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

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 첫 번째 화요일 '세상'

by 윤슬
① 모리의 수업방식
"교수님은 질문한 다음에 내 대답을 듣고서 내가 잊었거나 깨닫지 못한 대목에서 주방장처럼 감미료를 뿌렸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100p


수업 청강 첫 번째 날이 다가왔다. 별다를 것 없는 화요일이었지만, 드디어 모리 교수님의 수업을 듣는 날이라는 묵직한 설렘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날이었다. 설렘에 대한 반발심이었을까. 수업을 들으러 가지 못할 유혹들이 생겼다. 저녁을 준비하다 채칼에 깊이 파여버린 오른손 엄지 손가락 탓에 오늘은 글쓰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이번 주 토요일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지만 아직 채워지지 않은 여행 계획표도 아른아른거렸다. 오늘은 쉬어갈까. 대학교 때 버릇 남 못준다고 하던가. 여전히 출석에는 불량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책상 앞에 앉았다. 나와의 약속이었고, 독자들과의 약속이었고, 무엇보다 모리와의 약속이었다. 올해가 넘어가기 전 끝내야 하는 프로젝트. 모리의 수업을 통해 죽음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배우기. 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아른아른 거리는 여행 일정표는 던져두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11만 km를 날아가고 30년을 거슬러 올라가 모리와 미치가 있는 매사추세츠 웨스트뉴턴 모리의 집 방안 한편에 자리했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세상'이었다. 오늘의 수업은 미치가 모리의 방에서 발견한 신문더미에서 시작했다.


미치가 물었다. "계속 뉴스를 볼 마음이 있으세요?" 모리가 답했다.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되나? 내가 죽어 가는 사람이라서 세상일에 관심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는군. 어쩌면 자네 생각이 옳을 거야. 신경 쓰지 말아야겠지. 결국에 나는 모든 것이 어떻게 될지 끝까지 보지 못할 테니까."


모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뉴스를 보며 감정을 소비하기엔 모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자신과 아무련 연관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쓰기에는 모리에게 남아있는 체력도, 시간도 모두 여력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리는 보스니아인들의 거리를 달려가다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을 보며 마음 아파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미치는 이런 모리의 모습을 보며 물음표를 던진다.

'나도 삶이 끝나 갈 때는 이렇게 될까? 죽음이 커다란 파장을 만들어 마침내 타인끼리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리도록 만들 수 있을까?'


나도 미치의 물음표 옆에 물음표 하나를 던졌다.

'루게릭병에 걸려 몸조차도 자유로이 가누지 못하며 생명이 꺼져가는 이 시점에, 타인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을까? 어떻게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타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모리는 그 물음표들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이 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을 말해 줄까?
사랑을 나눠 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

사랑을 받아들이게.
우리 모두는 '나는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지.
또 사랑을 받아들이면 너무 약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해.

첫 번째 화요일, 모리의 가르침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라.'였다.




수업을 마치고, 책장을 넘기며 수업 내용을 곱씹어봤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적어둔 메모가 눈에 띄었다.

사랑은 아무런 가림막 없이 주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주는 사랑을 아무런 가림막 없이 받는 것.


이 메모와 모리가 말한 "우리 모두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하지."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땐, 사람들이 주는 다정함과 호의를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으며 타인이 주는 다정함과 호의의 온기를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젯밤, 남자친구와 맞춘 커플링을 잃어버린 탓에 사과를 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더 소중하게 그리고 조심히 다루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런데 핸드폰 스피커 넘어 들려오는 남자친구의 기분 좋은 목소리에 울음이 터져버렸다. 커플링을 잃어버린 미안함과 속상함에 어린아이처럼 앙앙 울어버렸다. 한껏 심각해진 남자친구는 반주를 걸친 상태인데도 망설임 없이 대리운전을 불러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했다. 그 말이 울음이 더 크게 터져버렸다. 반지까지 잃어버린 여자친군데 뭐가 이쁘다고 대리운전까지 불러오냐고. 자격 없는 여자친구인 것이 미안해 남자친구가 집에 오는 동안 퐁퐁 눈물이 솟았다. 남자친구가 집에 도착해서도 울음이 쉬이 그치지 않았다. 내가 뭐가 이쁘다고 이렇게까지 해줘.


