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마음을 받아주세요
첫날 아침,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아이들이 등교를 했다. 7시에 등교를 하다니. 순간 8시 등교를 힘들어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수돗가에서 빨래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던 나는, 부스스한 모습으로 전날 신었던 더러워진 양말을 빨고 있었다. 그 모습을 아이들은 내 왼편에서 일렬로 손을 씻으며 신기한 듯 개구진 표정으로 쳐다봤다. 양말을 내려놓고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우리의 이름은 한 글자로 통일했다. 세 글자 중 가장 기억하기 쉬울(?)법한 한 글자를 골랐다. 나는 '윤'이었다. 라오스어로 선생님은 '아짠'이다. 아짠, 아짠 윤!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아닐까 싶다.
"아니 왜 그러냐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참 많이 쓰는 듯하다. 괜한 공감을 하게 되고 반가운 한국인들만의 말투랄까. 그런데 이곳 라오스에서 '아니'라는 말이 자주 들렸다. 아이들도 '아니'로 말을 시작하고 있었다. 뭘까? 교장선생님이 한국분이셔서 배우게 된 걸까?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는 말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토록 '아니'라는 말이 많이 들렸던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에게 많은 말을 하기 어려울 땐, 손가락과 '이거' 혹은 '여기'라는 말만 있으면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다음 날부터는 우리도 '아니'를 한국어로 '아니'만큼이나 자주 쓰고 있었다.
새로 짓고 있는 유치원 1층 벽에 벽화를 그렸다. 총 3군데를 그렸고 색칠은 모두가 힘을 합쳐 완성했다.
늘 혼자 좋아서 그리던 그림을 여기서는 누군가를 위해서 그린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래서 더 잘 그리고 싶었고, 열심히 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던 중에 가끔씩 쉬는 시간이 되면 몇몇 아이들은 달려와 우리가 그리는 그림을 구경하곤 했다.
기억에 남는 이름 중 하나는 '난펑'이다. 이 아이는 처음 본 순간 반했다. 대만 첫사랑 영화의 여주인공이 떠올랐다.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 수줍은 미소와 발랄한 성격. 모범생 반장 같은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이끌기도 했다.
수줍게 인사를 하고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리의 수를 세는 듯하더니 다시 사라졌다.
조금 뒤에 다시 나타난 난펑은 한 손엔 통통한 비닐봉지, 다른 한 손엔 과자박스를 들고 있었다. 봉지 안에는 한국의 빼빼로와 비슷한 과자가 우리의 수만큼 들어있었다.
어깨를 톡톡 치곤 빼빼로 상자를 내밀었다. 세상에. 우리에게 과자를 선물했다. 너무 고마운 마음이지만, 왠지 받기가 미안했다. 도움을 주려고 온 건데, 받아도 되는 걸까. 엄마가 간식을 사 먹으라며 준 돈일 텐데. 그러나 거절하기에 이 과자는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고민한 아이의 마음이었다.
페인트가 묻을까 조심스레 받아 든 과자를 작은 가방에 넣었다. 배고팠지만 당장 먹어버릴 수 없었다. 난펑이 준 건데 아껴둬야지.
입술을 빼죽이며 먹으면서 하라는 난펑에게 '아껴둘 거야!'라는 말을 몸짓으로 최대한 표현했다.
그러자 자기가 먹으려던 과자를 뜯어 우리의 입에 넣어주었다. 천사가 아닐까.
뒤돌아있는 큰 키의 승민이에게도 달려갔다. 하나 남은 승민이의 과자를 등 뒤에 숨기고선, 톡톡.
돌아보자 손바닥을 내밀어보라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 한참을 바라봤다.
아이들을 비롯한 우돔싸이의 사람들은 때 묻지 않은 순수 그 자체다. 웃음이 많고, 그 모습이 예뻐서 나도 따라 웃게 된다. 나이가 주는 순수함보다는 우돔싸이가 만들어낸 환경인 듯했다. 낯선 우리들의 마음을 먼저 열게 한 건 아이들이다. 멀리서 온 낯선 사람들을 어려워할 거라 생각했다. 웬걸. 아이들은 우리를 사랑으로 안아주었다. 서로의 언어가 익숙치 않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도 기초 라오스어를 알아갔던 게 큰 도움이 됐다. "이름이 뭐야?" "최고야" "고마워" 같은 문장들은 금방 익숙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