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이태리

낭만을 찾아서

by 파롤


<로마의 휴일>, <냉정과 열정 사이>, <비포 선라이즈>. 이 세 영화의 공통점은 내가 4월의 어느날 훌쩍, 이태리로 여행을 떠난 이유였다. 그렇다. 낭만을 찾아서, 나는 여행을 떠났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태리에서 <김종욱 찾기>를 찍는 거냐고.


걷는 것, 아름다운 것, 고전적인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 갖춘 이 나라에서 낭만까지 꿈꾼다는 것은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외면적 목표’였을까, 숨겨진 ‘내면적 목표’까지 함의하고 있었을까.


#로마의 휴일


로마는 언젠가 내가 존경했던 상사가 휴가를 갔던 곳이었다. 열심히 일을 하다가 번아웃이 왔던 어느날, 일주일 동안 로마에 다녀오겠다며 떠나던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멋있어 보이던지. 나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꼭 로마에 가고 싶었다.


몇년 후 어느날, 내게도 그런 순간이 왔다. 가기 전 영화 <로마의 휴일>를 봤기에, ‘낭만을 찾아서’라는 웃음기를 살짝 뿌린 이유를 곁들였는데 이는 내 인생의 화법과도 비슷하다. 지금보다 더 좋은 어떤 것,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그 무언가를 향한 호기심이었다.


로마에서 내가 만난 낭만은 자유였다. 회사의 강제성이 얼마나 정신적 멀미를 일으켰는가가 떠올랐을 때,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이 그 모든 흐린 기억들을 덮어주었다. 오롯이 내가 계획해서 온 여행이 주는 감동이란, 마치 이랬다. 하늘은 흐린데 딱 이곳, 트레비 분수만큼은 눈부시게 빛났던 그 순간처럼, 눈부시게 자유로웠다.


#피렌체의 낭만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무대, 피렌체는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곳이었다. 피렌체 카드를 사서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 섭렵할 생각을 했을 정도로.


기대가 무너진 것은 로마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온 이후의 피로감 때문이었다. 우피치 미술관부터 시작해서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가 노을을 봐야 하는데 몸져 앓아 누운 나는 창밖으로 느껴지는 노을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수밖엔 없었다. 그렇게 여행의 행로를 바꿨다.


나는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대신 피렌체의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오모 성당과 조토의 종탑에서 바라본 다홍빛 도시의 풍경, 미로 같은 골목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발견한 명소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별자리 같은 야경.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오랜 사랑이 담긴 다리를 몇번이나 오가고 바라보며 느낀 낭만이 있었다.


하염없이 걷다 발이 아프면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고, 흥이 필요하면 맥주를 마시고 조토의 종탑에 오르길 기다리는 긴 줄 앞에선 앞에 있는 사람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기도 하고. 막연히 걷다 길을 잃어 어디에 있더라도, 여기에 있어서 좋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그냥, 이런 게 행복한 사람이었나보다.


#베네치아의 비포선셋


“미쳤다!”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나는 순간까지 내내, 들었던 생각. 베네치아는 미치도록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태리 여행의 끝자락에서 나는 리도섬으로 갔다.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아드리아해와 베네치아 본섬을 향해있는 석호의 둘레를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리던 그때, 라일락 향기가 번져 있었고 노을이 내려왔다. 어젯밤 곤돌라에서 바라본 황금빛 야경보다, 산마르코 광장에서 만난 니체의 커피향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나 이거 보려고 태어났나보다.’


지난 한달 동안 바라봤던 아름다운 이태리의 모습들과 한국에서 보낸 직장생활의 모습들이 오버랩되었다. 참, 잘 견뎌내고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온 내가 새삼 대견스러웠다. 사랑은 그렇게 내 안에서 라일락 향기처럼 피어올랐다.


그렇다. 이 여행의 내면적 목표는 위로였다. 번아웃으로 지칠대로 지쳐있던 나를 아름다운 풍경으로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 나에게 선물하는 이태리표 낭만이었다.


로마의 ‘휴일’, 냉정과 열정 ‘사이’, 비포 ‘선라이즈’를 만나기 위해 향했던 이곳에서 나는 문득,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하나 깨달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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