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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Aug 16. 2022

지하철에서 고개 숙인 사람들

스마트폰에서 벗어나기

섬뜩했다. 모든 사람들이 오른손의 네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지탱한 채 남은 엄지손가락으로 5cm 남짓한 스크린을 올려갔다. 왼손은 미완성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다.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져 두 손가락으로 카톡을 두드리다가, 길쭉한 창밖으로 내비치는 한강 볕에 고개를 들었다. 서울 토박이지만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나가는 순간은 매번 좋다. 그렇게 한강을 힘차게 달리고 나서야, 비로소 건너편에 앉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앞에 앉은 열댓 명의 사람들, 그리고 그 옆 통로의 사람들, 아니 내가 타고 있는 지하철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핸드폰에 유일한 시선을 내어주고 있었다. 





버스와 지하철 중에 하나를 타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검은 통로를 지나는 지하철보다 흔들리더라도 햇빛이 들어오는 버스가 좋다. 버스를 타면 창밖의 빠르게 지나치는 거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승객들을 종종 발견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든, 해가 쨍쨍한 날이든 버스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은 왠지 촉촉하다. 사람들의 표정보다는 생각이 많은 뒤통수를 보는 일이 많고, 신호가 멈추는 순간에는 횡단보도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의 걸음을 가만히 보는 일이 많다. 적당히 불편한 좌석과 이따금 둥크덩 소리를 내며 거칠게 느껴지는 승차감. 어릴 적 학원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을 버스 창가에 기대었던 기억. 지금은 몸보다 정신이 지쳤을 때 생각정리를 하는 가장 좋은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웬만하면 버스'를 외쳐도, 서울에서는 역시 지하철이 최고다. 정확한 도착시간과 빠른 환승. 네이버 지도마저 지하철을 정말 사랑한다. 지하철 좌석에 앉으면 건너편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저-멀리 앉은 사람들까지도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진풍경이 흔한 서울 지하철의 모습이다. 좌석에 앉았을 뿐이 아니다. 빽빽한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몸이 불안정하게 끼인 채로 한 손에 동영상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 건너 창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특이'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내어주고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포멀한 장소가 되어버렸다. 저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떤 것을 보고 있을까. 어쩌면 이 시간이 이동시간을 빙자한 여가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스마트폰이 과연 인간을 스마트하게 만드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검은 통로 속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지하철은 수많은 스마트폰을 삼켰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어깨를 스쳐가지만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이동하는 모든 시간을 내어준 스마트폰에서마저 기억에 남는 내용은 없었을 거라 감히 예상해본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마트폰이 없던 20년 전,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뭘 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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