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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Feb 13. 2023

내 작은 하나님

〈교회 가기 싫은 날〉6. 

목사는 말했다. “아무도 하나님의 판단을 피해 숨거나 도망칠 수 없습니다.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는 감시하는 하나님 밑에서 떨었다. 설교의 끝은 의외였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가꾸고 계십니다. 그 은혜를 오늘도 누리시기 바랍니다.” 나는 작은 하나님과 큰 하나님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하나님의 큰 품에 안겼다가 ‘네 죄를 다 안다’라며 호되게 맞을 것 같았다. K를 미워하고, L을 시기하고, P의 것을 탐내는 ‘나’이니까. 거짓말을 해놓고 벌을 받을까 봐 떨었다. 율법에 얽매이자 삶은 점점 지루해졌다. 


2018년 6월부터 예레미야 설교를 들으며 두려움과 공포를 내면에 새겼다. 매주 혼나러 교회에 갔다. ‘사랑의 하나님’을 불러 보았지만 무서웠다. 아무리 감춰봤자 결국 내 마음 모두 들키고 말 테니까. 나는 설교의 청자가 궁금했다. 보수 교회 목사에게 할 말을 왜 우리에게 퍼붓는지 의아했다. 민간인 학살이라고 할까. 왜 부패한 기독교 권력은 가만히 두고, 주일마다 우리를 심판대로 몰아넣는지 따지고 싶었다. 내가 목사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예레미야 설교만 듣다 보니, 예수님이 그리워요. 요한복음에서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시던 그 예수님이요.” 목사는 한국 교회가 오랫동안 그런 예수님만 말했다고, 그게 잘못이라고, 그런 생각을 고치라고 답했다. 


목사는 누군가의 ‘악함’을 보는 것에 탁월했고 나는 그 앞에서 언제나 부족했다. 작은 하나님 아래서 나는 더 작아졌다. 옳지 못한 생각과 보잘것없는 감정으로 가득한 내 ‘마음’을 들킬 것만 같았다. 숨고 싶은데, 숨을 수 없어서, 모든 꾸지람을 온몸으로 견뎠다. 중고생 시절, 아침마다 나를 노려보던 선도부라고 할까. 예배에 늦는 것, 헌금을 적게 한 것, 봉사하지 않은 것이 모두 발각될 것 같았다. 내 작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록했다. 옆집 아저씨보다 더 작은 가슴을 가진 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숙제 검사받듯 교회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목사의 말은 날카로웠다. 먼저 공부방에 있던 아이들이 목사의 말에 베였다. 몇 아이들 이유 없이 공부방에 오지 않았다. 논쟁 끝에 여러 사람이 교회에서 사라졌다. 목사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집사에게 노골적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생각의 침범이었다. 정치적 신념은 한 사람의 오래된 역사이다. 집사는 난처했고 결국 돌아섰다. 목사는 베트남 파병을 다녀온 장로 앞에서 한국의 참전을 비난했다. 사과를 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목사가 외치는 정의와 진리가 선명할수록 저마다 삶의 이야기는 희미해졌다. 


많은 이들이 교회와 등진 이유는 결국 ‘목사’였다. 그들을 찾아갔지만 망가진 마음을 꿰맬 수 없었다. 사나운 상처를 보고 나까지 덧나서 돌아왔다. 수십 명이 나가도 목사는 아무렇지 않았다. 결국 내 차례였다. 목사가 말했다. “그렇게 상처받은 건 집사님 잘못이죠.” 사모가 덧붙였다. “목사님 좋다는 사람도 많아요.” 떠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남은 이들은 절실하게 목사를 지키고 있다. 밀려난 이들의 자리가 감쪽같이 채워지고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나만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곪아 있다. 


진물 나는 내 마음에 머무른다. 용기 내어 마주한다. 누구에게나 고유한 마음이 있다. ‘마음’이 소중하다는 목사는 그 누구의 마음도 보지 않았다. ‘내가 문제야. 이런 일로 힘들면 안 돼.’라며 수없이 내 마음을 구겼다. “힘들어요.”라는 말에 목사는 “그건 집사님이 문제죠.”라고 답했으니까. 그 시절 나에게 목사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이었다. 이제는 안다. 작은 것은 목사이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힘들어요”라며 주저앉은 나를 탓하지 않는다. 판단하거나, 평가하지도 않는다. 마음껏 힘들어하고 지독히 미워하겠다. 마음이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겠다. 하나님은 크다. 


Photo by Davide Cantell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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