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여기가 놀이터
아파트 단지에는 큰 정자가 하나 있다. 언젠가부터 정자에 가지런히 솔방울, 알밤 껍질 같은 것들이 동그랗고 가지런히 모여있었다. 다람쥐가 왔다 갔나. 하고 귀여운 마음에 웃으며 지나갔었다. 그 놀이의 흔적들은 며칠간 고대로 남아있곤 했다. 이따금 놓여있는 장소와 재료들이 바뀔 뿐이었다. 바람결이 좋아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면 나도 가끔씩 정자에 앉아 바람을 쐬곤 한다. 그날도 정자 한편에는 솔방울이 7개쯤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우르르 정자 위로 달려왔다. 10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셋이었다. 마스크를 쓴 채 손에는 나뭇가지와 곱게 모은 나뭇잎들을 들고 있었다. 너희들이 그 다람쥐였구나.
아침 출근길에도 두 명의 아이들이 단지 구석 보도블록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뒷모습을 발견했다. 소꿉놀이를 하는 듯했다. 나뭇가지, 솔방울, 나뭇잎, 밤 껍데기 같은 것들이 놀이 도구였다.
'우와. 나도 저렇게 놀았었는데.'
놀이터에서 여자아이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재밌는 놀이 중 하나였다. 놀이터 주방놀이. 단단한 나뭇잎은 접시와 도마를, 매끈한 나뭇가지는 밀대를, 날카로운 돌멩이는 칼을 맡았다. 돌멩이로 무른 나뭇잎을 곱게 빻아 볶음밥이라며 상을 예쁘게 차려보기도 했다. 역할놀이는 덤이었다. 그런 역할놀이의 잔여물들은 다음날이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없애놓거나, 경비아저씨가 큼지막한 빗자루로 한번 스윽하면 없어질 것들이었다. 그런 것에 서운해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마무리한 채 늦은 저녁 뚜벅뚜벅 집으로 향했다. 가로등 밑 무언가 눈길을 끌었다. 아침에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했던 아기자기한 흔적이었다. 어쩜 그대로 있을까. 바람 말고는 그 누구도 건들지 않은 듯했다.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어릴 땐 이렇게 놀아야지.' 소꿉놀이를 했을 아이들을 귀여워하며 동심을 망치지 않으려는 마음. 정자 한가운데 고스란히 올려져 있던 솔방울과 나뭇잎들도 아이들이 치우기 전까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정자에 많은 사람들이 앉았다 가는 걸 알기에 마음 한쪽이 따스해졌다. 특히 정자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시는 할머님들은 종종 그곳에서 화투를 치곤 하시는데, 그럼에도 아이들의 소꿉놀이 재료는 사라지지 않았다.
몇 달 새 단지에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모두 학교에 학원에 바쁜 날들을 보내다가 코로나로 인해 단지콕 생활을 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같은 단지에 사는 아이들이 모여 끼리끼리 노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우리 단지에 아이들이 이렇게 많았었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동네 친구들과 모여 놀이터 모래를 가지고 노는 게 재미난 일상 중 하나였는데. 아이들이 어른들 못지않은 바쁜 이동생활을 하는 요즘은 보기 드문 모습이다. 맞벌이 부모인 경우에는 학원이 보육시설이 되어준다. 늦은 시간 버스로 집 앞에 내려주면 부모님과 함께 퇴근(?)을 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과 대화를 해보며 느낀 게 있다. "나가서 노는 게 제일 좋아!"를 외치는 아이들보다 "집에 가만히 있고 싶어."를 선언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고 싶다.'는 더 이상 찌든 삶에 지친 어른들만의 한탄이 아니다. 평일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살았으니 주말만은 집에서 가만히 있고 싶다는 이야길 하곤 한다. 코로나로 어쩔 수 없는 집콕 생활을 해야 하는 이 시국과 또 다르게 씁쓸한 말이었다. 집에서 무얼 하냐고 물어보니 '유튜브 혹은 게임'이었다. 집이 제일 아늑하고 편안하다며 하루 종일 누워서 유튜브만 보고 싶다는, 왠지 동년배 같은 말만 내뱉는 걸 보니 이런 게 '요즘 아이들'인가 라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이런 현실 속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게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요즘 아이들은 빨리 크잖아요."라는 말이 무겁게 들린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의 틀 속에 맞추어 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 정보가 넘쳐나는 동시에 어른들의 이야기를 너무 빨리 접해버린 아이들이 '빨리 커버린'건 아닐까.
아직은 나뭇잎과 솔방울 소꿉놀이가 더 재미있을 나이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