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 네 번째 화요일 '죽음'
※ 본 글은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을 읽고 쓰는 기록입니다.
- 모리가 미치에게 전하는 화요일 수업을 청강하는 이유 (https://brunch.co.kr/@yunseul2023/95)
④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게 어려운 이유
"다들 잠든 채 걸어 다니는 것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지. 우린 세상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고, 반쯤은 졸면서 살고 있거든."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142p
수업 청강 네 번째 날. 어제 열한 시까지 이어진 팀 회식에 피로가 덜 풀렸는지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했다. 체감상 목요일 즈음 되어 보이는 오늘이었다. 유막제거니 발수코팅이니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시야가 뿌옇기만 한 차를 가지고 40분 남짓 운전을 해서 그런가 유독 피곤했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소파에 누우니 저녁 여덟 시 반. 잠이 솔솔 왔다.
모리와의 수업이 있었다. 피로 따위에 지고 싶지 않았다. 오늘 같은 컨디션에 글이 읽힐까? 그리고 글이 써질까? 엉망인 글을 발행하는 것보단야, 오늘은 한숨 자면서 쉴까. 마음속에 슬금슬금 나태의 유혹이 찾아왔다. 십분 정도를 빈둥댔을까. 결론은 이거였다.
이 <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은 완성도 높은 글을 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모리의 수업을 들으며 마음껏 느끼고 사색하고 배우는 것. 유려한 문장과 짜임새는 부가적인 것이었다. 화요일마다 모리에게 죽음 끝에서 삶의 의미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배움으로 삶의 태도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는 것. 일단, 수업에 들어가자. 무엇이든 깨닫고 배우고, 우당탕탕 일지언정 한 편의 글을 써내자.
페이스북의 대표 슬로건, "Done is better than perfect.(완성하는 것이 완벽한 것보다 낫다)"를 노트북 옆에 써붙이고 오늘의 수업을 찾아갔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세 번째 수업을 마치고, 미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리스트를 만들었다. '죽음이라는 열차의 기적 소리를 들으면서 철로에 서 있었으며,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히 알고 있는' 모리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 죽음, 두려움, 나이가 든다는 것, 탐욕 등. 오늘 수업은 그 리스트 가장 위에 있었던 '죽음'이었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프롤로그에서 읽고 감명을 받아 이 브런치북을 연재하기 시작한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들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신도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그러나 결국 나 자신도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결국 나도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며, 모리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매일 어깨 위에 작은 새를 올려놓는 거야. 그러곤 새에게 '오늘이 그날인가? 나는 준비가 되었나? 나는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나?'라고 묻는 거지" (140p)
이 세상에 어떤 사람으로 머물다 갈 것인가. 어떤 삶을 살다가 죽을 것인가. 당장 한 시간 뒤일지도, 아니면 70년 뒤일지도 모르는 죽음이 찾아왔을 때, 언제 일지 모르는 그 지점에서 사(死)를 맞이할 때의 나의 모습은 어떠했으면 좋겠는가.
모리의 말을 듣고 미치는 질문 한다. 그렇게 해서 죽음에 직면하면 모든 게 변하냐고. 그 질문을 듣고 루게릭 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며, 죽음에 맞닿아 있는 모리는 말했다.
"그래.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다 벗겨 내고 결국 핵심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자기가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모든 일들이 아주 다르게 보인다네"(142p)
동시에 현실에 집중하고 있는 미치에게 당부의 말을 건넨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지금처럼 야망이 넘치지 않게 된다고. 미치가 현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고. 현실과 맞닿아 있는 부, 명예가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덜어내고 영혼과 관계된 것들이 파고들 공간을 많이 마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우리가 어떤 면에서 부족하다는 점은 잘 알지. 우린 물질적인 것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도 거기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어. 사랑하는 관계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와 같은 것들을 사람들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144p)
미치와 모리의 오늘 수업은, '이건 한 번 더 글로 풀어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중요한 수업이었다. 한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목표에 대해 고민하는 지금 시점에는 꼭 필요한 수업이었다.
새로운 한 해를 기다리며, '목표 설정'에 대하여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였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기 전 책상에 앉아하고 싶은 일들과 해야 하는 일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바라는 소망과 해야 하는 의무들이 끝도 없이 나열되었다. 비슷한 것들끼리 묶어 보고, 사분면을 그어 한 축은 급한 일, 다른 한 축은 중요한 일로 나누어 일을 배분했다. 그리고 그 일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해 번호를 매겨보았다.
내가 한 주에, 그리고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을 정리했다. 그리고 우선순위에 맞추어 목표들을 하나둘씩 넣어보았다. 아무리 우선순위를 정해보아도, 한정된 시간 대비 목표들은 많기만 했다.
저번 주, 모리와의 수업에서 인상 깊었던 말을 되뇌며 살았던 저번 한 주였다. '우린 그냥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 가지 사소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 그래서 한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삶을 관조하며 '이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가?'이 말을 기억하며 사소한 것들을 덜어내려고 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내가 '원하는' 걸 채워 넣으려고 했다. 그래도,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했다.
오늘 수업을 들으며, 시간이 부족하기만 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어떤 삶을 살다가 죽을 것인가. 눈앞에 죽음이 찾아왔을 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손에 꼽아질 때, 그때 나는 어떤 걸 하고 싶을까. 그리고 그 순간 어떤 사람이길 바라는가.
원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아니었던 것들이 많았던 탓이었다. 우선순위에 놓여있었던 것들의 절반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원하는 것들이었다. 발가벗은, 본연의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이렇게 보이기 바라는 나의 모습을 위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과연 죽음 앞에서 의미가 있을까.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 중요할까.
남들이 나를 보았을 때 그럴듯해 보이는 모습보다, 내가 나를 보았을 때 그럴듯해 보이고 싶었다. 죽음 앞에서,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모리는 영혼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살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중심축을 제대로 잡고 발을 붙여야겠다. 아마, 내일 아침 우선순위 목록에는 삭선이 여러 개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