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출 수 없는 여자들의 멋
2021년 하반기, 거리두기로 움츠러든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 여성들이 나타났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수많은 '방구석 춤꾼'들을 들썩이게 한 주인공이다. 그간 엠넷에서 방영한 많은 시리즈 예능 중에서 가장 핫한 콘텐츠일 것이다. 10대부터 30대까지 너나 할 거 없이 스우파 유행어를 따라 했고, HEY MAMA 도입부가 나오는 순간 심장이 쿵쾅댔다. 웃음, 눈물, 감동을 넘어 인생의 드라마까지 전해주는 이들은 도대체 뭘 한 걸까? 스우파가 대한민국을 정신없이 휩쓸었던 그 이유들을 파헤쳐봤다.
첫 번째는 화면을 뚫고 나오는 춤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다. 그들의 인생은 모두 춤으로 결부되어 있었다. 몸으로 모든 이야기와 감정들을 풀어낼 수 있는 것에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그들에게 있어 춤이라는 존재는, 단순 밥벌이의 수단 정도가 아니었다. 에너지와 삶 그 자체였다. 함께 화합하는 순간에도 춤을, 탈락 대결을 하는 긴장의 순간에도 춤을 추었다. 바로 다음 동작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직 음악만이 흐름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상대방을 짓밟기 위한 춤을 추었다면, 오히려 매력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즐기고 있었다. 서로의 춤에 리스펙을 보냈고 함께 감동할 뿐이었다. 탈골이 되고 부상을 입는 순간에도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다른 것에 방해받지 않는 순수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들의 열정에 희열을 느끼는 한편 반성도 했다. "나는 무언가에 이토록 열정적이었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라는 이름에서 가장 부각되는 건 '우먼'이다. 스우파 출연진들은 평범한 여성들이 아닌 '멋'과 '뽐'을 아는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춤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게 진심으로 느껴진다. 고유의 매력이 진하게 드러나는 사람들이 모여있으니 캐릭터를 덕질하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자신의 춤에 자부심을 가지고 마음껏 끼를 뽐내는 자신감이 남성들 보다도 여성들의 마음을 저격했다.
이들 한 명 한 명이 매력적인 이유는 '당당함'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당당함을 드러내는 방식은 모두 다르다. 특히 시청자들이 따르고 싶은 매력적인 리더십을 다채롭게 보여주었다. 프라우드먼의 모니카는 팀명 그대로 당당함 그 자체다. 카리스마를 베이스로 팀원들을 부드럽게 감싸주고 철저하게 채찍질한다. 원트의 효진초이는 재치가 넘치면서도 정이 많다. 말랑말랑해 보여도 자신의 무대는 미친 듯이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라치카의 가비는 자칭 주체할 수 없는 악마의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좋음 된 거야'라는 유행어를 만들며 자존감의 끝을 보여준다. ygx의 리정은 영 보스의 멋짐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어린 나이가 흠이 아닌 자부심으로 발동한다.
훅의 아이키는 유쾌한 분위기의 리더다. 모두의 의견을 동등하게 수용하며 각자의 역량을 최대로 이끌 수 있게 도와준다. 홀리뱅의 허니 제이는 전문성이 받쳐주는 존경심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팀원들의 멘탈관리까지 아우를 수 있는 리더다. 흔들리는 멤버들에게 '우리가 잘하는 걸 하자'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코카 앤 버터 리헤이는 인자한 카리스마를 보였다.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의 춤을 다루는 팀에 흔들림 없는 당당함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웨이비의 노제는 여리지만 책임감 있는 리더의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을 흔든 헤이마마 안무를 만든 당사자인 만큼, 예쁜 외모보다 춤이 더 빛나는 순간들이 많았다.
'댄서'라는 직업은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이전, 대중들에게 아이돌 무대의 백댄서 정도 위치였다. 직업적 위상 또한 높은 편이 아니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고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의 시선들이 가득한 직업이었다. 그들을 위한 무대는 대중들의 시선 밖이었으며 그 직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온전한 시선보다 따가운 시선이 만연한 환경에서 이제는 '춤'자체를 즐기고 그들을 리스펙 하게 되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그들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에 전율과 희열을 느끼고 있다.
세상의 시선이 어떻든 그들은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 넘볼 수 없는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진심으로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역량을 미친 듯이 폭발시키는 모습은 그간 그릇된 편견들을 모두 깨부수는 짜릿함을 선사했다. 매 순간 음악에 홀린 듯 보이는 춤사위는 사람들의 동공을 커지게 하고 아래턱을 떨어뜨렸다. 적어도 스우파를 시청하는 시간은 춤과 댄서의 의미에 대해 일깨우는 시간들이었다.
웃음과 춤을 보여주는 줄 알았던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거 완전 드라마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을 처음 만났지만, 오랜 시간 춤과 함께해온 출연자들은 서로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다. 서로에게 얽힌 이야기와 춤 하나로 단단하게 뭉친 동질감이 매 순간 감동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가장 스우파가 그들의 인생 드라마의 한 장면임을 나타냈던 회차는 리헤이와 허니제이의 1:1 배틀이었다. 두 사람은 7년간 한 팀에서 활동했지만, 그들만의 사정으로 현재는 각자 다른 크루로 활동하고 있다. 배틀 시작 전부터 모두의 긴장감을 자아냈고, 배틀이 시작되는 순간 입을 틀어막고 놀라게 만들었다. 프리스타일 댄스 도중, 두 사람이 같은 루틴의 동작을 동시에 만들어낸 것이다. 마치 짠 것처럼 말이다. 배틀이 끝난 후에는 그동안 멀리했던 서로를 이해한다는 진한 화해의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스우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는 '스트리트 걸스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에서 10대 고등학생 댄서를 양성하는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스우파와는 또 다르게 10대들만의 때 묻지 않은 에너지가 확실히 보여진다. 그들 간의 춤 배틀은 끝이 났지만, 나를 표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당당한 멋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