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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Mar 25. 2022

일진에게 안쓰러움을 느낀다

날라리 혹은 일진. 나는 이런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학창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까지 이러한 네이밍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닌데 늘 있었다. 멋모르는 동년배 아이들끼리 서열과 지배구조가 명확히 자리한다는 게 참으로 속상한 일이지만 그 또한 인간의 본능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느꼈던 내가, 언제부터인지 안쓰러움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몇몇 선명한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한 조각인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일진 무리라 불리는 아이들에게 2주간 왕따를 당한 기억이 있다. 옆동네 학교로 전학을 간 첫날이었다. 이미 4년간 친해진 아이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이방인의 서러움을 느꼈다. 낯선 환경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활발한 아이는 아니었기에 그저 어색한 눈알을 도로록 도로록 굴릴 뿐이었다. 그때 나를 알아보는 한 아이가 있었다. 우연히 학원에서 같은 반이었던 아이였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 친구도 반에 친구가 없는 듯했고, 우린 서로를 동아줄처럼 붙잡았다. 


며칠이 지나고 주변 아이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내가 유일하게 친해졌던 그 아이는 모두에게 왕따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나까지 전학과 동시에 왕따 신세가 되었다. 글쎄. 정확히 그 친구들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불편하고 다수 속의 외톨이가 된 듯한 외로움, 내가 왜 미움을 받는지 몰라 억울함을 느꼈던 그런 감정들만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바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 가기 싫다며 펑펑 울며 떼를 썼던 기억. 한 번은 운동장 한 구석에 일진 무리라는 친구들에게 불려 갔던 적도 있다. 당시 무슨 말을 들었는지도 기억에 남지 않지만,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게 공포심을 느꼈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후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 또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친구들에게 나는 사과를 받았다. 나의 싸이월드 방명록에 긴 줄글을 남겼던 기억도 있다. 이후 가깝진 않지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초등학교 6학년은 나에게 좋은 기억이다. 많은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꽤 즐거웠던 초등학교 생활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다가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친한 관계임을 증명하려 하는 듯했다. 그 모습이 역겨웠다. 내가 이유 없이 받았던 상처들을 짓밟는 듯했다. 2주간의 짧은 기억이었지만, 어린 시절 기억 중 가장 강렬하고 끔찍했던 기억이다. 그 아이들이 무서웠다. 그들의 세계에서 권력을 쥐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 싫기도 했다. 꽤 어릴 적 기억이지만, 고백하자면 지금까지도 나에게 소외라는 것은 서운함보다 두려움에 가깝다.


가장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학생 때는 아예 관심을 둘 일이 없었다. 그들만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저 주변에 피해를 주지만 않길 바랄 뿐이었다. 학급 분위기를 흐리며 자신의 지위를 확인시키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겁이 없는 아이들이 여전히 불쾌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고등학생이 되었다. 다수의 아이들이 날라리 혹은 일진과 같이 학교생활에 불만이 많은 아이들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입시라는 중대한 과제가 시작되었으며 이제는 그 아이들이 마음껏 권력을 부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스운 보내는 눈빛들이 많아졌다는 걸 알았던 걸까 점차 현실을 보는 아이들도 생겼다. 여전히 학생답지 않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지만, 진짜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아, 나 스무 살 돼서 뭐하냐~" 이조차도 한심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몸에 문신이 가득한 같은 반 짝꿍이 있었다. 이 친구로 인해 처음으로 그 아이들이 고슴도치처럼 보였다. 그간 가지고 있던 한심함을 넘어 연민이라는 걸 느낀 것이다. 옆자리에 앉게 되면서 꽤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숨김이나 편견이 없는 친구였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이 아이들은 대체로 가정에 불화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혼가정이거나 폭력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가정에서 쌓인 분노를 학교에서 표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모여 서로 집단 감정을 공유하고, 우리는 특별한 사이임을 공연히 하려 한다. 그래서 비행 서클은 의리가 돈독하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 자신들의 피해의식을 무기로 평범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보호하고 가르치려는 어른들에게 삐딱함을 보여주며 공격한다. 


자신들을 무서워하던 아이들이 관심도 주지 않고 내신점수를 더 무서워하는 걸 보면서 점차 현실을 깨닫게 된다. 아, 이제 나의 무대가 사라지고 있음을.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알아줄 공간이 없음을. 그렇게 그들은 졸업이 다가갈수록 위축되었다. 선생님들 조차 비행청소년의 이름보다 전교권 학생들의 이름을 더 간절히 외쳤으니 말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건 무관심이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는 순간 다수 속의 특별한 집단이 아닌, 똑같은 아이들만이 전부로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회학에서도 비행 서클에 대한 연구결과가 다수 남아있다. 그들은 가정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집단생활과 잘못된 행동을 통해 해결한다. 부모의 안정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나이에 정상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결과이다. 충분한 관심과 정신적 지지가 있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 테니 말이다.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옹호하지 않지만 마냥 그들의 탓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그러한 방황의 시기가 잠깐의 질풍노도로 끝난다면 다행인 일이다. 하지만 점차 부정적인 감정들을 표출하는 선을 넘게 된다면 잠재적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최소한 이런 일만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길거리에서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를 과시하는 비행 서클 아이들을 보게 될 때 한편으로 안쓰럽다. 저들이 어릴 적부터 원해서 바라 온 모습은 아닐 테니 말이다. 주변의 환경이 그들을 더욱 외롭고 돈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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