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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Aug 11. 2022

아늑한 집으로부터 탈출하기

2주 뒤에 이사 갑니다


엄마, 나 월세 계약했어.



이십몇 년을 함께 살아온 큰딸의 폭탄선언이었다. 서울에 살면서 같은 서울 안에 자취방을 구하는 것도 모자라, 첫 독립 계약을 한마디 상의 없이 결정한 것이었다. 날 때부터 한 번도 떨어져서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이런 야심 찬 발언이 당황스러울 만도 하건만. 부모님은 크게 놀라지 않으셨다.

".. 어딘데?"





주변에 '이렇게 하겠다'라고 이야기하면 실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생각보다 빠르게.

며칠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올해 안에 독립을 하겠다'라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나도 이렇게 빠르게 이사 날짜가 잡히게 될 줄은 몰랐다. 2주 뒤, 독립을 한다.


운이 좋게도,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장기간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늘 따뜻한 집밥과 가족들이 함께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 안정감에서 단호하게 벗어나야겠다는 의지가 일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독립'이라는 키워드는 내 삶에 없었다. 주요 활동지가 서울이기에 서울에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면서 스스로를 먹여 살릴 본질적 책임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저 안에서 강렬한 외침이 있었다. 과감한 홀로서기를 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그렇게 10월 중순쯤엔 이사를 해야겠다는 막연한 마음을 먹게 된 것이었다. 보증금이라든지, 반포장 이사라든지, 그런 것들은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몇 달 전 미리 알아보려 부동산 어플을 뒤적거렸다. 생각보다 집 구하는 건 더욱 복잡하고, 침을 삼키게 되는 금액이었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조건의 집은 2-3일이면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여유를 부릴 게 아니었다. 서울 집값이 조크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보호받고 살아왔음을 돌아보게 되는 요즘이었다.





원룸 오피스텔이 1000에 100이라니. 고개를 절로 지으면서도 왜인지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단단히 굳어지고 있었다. 친구에게 한숨 섞인 고충을 털어놓자, 그는 말했다. "그래도, 너한테 딱 맞는 완벽한 조건의 집이 나타날 거야. 그걸 잡으면 돼." 그렇게 대출과 월세 매물을 번갈아가며 알아보던 중, 놀랍게도 완벽히 마음에 드는 조건의 집이 나타났다. 이때 즈음엔 부동산에 전화하는 게 두렵지 않게 느껴졌다. 친절한 중개인과 집주인까지, 모든 게 부드러운 진행이었다. 집 앞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두 손엔 부동산 계약서가 들려있었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론,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나의 결정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낸 적이 없으셨으니까. 그 덕에 어렸을 적부터 독립적으로 선택하는 일이 익숙했다. 부동산 계약서를 들고 오며 두려운 감정보다 어떻게 미래에 대해 잘 설명할지 고민하는 내 모습에, 다시 한번 부모님을 존경하게 되었다. 나는 감히 물질적 금수저보다 값진 건 정신적 금수저라고 여긴다. 그리고 독립적인 선택을 존중받는 나는 정신적 금수저를 물려받았다고 확신한다. 이에 더불어서 마음껏 누리지 못할 정도의 경제적 상황을 물려주신 것도 감사하다. 20대 초반, 많은 것을 가진 삶이었다면 경험하지 못할 뻔한 일들이 많았다.


그런 값진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현재에 더 의미 있는 도전들을(혹은 실패들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점차 또렷해지는 것들이 많아지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사실, '독립'이라 함은 타인의 삶과 더 가까워지는 첫 발돋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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