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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빈 Your Celine Sep 24. 2020

다정한 스위치

지금은 낮이에요. 밝은 조명을 줄줄이 켜줄게요.

정답은 하나. 선택지는 두 개라면 짧게는 몇 초, 길게는 몇 분을 고민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불을 켜는 순간이다. 내가 조명을 켜야 하는 장소는 하나, 애매한 스위치는 두 개일 때. 뭐 불 켜는데 얼마나 걸리나 싶지만 왠지 한 번에 딱 맞게 켜고 싶다. 또 한두 번 눌러본 스위치가 아니라면 원하는 불을 한 번에 켜지 못했을 때 괜한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운 좋게 맞는 스위치를 켤 때면 작게 기분이 좋아짐을 느낀다.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스위치와 내가 관리해야 했던(아르바이트) 장소들에서 매번 일어나는 찰나의 고민이었다. 결국 스위치 위에 장소를 적어놓았다. 내가 자존심이 센 걸까. 이것도 꽤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거실 등', '베란다 등', '계단', '복도', '프런트' 이런 식이었다. 덕분에 그런 습관 같은 고민들이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를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증거였다.


  상가에서 일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자연스레 눌렀다. 버튼 옆, 스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밤' 그리고 '낮'.

어디에 위치한 조명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누를 수 있는 표시였다.

환한 낮에는 건물 복도도 밝을 때이다. 아마 적당한 밝은 빛의 조명이겠지. 많은 사람들이 건물을 이용할 테니 훨씬 많은 조명을 켤 수 있을 것이다. 어둑한 밤에는 눈이 아프지 않을 정도의 따뜻한 조도와 밤을 망가뜨리지 않을 정도의 다문다문한 개수의 조명이 켜질 것이다.


  간혹 상가 복도에서 '조명 1', '조명 2'로 표시된 스위치를 본 적이 있다. 스쳐 지나가는 상가들에서 스위치를 누를 일은 없기에 무심코 지나갔었다. 상가 관리인들만 서로 알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분들도 나처럼 습관적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본다. '이게 1이었던가... 2였던가...' 하고 말이다.

밤과 낮으로 스위치를 표시하다니. 왠지 스위치가 '지금은 밤입니다. 이런 조명이 딱이에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자세하진 않더라도 다정함이 느껴진다. 이 상가를 처음 맡게 된 누구라도 단번에 누를 수 있는 스위치이다.


이런 세심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들에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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