소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위험한 생각인데, 그때는 스스로가 위험한 상태라는 자각도 나아지고 싶다는 욕심도 없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나아지지 않았다. “돈을 아주 많이 벌어 먼 훗날 안락사가 허용되었을 때, 고통 없이 죽고 싶어”라는 말을 뱉을 정도로 그저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 않은 게 내 욕심의 전부였다. 하루하루를 나아가는 게 무섭고 내일을 하루 더 살아가는 게 어려웠다. 불과 3년 전까지의 나의 모습은 이러했다. 예민하고 어딘가 음침해 보이는 아이. 얼굴이 그늘져 보인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지금은 듣기 싫은 그 소리마저 ‘사실이니까’라고 생각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날들이었다.  




현재를 말하자면 지금은 나라고 대단하게 행복하지 않다. 여전히 우울감은 남아있으며 무기력감이 온몸을 감싸 안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언제나 암흑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인생이라도 서서히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조금씩 묵묵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다 보니 뒤를 돌아봤을 때 생각보다 많은 게 변해있었다. 살아오면서 눈에 띄는 변화나 드라마틱한 인생의 전환점은 없었지만, 우연한 기회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잠시 스쳐가는 사소한 글귀들에 이전과 다를 이해로 받아들이며 걸어오다 보니 그곳에 고여있던 나와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다가올 미래가 심란스럽고 두렵지만 더 이상 고통 없는 이른 죽음을 꿈꾸지 않는다. 여전히 인생을 즐겁고 재미난 여정이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재미난 요소들을 찾고 내 인생에 입혀가는 작업들을 서서히 몸에 익히고 있다.


과거의 나는 끝이 어딘지도 모를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혔있었다.
스스로가 동굴 속에 있는 것이라고 자각하지 못할 만큼 그저 암흑이었다.
눈에 보이는 어둠만이 전부라 출구라고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럴 바엔 암흑 속에서 누구에게도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조용히 잠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 그저 가만히 앉아 죽음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그 동굴 안에 있지만 그저 암흑 속이라도 묵묵하게 하루를 견디듯 앞으로 걸어가다 보니 이곳이 잠시 지나가는 동굴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그리고 끝엔 출구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출구를 향해 조금씩 빛이 번져와 흐려지는 암흑 속을 지나가는 중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삶이더라도, 밝은 미래 따윈 없을 것 같은 삶이더라도 그저 걷고 견뎌보는 게 지금 나에겐 답이다. 고통스러운 하루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한 거니까 특별히 엄청난 것을 느끼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낭비했다며 자책할 필요도 없다. 우리의 하루는 매일 완벽하게 똑같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미세하게 달라지고 있으니까. 그 작은 변화들을 쌓아가며 지루하고 따분하지만 천천히 걷다가 먹고 싶은 음식이, 배우고 싶은 취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하면 되는 거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의 하루는 별 게 없는 똑같은 하루의 반복일지라도 그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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