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 3

울음

by 윤슬yunseul

어릴 땐 억울하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불러오는 외로움과 서러움. 간절한 외침이 타인에게 더 이상 의미 없음에 눈물로 진실을 대변했다. 학업에 너무 힘들던 어느 날, 열이 39도까지 올라갔음에도 쉼을 허락받지 못한 나는 울며 공부를 했다.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가며 버텼다. 왜 그렇게 까지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연한 것을 해야 했기에 그 눈물 역시 마땅한 것이었다.


교복을 벗고 사회의 옷을 입은 나는 열심히 또 걸었다. 그러다 최선이 한계를 만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만큼 무너졌을 때. 쉬고 싶어져 버린 나는 게으름이라는 정의로, 그것도 못 버티는 나약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이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첫째로는 울고 싶어도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눈물은 나약함을 증명하는 꼴이니까. 둘째는 울어야 할 상황이 딱히 벌어지지 않았다. 괜찮은 것들이 늘어나는 것은 곳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함은 늘어가고 힘겨웠다. 버티는 것 왜에는 다른 방안이 떠오르지 않은 체념일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SNS에 내가 뽑은 인형을 올렸다. 아는 언니의 연락이 곧 도착했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다 문득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었다. 20개쯤 불만을 토하다 보니 어느새 눈가에는 물이 고였다.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으나, 마음은 시원해졌다. 마치 미처 내리지 못한 변기의 오물이 마저 다 씻겨 내려간 듯한 후련함이었다.

우는 것을 잊어버린 채, 홀로 세상의 바람을 다 맞고 있었던 작은 생명체. 그 얼어붙은 존재에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그 느낌은 속삭였을 것이다. "울어도 괜찮아. 힘들었지? 충분히 머물다 가렴. 난 여기 있으니."

울음이란 억울함과 노력, 그리고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세상에 외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들어줄 것이란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세상 떠나가라 울었던 것처럼.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