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다른 말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꿈이다
당신의 트라우마를 기억하는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가장 최근에 꾼 악몽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계곡 앞 바비큐 파티는 경동시장표 소고기로 시작되었다. 여름맞이 가족 휴가로 오랜만에 외가 식구들이 모였다. 친척 어른들은 소주잔을 부딪혀가며 담소와 여유를 만끽했다. 그러던 도중, 60이 다 되어가는 삼촌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야, 나는 40년째 시험 보는 꿈을 꿔. 대학생 때 꾸던 꿈을 아직도 꾼다니까? 매번 같은 시험을 보는데 매번 못 풀어. 미치겠어 정말."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같은 트라우마를 고백하는 친척 어른들이 다수 등장했다. "나돈데!!!" "오빠도 그래?"그 뒤로 "언니는 공부도 잘 못했으면서 무슨 시험을 봐~?"라는 아이 같은 농담도 오고 갔다. 엄마도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수학시험을 보는 꿈을 꿨다고 말한다. 고등학생 시절 수학을 조금 더 잘하지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을 넘어 미련과 스트레스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 자신만의 끔찍한 경험이 있다. 어쩌면 돌이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내 주변 또래들에 대입하자면 '재입대하는 꿈'을 한 번씩은 꾼다고 고백했다. 악몽은 생생하다. 공기의 흐름, 냄새까지 느껴질 정도로 지독하게 사실적이다. 꿈속에서 제멋대로 설계되는 비상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당황하고 만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보내다, 결정적인 순간에 식은땀과 함께 눈을 번쩍 뜬다. 순간 현실이 아니라는 절대적 안도감과 함께 이내 왠지 억울한 감정과 불쾌함이 몰려온다. '하필 이런 꿈을...'
꿈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몇 마디 더하자면, 나는 매일 꿈을 꾼다. 5살 적에는 몽유병이 있었고, 학창 시절에는 잠버릇이 심했으며, 지금은 매일 꿈을 꾸며 가끔 잠꼬대를 하는 정도이다. 꿈에서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나는 왜인지 냄새와 맛 촉감까지 모두 생생하게 느껴진다. 고백하자면 유의미한 예지몽도 여럿 꿔본 경험이 있다. 어렸을 때에는 '저 멀리 꿈 세상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세상을 꿈을 꿀 때만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라는 나만의 가설을 굳게 믿곤 했다. 선명한 꿈일수록 내가 현재 스트레스받는 것들이 등장한다.
왜 우리는 꿈속에서 고통을 마주하는 것인가? 소설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의 이야기를 빌리고 싶다. 이 책은 꿈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꿈 제작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중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을 구매한 사람들이 꿈 백화점에 환불을 요청하러 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싶었는데 오히려 악몽을 꾸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꿈이 도대체 왜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냐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소리친다. 굳이 꿈에서까지 불쾌한 감정을 느껴야겠냐고 말이다. 그러자 꿈 백화점 창시자 달러구트는 말했다.
“정말 싫은 기억이기만 할까요?”
손님들이 일제히 달러구트를 바라봤다. 또 무슨 얘기를 하나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는 표정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달러구트 꿈 백화점」 p.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