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살구빛 여름날의 기록]을 완결편으로 다시 쓴 에세이입니다. 한 계절을 보내주는 마음으로, 한 사람과 함께한 시간과 그 끝을 기록했습니다.
살구빛은 여름 노을을 닮았다. 여름 하늘, 뜨겁고 진한 공기가 내뿜는 예쁜 숨결로 하늘을 채색하는 이 빛깔을 좋아한다. 지난 여름, 내가 다닌 헬스장에는 이 빛깔로 가득 차 있었다.
#살구소주 같은 남자
6월 2일, 월요일. 3개월 동안 10키로 감량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헬스장에 입성했다. 데스크에서 “저 어제예약했는데요..” 라고 하자, 헬스장에서 한 남성분이 뛰어나왔다. 갑작스레 등장한 이 PT선생님은 복숭아 솜털처럼 뽀송하고 깐 달걀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공존하는.. 아름다운 피부를 가진 미남이었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중학생 남자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를 닮았다. 나는 상담 내용보다는 얼굴 감상에 몰두해 있다가 어느덧 결제를 위해 카드를 내밀고 있었다. 그때 알아차려야 했다.
‘아! 이 사람은, 살구소주 같구나!’
이틀 후, 첫 수업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회의와 야근으로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8시 PT 시간에 간신히 도착한 나는 허겁지겁 옷을 갈아 입고 PT 선생님을 마주했다. 그리고 1시간 동안 해병대 체험을 하듯, 입가에 거품을 물고 쏟아내는 PT 이론과 "집중!! 집중!!" 혼내는 말들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소주보다 쓰고 숙취보다 더한 고통의 PT 시간이었다.
원래 PT 시간은 50분인데 .. "선생님.. 50분 지나지 않았나요?"라고 물어봐도 "그랬을 걸요?"라고 답하고는 끝내주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이 상담을 하는데 자기는 원래 혼내면서 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하길래 나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싶어서 마음의 소리가 툭 튀어 나왔다.
“그럼 저 안하려고요.”
그 말을 내뱉는 동시에 해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감정적으로 결정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대신 조건을 내걸었다.
“PT는 50분만 해주세요. 전 회사 일 끝나고 지친 상태로 오는 거라 집중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 그렇게 혼내면서 가르치진 말아주세요.”
이 말을 하고 서로 데면데면한 얼굴로 헤어졌다. 주말에 부산 여행을 하면서도 계속 그 PT가 지옥처럼 느껴져서 해지를 하고 싶었지만 세 번은 참자는 결심으로 일주일 후 두번째 방문을 했다.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있지도 않는 애교를 몽땅 끌어모아 웃으며 선생님께 말을 붙였다.
“선생님, 저 목표를 바꿨어요. 3개월 동안 10키로 빼는 것 대신 5키로만 빼고 즐겁게 운동하고 싶어요.”
그러자 선생님이 피식 웃었다. 그러나 사람이 한 순간에 바뀔 순 없는 노릇. 난 대화를 시도했다.
“제가 MBTI 맞춰볼까요?”
“네, 맞춰보세요.”
“ENTJ”
“아니에요.”
“ESTJ”
“맞아요. 저 극 T에요. 검사하면 T가 70% 정도 나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알게 되었다. 아, 이 선생님은 말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구나. 이전엔 입에 거품 물고 PT 이론을 설명하더니 이젠 입에 거품은 사라졌으나 자기 얘기로 가득했다. 운동 쉬어가는 타임에 말없이 같이 쉬어가는 PT 선생님들도 있다던데.. 이 선생님은 어떤 주제로도 멈춤이 없다.
#무릎보다 뱃살이 문제
그렇게 1개월을 보냈다. 갑자기 무릎 통증이 심해졌다. 병원에 가보니 운동을 심하게 해서 무릎에 무리가 왔다고, 최소 3주는 쉬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휴식기를 가지려 했으나 선생님은 콧방귀를 꼈다. 그 정도 걷는 거 보면 괜찮아보이니까 나오라고.
