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인가? 이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가?

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 세 번째 화요일 '후회'

by 윤슬

※ 본 글은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을 읽고 쓰는 기록입니다.

- 모리가 미치에게 전하는 화요일 수업을 청강하는 이유 (https://brunch.co.kr/@yunseul2023/95)


③ 미치가 미치도록 부러운 이유

"누군가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해. 혼자선 그런 생각을 하며 살기 힘든 법이거든"
나는 교수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 모두 평생의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의 스승은 바로 눈앞에 앉아 있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120p


수업 청강 세 번째 날이다. 특별할 것 없는 화요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모리와의 수업.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작은 설렘이 일었다. 모리는,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 모리의 다정한 수업을 들으며 나는 오늘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분명 자기 전에는 예상 수면 시간이 6시간 남짓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켜본 수면 추적 어플에 기록된 수면 시간은 3시간 48분이었다. 무려 일곱 번이나 중간에 깼었다. 왠지, 오늘따라 꿈이 생생하게 뒤숭숭하더라니. 자는 내내 뒤숭숭한 꿈에 시달렸던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 종일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기운 없이 축축 쳐지는 느낌이었달까. 오늘따라 유독 가기 싫은 출근길을 꾸역꾸역 내디뎠다. 출근을 해야 했다. 이 생계수단이 있어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니까. 이 생계수단이 있어야 내가 사랑하는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테니까. 카페인을 때려 부어도 피곤함은 가시질 않았다. 멍한 머릿속에 이리저리 별이 나뒹굴어 다녔다. 그냥 조퇴해 버릴까. 아니야, 이대로 집 가면 분명 하루 종일 자기만 할게 뻔해. 오늘은 모리를 만나러 가는 날이잖아. 다섯 시간만 버티면 모리를 만나러 갈 수 있어. 세 시간만, 한 시간만. 고단한 오늘 하루 끝엔 모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피곤했지만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드디어 퇴근을 하고, 저녁까지 챙겨 먹고 책상에 앉았다.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 웨스트뉴턴, 죽음을 앞둔 모리가 미치와 정답게 인생을 이야기하는 그곳에 가기 위하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을 폈다. 청강생에게 컨디션을 따질 겨를은 없다. 수업 진도에 컨디션을 맞추는 수밖에.




오늘 수업의 주제는 '후회'였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모리 교수님이 루게릭병으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다시 모리 교수님을 만나기까지 마치가 모리 교수님에게 가장 궁금했던 것은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였다.


'잃어버린 친구들이 애석할까?',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싶었을까?' '잃어버린 모든 것을 슬퍼하며 시간을 보냈을까?', '감추어온 비밀들이 후회스러울까?'


미치는 이에 대해 모리 교수님에게 물었다. 미치의 생각을 들으며 같이 궁금해졌다. 그러게,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일까. 모리 교수님의 대답을 기다리며 책에 쭈우욱 밑줄을 그었다. '그러게, 서서히 죽어가며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일까? 모리 교수님은 뭐라고 그럴까?' 작게 연필로 메모를 남기며. 사회심리학 교수가 인생 마지막에서 말하는 후회란 무엇일까.


있다, 없다가 아니었다. 그리고 특정한 대상도, 사건도 아니었다.


"미치, 우리 문화는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도록 놔두질 않는다네. 우리는 이기적인 것들에 둘러 싸여서 살고 있어. 경력, 가족, 또 주택 융자금을 갚아 낼 돈은 충분한기, 새 차를 살 여유가 있는가, 고장 난 난방 장치를 수리할 돈이 있는가 등등... 우린 그냥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 가지 사소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 그래서 한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삶을 관조하며 '이게 다인가? 이게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가? 뭔가 빠진 건 없나? 하고 돌아보는 습관을 갖지 못하지."


오늘 수업의 주제는 '후회'였다. 후회를 대해야 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돌아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모리 교수님의 대답이 단번에는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앞페이지로 갔다가, 뒷페이지로 갔다가, 이 대답을 다시 읽어봤다가. 같은 구간을 계속해서 곱씹어 보았다.


모리 교수님이 후회하는 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고 후회하는 것들을 돌이켜보니 내가 진정 원하는 것들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들을 깨달았을 수도.



12월이 되고 나서, 다가오는 2026년에 대하여 디데이 카운팅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D-30, D-20, D-15.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다른 이들의 디데이 카운팅과는 다르게, 저번 주부터 나의 카운팅은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고 있다. '바라는 삶 만들어가기 D+1, D+2, D+3..'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버텨내기만 하는 것에 지쳐, 저번주부터 새로이 시작한 사이드 프로젝트였다.


어차피 지나야 하는 시간이라면, 어차피 살아야 하는 삶이라면 버티지 말고 만들어가자고. 살아보고 싶은 삶, 바라는 삶을 만들어가자고. 바라는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바라는 게 뭔지 알아야 했다. 그래서 저번 주부터 평소보다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그 시간을 '방향성 설정 시간'이라고 이름 붙였다. 내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 빼곡히 적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것들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적고 나서 리스트를 주욱 보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나다웠다. 글쓰기, 독서, 운동, 마음 돌봄 같은 것들. 돈이니 지위니 명예니 이런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면의 것들. 현실주의자들이 보았다면 코웃음 칠 무언가 들이 내게는 바라는 삶이었고, 꿈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몇 살에 얼마 모으기, 무슨 집에 살기, 무슨 차를 타기, 이런 것들에 기웃거리느라 진짜 내가 바라는 삶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별 거 아니어 보일 것들이, 내게는 내 인생을 바치고 싶은 무언가였다.


그렇게 바라는 삶을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에 하나둘 끼워 넣어 보았다. 성공하는 날보다 실패하는 날이 많았다. 플래너를 주욱 적어보며 실패의 이유를 찾았다. 시간과 에너지가 문제였다.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한 것들을 할 시간이 부족했고, 에너지가 부족했다. 계속해서 물었다. 왜?


온갖 잡다한 것들이 이미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좀먹고 있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생각들과 행동들. 또는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들. 지금 당장은 급해 보이지만, 내가 바라는 삶을 바라봤을 때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 내게 소중한 것들을 채워 넣으려면 과감하게 비워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비우고, 그 빈자리를 내게 중요한 것들로 하나씩 채워 넣었다.


눈앞에 처한 일과 상황에만 급급해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지 못했다. 바쁠수록, 지칠수록 한 발짝 물러나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를 살펴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