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곁에 잠시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따뜻했던 추억으로 기억하길

by 윤수빈 Your Celine


꿈같은 시간이 끝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너희의 곁에 잠시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따뜻했던 추억으로 기억하길.



월요일 아침이면 운동장에 모든 아이들이 모여 조례를 한다. 국가를 부르고, 교가를 부르고, 우수한 아이들에게 상장을 수여한다. 한국과 비슷하다. 학생 대표를 맡은 아이가 라오스 국기를 게양대 높이 올린다. 선생님들은 맞은편 단상에 일렬로 서서 아이들을 바라본다. 우리도 아이들의 뒤편에 서서 조례에 참가했다.



학교 본관 복도에는, 아이들의 이름과 함께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붙일 수 있는 벽이 있다. (참 잘했어요는 내가 붙인 이름이다.) 일주일간 학교생활을 잘 한 아이에게는 상품을 수여한다. 학년별로 이름이 호명되는 아이들이 잔뜩 설레는 표정을 안고 쪼르르 계단 위로 올라온다. 나머지 아이들은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쳐준다. 우리도 웃으며 박수를 쳤다. 몇몇 아이들이 뒤돌아봤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박수가 신기한 듯했다. 박수란 당연 크고 많이 쳐주는 게 좋은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 아이들은 일제히 같은 정박자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짝. 짝. 짝. 짝. 라오스는 자유경제체제가 도입된 공산주의 국가이다. 이건 지극히 필자의 생각이지만, 똑같은 박자로 박수를 쳐야 하는 건 체제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눈치는 있으니, 그 뒤론 박자를 맞춰 박수를 쳤다.






떠나기 전, 마지막 날 학예회를 준비했다.

우리 팀은 아이들에게 보여줄 태권무와 K-pop댄스 2곡을 준비했다. 아이들도 우리가 오기 전날까지 여러 공연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날 밤, 빈 교실에서 최종 리허설을 했다. 괜히 떨렸다.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이들이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뿐이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k-pop을 잘 알고 있었다. 블랙핑크 춤도 곧잘 추곤 했다. 잘 추진 않더라도 귀엽게 봐주겠지! 학예회 장소는 학교 옥상이었다.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프린트해 작은 사진전 공간을 만들고, 준비해 간 현수막을 바르게 붙이고, 풍선도 불었다.

아이들이 준비한 노래, 춤 무대를 보면서 즐거움보다 금세 마음이 젖어들었다.

특히 부채춤과 태권도를 볼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르는 이상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진지하게 무대에 임하는 모습, 그리고 우돔싸이에서 듣는 우리나라의 노래가 마음을 울렸다. 그 순간, 멀리 있지만 가까운, 우리, 같은 사람들. 이라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울렁거렸다. 우리 팀의 방탄, 트와이스, 태권무까지 모든 학예회가 끝난 후에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정말 여기서 울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펑펑 울고 있었다. 앞으로 어쩌면 영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슬펐다. 예쁜 모습 그대로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고, 슬픈 경험은 되도록 적게, 아프지 말고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라오스 수빈이 싸이수빈이는 볼 때마다 입을 삐죽 내밀고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너이는 얼른 가라고 해도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의 공연 영상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한 아이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볼펜을 끄적였다. "응?"

씨익 웃더니 뛰어가는 뒷모습을 두고 떠난 손바닥에는 이런 글씨가 쓰여있었다.

다시 울컥해버리고 말았다.







평소 눈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이 아이들을 어쩌면 평생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슬프게 했다.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내 눈물을 닦아주는 아이들보다 이런 이별이 나보다 익숙한 듯 아쉬움의 미소를 지으면서 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는 아이들에 더 마음이 아팠다.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보고 싶은 마음과 반대로 너무 멀리 있다는 사실과 짧은 시간밖에 있지 못하는 사실에. 많은 말을 전하고 싶은 데 라오스어를 모르는 내가 답답했다.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잘 있어야 해. 보고 싶을 거야. 같은 말들.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는 듯이 눈물을 닦아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