요즘 동장님과 퇴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회식 때 출퇴근 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가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한 번 가는 데 1시간 가까이 걸린다는 것과 동장님 집과 가까운 곳에 산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자주 퇴근길에 태워다 주셨다. 퇴근을 하려고 동장님께 인사드리러 가면 '오분만 기다려봐! 나랑 같이 가자!'하고 후다닥 짐정리를 하곤 차에 태워 주셨다. 최근에는 퇴근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장님께 전화가 왔다.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났는데 혹시 버스 기다리고 있으면 그리로 갈 테니까 같이 가자고. 이번 부서에서 처음 뵙는 분이기도 했고, 민원대 업무를 보는 나는 동장님과 접점이 그리 없는데도 알뜰살뜰 챙겨주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장님의 호의의 까닭을 몰랐다. '나한테 왜?' 동장님의 이런 호의들이 감사했지만, 기브 앤 테이크의 '테이크'만 하고 있는 듯한 부채감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의 다정함이 '테이크'로 다가왔다. 까닭이 그리고 자격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것. 까닭이 없다면 테이크를 한 만큼 기브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깔려있었다. 오가는 정이 아니라 오가는 셈이 있었다.



모리교수님의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라는 가르침을 보며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생각했다. 사랑이 뭘까. 두 글자를 적어두고 한참 고민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이지만, 그 방법에 대해 고민하자 단어가 낯설게 다가왔다. 세 살배기 아이도 알 법한 그 단어를 부러 국어사전에 검색해 보았다.


사랑
1.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
2.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
3. 어떤 대상을 매우 좋아해서 아끼고 즐기는 마음.


단어를 찬찬히 입안에서 굴려봤다. 사랑. 이 두 글자를 한참 곱씹고 있었다. 모리 교수님이 말한 사랑은 두 번째 뜻에 가까워 보였다.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 문득, 복주환 작가님이 <세바시>에 나와 말한 사랑의 어원이 떠올랐다. 思量. 생각할 사에 헤아릴 량. 사랑이라는 단어는 '思量(사량)'에서 파생되었다는 추측이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하여 헤아림'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랑을 나누고 받아들이는 법이 조금은 쉽게 다가왔다. 셈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헤아리는 방법. 역시나 셈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여 헤아려준 마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그러자 모리 교수님의 눈물이 이해됐다. 지구 반대편의 보스니아 사람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며 그들의 처지를 헤아렸기 때문에 그들의 소식을 듣고 모리 교수님은 눈물을 흘렸던 것이겠지.


다정함이 독이 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되는 세상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서 타인이 주는 헤아림도 장부에 달아놓듯 마음에 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타인에게 건넨 헤아림조차도 마음에 지고 있었다. 그러니 관계도 마음도 무거워만 갔다. 그 무거움은 타인에 대한 가림막이 되었고, 그 가림막 안에 나와 타인을 가둬두고 있었다. 그 안은 무거웠고 답답했으며, 외로웠다.




모리 교수님의 두 번째 과제는 하루에 한 개씩, 사랑을 나눠주고 사랑을 받아들인 것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실행 방식은 셈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생각하며 헤아리는 것.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 실행 대상은 소중한 사람일 수도, 일면식 없는 타인일 수도, 그리고 나일 수도 있다. 하루에 한 개씩. 의도적으로 한 행동도 좋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이런 행동이 사랑이었구나 깨닫는 것도 좋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사랑을 나누고 받아들인 것에 대해 기록할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리 해보며 리포트를 한 편 제출하는 것.


숙제가 설레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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