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 두 번째 화요일 '자기 연민'
② 모리를 만나는 날의 미치
"그러나 모리 교수님을 만날 때면 그의 빛에 의해 모든 것들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인생을 이야기했고 사랑을 이야기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109p
수업 청강 두 번째 날이었다. 모리가 미치에게 전해주는 마지막 인생 수업을 청강하기로 다짐한 것이 9월 16일이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11만 km를 날아가 모리가 삶의 마지막에 남긴 수업을 청강하겠다고 다짐했건만. 10월에 인사발령이 있었다. 기존에 있던 직원이 타 부서로 발령 나고, 신규 직원이 우리 부서로 발령 나는 과정에서 업무가 바뀌었다. 내가 맡았던 업무 옆에는 신규 직원의 이름이 새겨졌고, 내 이름 옆에는 내가 해보지 못한 업무들이 주욱 나열되어 있었다.
시즌 업무가 많은 자리였고, 그 시즌의 한창 성수기인 자리였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야 했고, 공무원에 처음 발을 디딘 신규 직원의 사수 역할을 해야 했다. 업무 시간에는 민원을 보며 신규 직원에게 업무를 하나하나 알려줘야 했고, 업무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내 업무를 공부하고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하나둘씩 해나갔다.
인사이동으로 인해 평온했던 일상이, 꾸준하게 이어오던 루틴들이 와장창 무너졌다. 새로운 업무에 대한 부담감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신규 직원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켜켜이 쌓여갔다. 스트레스로 인해 쉬이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많아졌다. 늦은 취침 시간으로 인해 몇 년 동안 소중하게 지켜오던 모닝 루틴이 날아갔다. 스트레스에 찌든 몸은 건강한 음식보다는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을 원했고, 건강하게 끼니를 만들어가던 저녁이 무너졌다. 어떻게든 지켜나갔던 독서와 글쓰기마저 무너졌다. 자기 전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 하루가 허망했고, 내일을 또 한 번 꾸역꾸역 살아내야 한다는 게 싫어 하루를 보내기 싫었다. 일어나서는 또 억지로 버텨내야만 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무거웠다.
그렇게 두 달을 버티기만 했다. 더 이상은 몸도, 마음도 한계였다. 제풀에 지쳐 다 놓아버리든, 어떻게든 다시 내가 사랑하던 생활로 돌아와야 했다. 침대에서 시체처럼 누워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는 더는 안 돼. 일단, 화요일의 모리를 만나러 가자. 화요일의 모리를 만나고, 어떻게든 글로 풀어내자. 꼬여버린 삶에서 우연히 모리를 만나러 갔다 삶의 이정표를 만난 미치처럼.
정말 오랜만에, 처음 이 브런치 북을 연재하기로 시작했던 때의 설렘이 떠올랐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자기 연민'이었다. 루게릭 병으로 인해 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모리 교수님을 보며 미치는 교수님에게 자기 연민을 느끼는지 물었고, 모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따금. 아침이 되면 그렇다네.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 움직일 수 있는 내 몸들을 점검하곤 하지. 손가락과 손을 움직여 보고 움직임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슬퍼하지. 천천히 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슬퍼한다네. 하지만 그런 다음에 슬퍼하는 것을 멈추지."
모리의 이야기를 듣고 미치는 그 방법에 대하여 물었고, 미치의 답변이 오늘 수업의 핵심이었다.
"필요하면 한바탕 시원하게 울기도 해.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네. 나를 만나러 와 줄 사람들, 내가 앞으로 들을 이야기에 대해서 말이지. 미치, 난 그 이상으로 자기 연민에 빠지진 않는다네. 아침마다 조금씩 그런 기분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그걸로 끝이야."
모리의 답변을 듣고 미치는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러며 생각한다. '하루 중 자기 연민을 느껴도 될 시간을 따로 정해 둔다면 얼마나 유용할까? 몇 분만 눈물을 흘리고 그날의 나머지는 즐겁게 사는 것이다.'