난 내 고통을 걱정해주기는커녕 비아냥 거리는 말투와 자기중심적으로 내 결정을 유도하는 PT선생님과 더이상 헬스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해지 신청을 했다. 그러자 PT 등록 외에 헬스장 이용권은 서비스로 준 것이니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해서 월요일에 직접 뵙고 해지를 진행하기로 했다.
근데.. 그 월요일이 문제였다. 무릎 통증으로 목요일부터 주말 내내 집에서 먹고자고를 반복하다보니 급기야 제일 큰 바지 자크가 안 잠길 정도가 된 것이다. 간신히 회사에 입고 갔는데 내내 자크가 말썽이었다. 결국 PT 선생님께 카톡을 보냈다.
“선생님, 무릎보다 뱃살이 더 문제입니다. 해지 신청은 취소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퇴근 후 선생님과 조우했을 때, PT 선생님은 말했다.
“다이어트 안 하면 안 돼요?”
“이 몸으론 못살겠어요!”
선생님이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제일 큰 바지 자크가 안 잠길 정도에요. 곧 워크샵에서 사업부 대표로 발표도 하는데.. 발표 때 입을 옷도 못 사고 있어요!”
절규에 가까운 말이었다. 선생님은 가까스로 위로의 말을 찾은 듯 눈썹이 팔자 모양이 되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까지.. 부어보이진 않아요.”
나는 무릎 통증약을 먹으면서도 뱃살을 빼기 위해 헬스장으로 향했다. (먹는 행복을 포기 못해 밥은 평소처럼 잘 챙겨먹으면서도) 헬스에 전념하기 위해 옷도 샀다. 올블랙. 살이 덜 쪄 보이는 패션. 그렇게 입고 간 날, 선생님이 대뜸 물었다.
“남자친구 있어요?”
나는 당황해서 말을 흐렸다.
“갑자기 사생활 질문은..왜..”
“아무한테나 이런 질문 하진 않죠.”
선생님은 장난기 가득한 소년처럼 내 주변을 빙빙 돌며 끈질기게 답을 기다렸다.
“지금은.. 없어요.”
그러자 이어지는 질문과 이야기들.
“연하 많이 만나봤어요?”
“연하랑 잘 맞아요?”
“20대도 남자로 느껴져요?”
“윤슬님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요. 3년 전에.. 첫눈에 반한 여성분이 있었는데요. 박보영을 닮았어요. 저 강아지상 안 좋아하는데.. 그 분은 너무 예뻤어요. 강아지상이고 고양이상이고 다 떠나서 박보영처럼 예뻤어요.”
PT쌤은 추억에 잠긴듯한 아련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며칠 뒤에 우리 집 아파트에서 우연히 만났어요. 속으로 ‘아! 운명이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그 분이 저에게 나이를 속였다고 고백하더라고요. 처음엔 4살 차이라고 했는데 그 이상이었어요. 그리고 전 ‘네.. 알겠습니다.’하고 헤어졌어요. 그때의 전.. 너무 어렸고 그 분은 성숙한 사회인 같았거든요. 우러러 봐야 할 것 같았어요. 지금이라면 안 그랬을텐데..”
아, 선생님의 오늘 대화 주제는 연애 얘기구나! 그래, 그 나이 남성이면 연애 얘기에 한참 관심 가질 때지. 근데 내 생각이 난다면서 박보영 닮은 연상녀 얘긴 왜 하는 거야? 난 그 근처도 안 닮았는데. 이 선생님은 현재 여자친구가 있고 자랑도 많이 해놓고선, 오늘 나한테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면서도 말은 단호하게 나왔다.
“전 위아래로 4살 차이까지만 만날 거에요. 그래야 대화가 잘 통하거든요.”
선생님은 너무 단호한 내 말에 당황한 듯 크게 웃었다. 그리고도 질문은 계속 되었다. 내 집, 고향, 가족 구성, 하루 일과, 취미생활, 주말 일정, 독서모임, 모임의 구성원들의 성비, 나이, 회사 사람들, 회사 남자들에 대해서. 와...!!! 나는 지금 헬스장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취한다.. 마치 살구 소주 3병을 마신 듯한 취기가 느껴졌다.
어느 날이었다. 운동 쉬는 시간에 통창 너머로 펼쳐진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것 같아요.”
“그쵸? 운동하다 보니 적응 되죠?”
