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간의 이름을 청춘이라 지었어

단순노동이 주는 행복

by 윤수빈 Your Celine


머리가 복잡할 땐 단순노동이 최고지.
이따금 부는 시원한 바람과 고개를 흔들게 되는 노래면 그만 아니겠어.




우돔싸이에서 하루의 시작은 5시 30분이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기상시간.

어느새 이 시간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을 때에도, 매일의 하늘은 낯설게 예뻤다.

안개가 가득해 앞이 안 보이는 날도 있었다. 거짓말처럼 오전 6시가 지나면 안개가 사라졌다.



리의 숙소는 학교에서 쓰지 않는 빈 교실이었다.

1층의 두 교실을 남자, 여자 숙소로 나누어 사용했다. 파란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바닥에 우리의 수대로 깔린 매트와 이불 그리고 침낭 2개. 이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족했다. 무엇보다 생각 외로 벌레가 없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숙소 안에서 만난 건 작은 도마뱀 한 마리뿐이었다.


매일 아침운동을 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동그랗게 모여 체조를 하고, 달리기도 했다.

비몽사몽. 부스스한 머리로 간신히 실눈을 뜬 채 잠을 깨려 애쓴다. 검은빛 털을 가진 강아지가 조교 역할을 맡았다.

갯속 달리기는 꽤 상쾌하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이 떠올랐다. 라오스에서 잠옷 입고 달리기를 할 줄이야. 팀장 배 기상 미션도 했다. 이를테면 서로의 생일 맞추기, 형제 맞추기 같은 게임들. 일찍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더 자려 이를 악물었다. 매일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은 힐링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은 뭘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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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과 점심 메뉴는 한결같았다. 아침은 쌀국수, 점심은 야채 볶음밥.

'어떻게 10일을 같은 메뉴를 먹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마지막 날은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울 뿐이었다. 유일하게 가져갔던 김과 고추장 튜브 그리고 선생님께서 주신 고추장아찌는 만찬을 완성해주었다.

저녁은 당번을 정해 직접 만들어 먹었다. 매일 달라지는 저녁 메뉴를 기다리는 것도 하루의 행복 중 하나였다.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한국음식은 웬만하면 다 맛있다. 아는 맛이 느껴지는 반가움이란.






이곳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준비했는데, 그중 단순 노동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밭 가꾸기.

학교 뒷마당 척박한 땅에 작은 밭을 가꾸기로 했다.

땅을 태우고, 갈고, 비닐을 깔고, 구멍을 뚫고, 씨를 뿌렸다.

배추, 상추, 무를 순서대로 심었다.

경제 자립에 도움이 되어주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다들 처음 시도하는 농사일에 체력적 어려움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도시 사람들인 우리에게 밭을 태우는 화전과 경작기 운전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일을 하며 이곳 프언밋 학교에 봉사활동을 온 웡과 쏨 싸이와 친해졌다. 서로가 어설픈 영어로 주고받는 대화는 귀여움을 유발한다. 다른 걱정 없이 밭을 잘 가꾸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기.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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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벽화 그리기.

새로 공사 중인 유치원 외벽에 예쁜 그림을 채워 넣기로 했다.

아이들이 꿈을 키울 예쁜 유치원을 만들자.

머릿속에 여러 색들이 팡팡 터지는 아이들에게 흰 벽은 너무 밋밋하다.


그림이 프린트된 종이를 들고 스케치를 시작했다. 스케치 도구가 마땅치 않아 가지고 온 필기도구를 모두 이용했다. 샤프, 모나미 볼펜, 잉크 볼펜까지. 이럴 줄 알았으면 연필을 여러 개 들고 왔을 텐데. 스케치를 다 마쳤을 땐 필통에 남아있는 필기구가 없었다.

벽화 봉사를 하고 싶었다. 잘 그리진 못하지만,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다들 공감할 테지만 넓고 큰 흰 벽에 선명한 페인트를 주욱 칠할 때의 쾌감을 느끼고 싶었다. 이것 때문에 벽화 봉사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함께 그린 마음이 오랜 시간 남아 존재한다는 게 좋았다. 색을 칠할 때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아이들이 우리에게로 뛰어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작은 검지 손가락으로 어린 왕자를 한번 가리키고, 더 작은 엄지손가락을 보였다.




단순노동의 장점은 일을 하며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진지함을 가지고 한다면 민망할 무거운 이야기까지. 웃고 떠드는 그 와중에도 밭을 갈고 붓을 움직이고 있다.

힘든 노동을 잊으려 더 서로의 말에 집중을 하게 되기도 한다.

"진짜 힐링된다." 추임새처럼 주고받던 말이었다.

서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단순노동이 주는 행복이 우돔싸이에선 오전의 일과였다.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켜 머리가 복잡할 때. 때론 단순한 것들이 해답을 찾아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