오늘의 수업을 주욱 듣고 있는데, 모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기감정에 있는 힘껏 솔직해지고, 다 쏟아부은 후
자네에게 남아 있는 좋은 것들에 집중해 보게"
최근에 과거 사진을 보면 입안이 텁텁해졌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모든 순간은 아니었지만, 삶의 대부분의 시기에 나는 꽤나 치열했다. 바라는 삶이 있었고, 살아보고 싶은 삶이 있었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사회적 지위니 돈이니 중요치 않으니 성취감과 발전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갈 수 있다면 그걸로 성공한 삶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관습적인 집단에 뿌리를 내려버렸다. 비슷하지조차 않은 현실을 보고 있자면 과거의 내게 미안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스스로를 탓해봤자 하늘에 침 뱉기였다. 아주 조금, 아주 작은 각도로 틀어진 삶의 방향은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각도가 크게 달라졌다. 그렇다고 다 집어던지고 떠날 수도 없는 현실의 무게와 책임감에 스스로가 불쌍했고 허망했던 적이 숱했다. 그리고 업무 변동 때문에 힘든 현재가 보였다. 전임자가 남기고 간 허물과 실수들, 신규 직원의 어리숙한 처리에서 오는 실수들, 새로 바뀐 업무에서 허둥대고 있는 상태에서 부서장과 팀장의 기대치가 주는 압박들.
모리와 미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간 내가 느꼈던 감정에 대하여 돌아봤다. 현타와 압박, 스트레스 사이에서 내가 선택한 건 현실도피였다. 감정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 것 같아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면 외면하고 쾌락으로 도피했다. 나와는 관계도 없는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유튜브 쇼츠, 쇼핑, 술. 외면하고 또 외면했다. 부정적인 것들에 등을 돌리느라 남아있는 좋은 것들 조차도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여전히 나에게는 무엇이든 도전해 볼 수 있는 숱한 시간들이 남아있었고, 보수적 집단의 반대급부로는 안정성이 있었고, 새로운 업무를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사수 역할을 하며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배울 수 있었고, 때로는 반면교사를 할 수 있었고, 내가 신규였을 때 사수 역할을 해주었던 선배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리는 지금의 상황에도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단단한 믿음과 신뢰를 보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전히, 내게는 좋은 것들이 많이 남아있는 감사한 삶이었는데. 부정적인 것들을 피하려고 감사한 것들마저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부정적인 것들을 쏟아부어버리고 그 자리에 감사한 것들을 채워 넣기.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너무 흔하디 흔한 말이어서 쉬이 지나쳤던 마법의 치트키였다.
최근 읽고 있는, 아들러 심리학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미움받을 용기 2>에서 철학자는 청년에게 상담할 때 사용하는 삼각주에 대해 알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삼각주를 정면에서 볼 때는 두 면이 보인다. 한 면에는 '불쌍한 나'가 적혀있고, 다른 한 면에는 '나쁜 그 사람'이 적혀있다. 그리고 삼각주를 돌리면 바닥에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적혀있다.
철학자는 청년에게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정면에서 보는 두 면 중 하나라고 말했다. '불쌍한 나' 그리고 '나쁜 그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의논해야 할 것은 이 두 면이 아닌, 마지막 한 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했다.
오늘 모리의 수업을 듣는데, 문득 이 삼각주가 떠올랐다. 자기 연민도 어쩌면 여기에 대입할 수 있지 않을까. '불쌍한 나'와 '나쁜 그 사람(또는 상황)'. 자기 연민에 빠지면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까지 보이는 건 이 두 면이지 않을까. 자기 파괴적이고 타인 파괴적인 이 생각들에 매몰되어 봤자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미움받을 용기 2>의 철학자가 말하듯,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되어야 지금 겪고 있는 불편한 자기 연민에 빠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모리의 오늘 수업에 아들러의 가르침을 더해, 오늘의 결론은 이렇게 내고자 한다.
자기 연민이 찾아올 때는
내 감정에 마음껏 솔직해지고, 마음껏 쏟아부은 후 나에게 남아 있는 좋은 것들에 집중하기.
그리고 그 좋은 것들을 활용해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해결책을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