“아뇨. 이 몸으론 못 살 것 같았는데.. 이 몸으로도 살겠더라고요.”
나는 빙긋 웃었다. PT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나를 바라보더니 더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통창 밖으로 여름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살구소주의 숙취
난 회사 워크샵의 발표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 말인즉슨, 일이 많아졌다는 뜻. 관심이 집중되며 일도 집중되었고 헬스장을 가는 발걸음은 무거워졌다.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PT 선생님이 시킨 대로 에너지 음료를 마시고 갔는데도 얼굴이 발갛에 달아오를 정도로 힘들었고 운동 잠깐 쉬는 시간에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였다. 선생님은 다그쳤다.
“윤슬님 더위 먹었나봐요!”
“윤슬님 졸지 마세요!”
급기야, 뇌정지 상태가 왔다. 운동기구에 셋팅을 다 해놓고 선생님이 “자, 하나!” 라고 말하자 나는 “응?” 하면서 선생님을 갸우뚱 하면서 쳐다봤다. 뭘 어쩌라는 거지? 하는 순수한 물음표였으나 곧바로 알아차렸다. 이 전에 배웠던 운동기구였고 난 지금 다리를 들어올리면 되는 거였다. 맙소사! 나 지금 상태 왜이러지?
나는 선생님께 주 1 회만 PT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장 등록은 할 건데 평일에는 너무 힘들어서 집중하기 어려우니 선생님이 시간 되시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은 버럭 화를 냈다.
“주 1회면! 윤슬님 저랑 연말까지 묶여있어야해요!!”
순간, 너무 놀랐다. 나랑 같이 하는 게 그렇게 싫은 건가? PT 선생님이 연말까지 다니겠다고 해서 나도 그 일정과 컨디션을 고려해서 연장 등록을 하겠다고 말한 건데.. 뜻밖이었다.
“그럼 저 원래 9월 초에 계약 끝나는데 그때까지만 할게요.”
라고 하자, 선생님은 당황한 듯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주 1회로 연말까지 해보죠. 대신 내가 토요일에 시간내줄테니까 주말에 다른 약속 하나도 잡지 마요!”
이후 상담 시간에 연장 얘기가 나오자 선생님은 오늘 연장등록을 해주셔야 생계에 도움이 된다며 날 압박했다. 분명히 아까 PT 시간에는 자기가 ‘보통 회사에 입사한 친구들보다 3배는 많이 번다,’며 자랑을 하더니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은 뭐지? 싶었다.
난 이미 10회가 남아 있기 때문에 10회만 추가 등록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최소 15회를 해야한다고 하더니 내가 10회를 고집하자 그럼 회당 비용이 1만원 올라간다며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순간! 난 지갑을 닫고 말했다.
“그럼 안 할게요! 좀 더 생각해볼게요.”
다시 어색한 공기가 흘렀고 집에 가는 길에야 수업 시간 도중에 했던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저 영업 진짜 잘하는 것 같아요!”
아, 모든 게 영업이었구나. 힘든 회사 생활과 운동 시간을 환기시켜준, PT 선생님의 달달한 관심과 대화들은 그야말로 영업이었던 거구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자 진심이 나오고 화를 내고 압박하는 모습을 보며 현실을 깨달았다.
‘참, 아름답고 달달하고, 뒷맛이 씁쓸하고 숙취가 심한 사람이네. 살구 소주 같네.’
난 다음날 선생님께 휴회 신청을 알리는 카톡을 했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잠시 쉬어가고 싶다고.
PT 쉬는 기간 동안 개인 운동을 열심히 했고 내 컨디션과 시간에 맞게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좋았다. 2개월 동안 트레이닝을 받아서 기구도 제법 사용할 줄 알고. 그렇게 안심이 되자 선생님께 카톡을 드렸다. 개인운동이 적합하여 연장 등록은 안 할 생각이며 주 2회로 남은 10회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창 밖으로, 여름 노을이 지고 있었다.
#살구빛 웃음
2주 뒤, 우린 다시 만났다. 나는 이 PT쌤을 만나는 게 지옥행처럼 느껴졌지만, 내 귀한 시간과 돈을 그런 감정으로 채우기는 싫었다. 운동을 지속하기로 결정한 이상, 마음 먹기 달렸다! 난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선생님, 저 살 빠진 것 같지 않아요? 진짜로 5키로 정도 빠졌어요.”
