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는 이유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그때마다 다르다.
서점의 공기가 좋다. 새책의 빳빳한 공장 종이 냄새, 그리고 묵혀있던 책들이 적당히 머금은 눅눅한 습도가 섞였다. 도무지 책 한두 권을 코에 박고 냄새를 맡아서는 나올 수 없는, 방대한 책들이 만들어내는 포근한 냄새가 사람을 안정시킨다.
책을 지그시 바라보는 사람들이 좋다. 약속시간의 빈 시간을 활용하려 들어온 사람도, 오랜만에 책을 보고 싶어 정성스럽게 찾아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의 발걸음에 대한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서점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를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거나,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 둘 중에 하나는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의 표정과 일관성 없는 걸음의 속도가 흥미롭다. 각자의 책을 찾기 위해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장들을 따라 시선을 주루룩 옮겨간다. 그렇게 들었다 놨다, 펼쳤다 덮었다를 반복하며 서점의 목적을 찾아간다.
마지막으로 서점을 좋아하는 이유는 수많은 책 제목이다. 나는 수천 개, 아니 수만 개의 책들이 널려있는 서점이 하나의 거대한 책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 이 제목들만 다 읽어도 책 한 권을 읽는 게 아닐까? 오랜 시간 자신의 애정을 쏟아부은 책에 대해 작가가 선정한 가장 적확한 문장이나 단어가 책의 제목으로 낙찰된다. 그 결과물들만 모아놓은 것이 재미있다. 제목만 보아도 '대충 이런 내용이겠거니' 싶은 책이 있는 반면, '무슨 내용일까?'궁금해져 손을 뻗게 되는 책도 있다. 또 제목만으로 책을 읽는 것처럼 매력적인 영감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이번 서점에서 나를 붙잡은 책 제목은 이것이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나는 이런 제목이 좋다. 강렬한 공감과 함께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해주는 문장. '맞지. 잘해봐야 시체지.'라는 흥미와 함께 책을 들었다. 케이틀린 도티라는 20대 장의사가 쓴 책이다. 장의사가 쓴 제목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완벽하게 설득되어버렸다. 매일 영혼 없는 육체를 돌보는 사람의 이토록 자조적인 말이라니. 꽤나 매력적이었다. 아직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리스트에 넣어두었다.
한 문장에 독자를 꼬셔버리는(?) 이런 매력적인 문장을 쓰고 싶다. 섹시한 글이라고도 하지 않나. 제목을 모으러 서점에 가는 일이 재미있는 이유다. 멋쟁이가 되고 싶으면 옷가게에 가고, 글쟁이가 되고 싶으면 서점에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