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 2

추억

by 윤슬yunseul


친구와 부모님 안부를 묻다 나온 이야기들. 어머님 췌장에 생긴 물혹, 아버지 뇌에 생긴 종양 얘기를 하다 보니 그 끝에 뇌하수체가 나왔다. 뇌하수체, 평소에 쓸 일이 많지 않은 그 네 글자를 듣는 순간 무언가 가슴에 훅 들어와 가득 찼다.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칠판, 까랑까랑했던 생물 선생님의 목소리, 습한 여름의 냄새.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어떤 것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다. 하늘은 파랗고 운동장은 몹시 싱그러웠으며 창을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잔뜩 울리는 매미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세상 그 무엇을 해도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던 그곳. 그리고 나.

공부하며 외울 것 앞에서 가슴 벅차올랐고, 혼자 개념 정리를 하며 행복해하던 날. 모두가 하교한 교실, 창가에 비스듬히 들어온 주황빛 햇살을 벗 삼아 물리공부를 하곤 했다. 불안도 두려움도 외로움도 없이 그렇게 즐거웠던 그날의 나.

태어난 순간부터 그 순간까지의 시간, 그만큼을 더 산 지금. 아침에 눈뜨는 게 벅차고 퇴근길 버스에 매달려 한없이 쳐지는 하루를 산다. 드라마 하나 보는 것조차 즐겁지 않은 현재. 창가에 비친 얼굴은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벅차올랐던 아이는 기억 속 어딘가, 알 수 없는 곳, 그 영원의 공간에 잠들어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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