“살 빠졌어요. 근데 방심하면 안 돼요.”
“저 살 빠지니까 볼살만 쏙 빠져서 나이 들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맛있는 것도 잘 먹으려고요.”
내가 또 실없이 웃자 선생님은 내려놓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오늘은 운동 끝나고 뭐 드실 거예요?”
“즉석떡볶이요. 친구랑 맛집에 가기로 했어요.”
“지금까지 PT 가르치면서 운동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간다는 회원님은 처음 봤어요.”
PT쌤은 돌연변이를 바라보는 듯 했고 나는 “먹는 건 정말 행복해요”라고 맑고 광기어린 눈빛으로 답했다.
이렇듯 더이상 서로 ‘연장 계약’이라는 기대와 부담이 없는 상태가 되자 더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은 트레이너로 사는 삶의 불안정성에 대해 끊임없이 토로했다. 현재에 대한 불만족과 불안함이 그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내가 고민 끝에 입을 떼었다.
“제가 회사에서 힘든 이야기를 하면 우리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가 있어요.”
‘윤슬아.. 엄마는 회사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네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 그래서 어떤 말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어. 근데 내가 드라마를 보면 우리 딸처럼 열심히 사는 주인공은 고난을 겪어도 다 잘 되고 못되게 구는 사람들은 꼭 벌을 받더라. 그러니까 우리 딸.. 어떤 상황에서든 나빠지지 마. 그리고 널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꼭 벌 받을 거야.’
전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드라마속 주인공이 된 것 같고 절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벌 받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어서 마음이 좀 편안해져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과 같은 직업이 아니어서, 선생님이 지금 얼마나 힘든 지 다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선생님이 주인공이라는 것, 선생님을 괴롭히는 사람들은 꼭 벌 받을 거라고 믿어요.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걸 해주지 마요. 그들은 선생님이 힘들기를 바랄 거예요.”
PT쌤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마음을 가라앉힐 때까지, 우린 처음으로 고요하게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 때, 어떤 회원이 선생님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물을 마시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켜주었고 두 사람은 다정히 안부인사를 건넸다. 내가 돌아오자 선생님은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항상..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기적적인 운동량을 선보이며 선생님의 박수를 받았다.
“오늘 좀 감동했어요!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저 약한 척 안 한다니까요!”
나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내 작은 알통을 쓰담쓰담 해주었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수업.
선생님은 마지막이니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운동 기구를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이것 찔끔, 저것 찔끔, 해보다가 급속히, 공손하게 손을 모아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를 했다. 선생님의 실소는 그칠 줄 몰랐다. “아, 이것두요?”, “이건 좀 할 줄 알았는데” 나는 그저 영혼 없는 미소만 지었다. ‘선생님.. 제가 지금 심신이 미약한 상태이옵니다..’ 속으로만 답할 뿐. 눈빛은 이미 소실점을 잃었다.
그때,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저 중국어 과외 받기로 했어요. 회원님 중에 중국어 선생님이 있는데 제가 힘든 얘기 하니까 중국인 회원분들을 대상으로 PT를 해보라고 알려주더라고요. 공부를 얼마만에 해보는지..”
머쓱하면서도 뿌듯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내가 괜히 벅차 올라서 격려를 하던 찰라 벽시계가 눈 앞에 스쳤다. 5분. 우리의 남은 PT 시간이었다.
“선생님, 저는 가장 힘들었을 때 사표 내고 이탈리아로 떠났어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아름다운 풍경에 반했죠. 아름다움이 힐링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러니까.. 선생님. 힘들 땐 거울을 봐요. 선생님은 멀리 갈 필요도 없어요. 그러니까 거울을 자주 보세요.”
선생님이 빵 터져서 나를 바라봤다.
“윤슬님은 진짜 사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린 그렇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서로에게 정중한 예의를 갖춰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순간,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잘했다. 그냥 다.. 잘했다.’
통창 밖으로 우리를 비추던 살구빛 여름노을이 마지막 그림자를 남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