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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17. 2022

교회를 떠나, 나와 화해하다

〈교회 가기 싫은 날〉프롤로그

나는 교회 여자이다. 엄마 뱃속부터 예배를 드렸고, 대여섯 살에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를 곱게 불렀다. 샤론이 어딘지도, 예수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유치부가 좋았다. 주일을 목숨처럼 지키고, 처음 얻은 것은 교회에 냈다. 난생처음 과외로 돈을 벌었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모두 헌금을 했다. 아버지는 주일학교 부장과 남선 교회 회장을 거쳐 재정부 장로가 되었다. 엄마는 권사로서 주방 봉사를 하고, 아픈 이를 돌봤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남자와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믿음의 가정’의 결합이었다. 두 아이를 교회에서 키우며, 크고 작은 경조사에 떡을 나누고 예물을 드렸다. 


2020년 6월, 교회를 나왔다. 결론적으로 나는 옮겼고, 남편은 떠났다. 교회와 등진 것은 목사와의 문제였다. 갈등의 마침표를 찍기에 ‘코로나’는 좋은 구실이었다. 여러 사람이 Y 목사와의 다툼 끝에 교회를 떠났다. 저마다 상황은 달랐지만, 목사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돌아선 것은 똑같았다. 설교가 들리지 않고, 그의 행동에 의문이 생겼다. 과연 목사는 말한 만큼 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목사는 성경 구절을 줄줄 외우며 논쟁을 펼쳤고, 언쟁 끝에 말로 심장을 할퀴었다. 목사는 자신에게서 돌아선 이는 누구든 외면했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언제나 골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말하는 천국이 그런 곳이라면, 가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교회를 벗어났지만,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이래도 되나?’, ‘벌 받지 않을까?’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차오르는 미움을 누르고, 모르는 척했다. ‘감히 목사를 대적하다니….’라는 비난이 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부모님은 “너 후회한다”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아니라고 했지만, ‘축복’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었다. 어떤 말로도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없었다. 


떠나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다. 교회를 등지며, 장로와 권사 가정에서 누렸던 특권을 내려놓았다. ‘이 길에 끝은 있을까’ 그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정처 없이 걸었다. 장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하나님을 깊이 알지 않고는 자신을 깊이 알 수 없고, 자신을 깊이 알지 않고 하나님을 깊이 알 수 없다”라고 했다. 망했다고 주저앉은 나에게, 나를 해석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조금씩 용서했다. 목사에게 신의 사랑을 바란 나, 그것은 내 잘못이기도 했다. 내가 끔찍이 싫어했던 목사의 모습은 사실 내 모습의 거울이었다. 


이 이야기는 교회를 떠나 나와 화해한 이야기이다. 상처가 문제라고 하는 이를 떠나, 상처가 무늬라고 하는 이를 만났다. 새로운 연결이었다. 읽고 쓰면서 ‘나’를 아는 만큼, ‘하나님’이 보였다. 태초에 나의 갈망을 넘어선 갈망, 나의 기다림을 초월한 기다림이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나를 향한 신의 사랑을 가슴 깊이 받아들인 날, 홀로 꺼이꺼이 울었다. 혼자 걷는 것 같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때, 언제나 붙잡고 일어설 누군가가 있었다. 모든 것이 그분의 빛 아래 있었다. 


그립다. 여름밤, 옥수수와 수박을 먹으며 밤새 이야기 나누던 수련회, 서로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챙기던 손길, 편하게 웃고, 때론 놀리고, 가끔은 울고, 진심으로 축하하던 날들. 교회에서 못 보더라도 연락하자고 했지만 서먹해졌다. 백일 선물을 건넨 뒤로 보지 못한 K는 지금쯤 걸어 다니겠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가끔은 나만 빼고 잘 지내는 그들의 모습에 주저앉는다. 목사를 떠나며, 많은 것을 두고 와야 했다. 어쩌면 미움과 사랑은 같은 말일까. 이토록 싫은데, 이토록 간절하니…. 


Y 목사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교회가 휘청 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잊지 못하는 나만 서운함과 절실함 사이에서 무너진다. 이따금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간다. 새로운 지휘자와 반주자가 생기고, 모르는 이름들이 봉헌을 한다. 남은 이들은 저마다의 삶을 잘 지키고 있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그늘진 것은 그늘진 대로 바라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걷는 일이다. 이 소란스러운 시간을 통해 조금 깊고 넓어지길 바라며…. 이제, 그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Photo by Daniel Tse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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