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하는 화요일, 오리엔테이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미치는 우연히 '나이트라인'이라는 토크쇼에서 루게릭병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모리 교수를 보게 된다. 대학생 때 모리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삶에 대한 성찰을 했던 미치는 이 토크쇼 방송을 보고 모리 교수님을 찾아간다. 미치에게 모리는 다시 한번 의미 있는 삶에 대하여 가르침을 준다. 미치는 모리와의 대화를 통해 과거의 자신이 열망했던, 하지만 세상의 방식대로 사느라 놓치고 살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첫 만남 이후, 모리와 미치는 매주 화요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대학생 시절, 미치와 모리가 같이 마주했던 그 화요일에.
'첫 번째 화요일'이라는 부제가 붙는 챕터가 시작되기 전의 이야기 부분이다. 16년 만에 교수님을 찾아간 미치가 모리와 재회를 하고, 미치는 다시 원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그 터전에서 미치는 모리가 던졌던 질문으로 인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곱씹게 된다. 그리고 모리 교수님을 다시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이 결심이 다음 주, 그다음 주, 그다음 주... 계속 이어지게 되고, 14주간의 화요일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마치, 개강하고 나서 첫 수업으로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 같았다. 우리는 왜 이 강의를 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이 강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강의의 방향성과 목적을 잡아주는 오리엔테이션.
우리 문화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네. 우리는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어. 그러니 스스로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것을 굳이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그것보다는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해야 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91p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가르치는 문화, 그리고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기
처음 읽을 때는 책 귀퉁이를 접어놓았고, 두 번째 읽을 때는 밑줄을 주우욱 그어놓은 대목이다. 맞아, 우리 사회는 행복감을 느끼기 어렵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 행복지수라던지, 자살률이라던지 행복과 관련된 통계지수를 보면 행복감이 부족한 사회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부분을 글로 풀어내려고 하니 단어가 턱 막혔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
물질 만능주의, 무한 경쟁주의, 외모지상주의, 타인과의 비교, 만족을 모르는 갈구. 고민을 하면 할수록 더 복잡해져만 갔다. 현대사회의 어떤 문화 때문에, 우리나라의 어떤 문화 때문에, 그리고 내 안의 어떤 문화 때문에 나는 점점 행복감에 둔감해지고 있을까. 어떤 문화가 내 안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 걸까.
저 문단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으니, 어느새 '문화'라는 단어가 '기준'으로 보였다. 스스로 제대로 된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걸 굳이 따르려고 애쓰지 말라고. 사회가,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기준을 창조하고 지켜나가라고. 자신만의 기준을 지켜나갈 때 각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그럼 나만의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지켜온 나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걸 잘 지켜나가고 있는 걸까.
모리와 화요일을 함께하고 이유였다. 나의 가치관에 맞는 문화를 만들기. 죽음을 내다보며 유한한 삶에서 나는 어떤 문화를 지켜나갈 것인가.
모리가 내주는 첫 번째 과제였다. 어떤 기준이 나를 행복감과 멀어지게 만드는지. 그리고 진정 행복감을 느끼게 만드는 기준은 무엇인지. 내 기준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모리와 열네 번의 수업을 듣고 나서의 이 생각은 어떻게 자라났는지 비교해 보기.
매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가 떠올랐다. 반면에 나는 무의미한 것들에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영화배우나 슈퍼 모델, 다이애나 비, 마돈나, 존 F. 케네디 주니어에 관한 루머들에 매달려 지냈다. 교수님에게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슬프면서도 그가 보내는 질 높은 시간이 묘하게 부러웠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의미 없는 짓들을 할까?' -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90p
모리 교수님은 오랜만에 만난 미치에게 아래 네 가지 질문을 했다.
"마음을 나눌 사랑을 찾았나?"
"지역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나?"
"마음은 평화로운가?"
"최대한 인간답게 살려고 애쓰고 있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쉬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있었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는커녕, 그들의 카톡창 옆에 빨간불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느라 바빠 지역 사회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에 떠도는 온갖 생각 때문에 두통은 가실 기미가 없었다. 가치 있는 '무언가'가 되기 위해 애쓸 뿐, 내 본질인 인간답게 사는 것에 무심했다.
하루 종일 무언가 바쁘게 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끝이 보이지 않아 투두리스트는 언제나 빼곡했다.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잊어버린 무언가가 생각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쫓아오는 무언가도 없는데,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도, 자기 전 침대에 누우면 어딘가 한구석이 공허했다.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저 바쁘고 정신없고 피로할 뿐이었다.
내 삶을 빼곡히 채우는 것들이 내게 정말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면, 에너지를 쏟아낸 만큼 성취감이든, 뿌듯함이든, 만족감이든 무엇인가는 차올라야 했다. 하지만 끝없이 고갈되기만 했다. 고갈되니 채우려 하고, 채우려 하니 더 고갈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조차도 그 절반은 자고 있는 것과 같지. 엉뚱한 것을 좇고 있기 때문이야.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봉사하고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93p
여기까지 적고 나자 어느샌가 마음 한구석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과연, 열네 번의 수업을 듣고 나면 나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첫 번째 수업 '세상'에서 나는 어떤 깨달음을 얻을까. 모리의 첫 번째 과제, 나의 기준 찾기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