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앎에서 시작된다. 총체적 원인을 바꾸면 미래는 바뀐다. 과거를 앎으로써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반복되는 생의 주제를 찾아내어 교정하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이 미래를 바꾸는 방법이다. 정신결정론의 메시지는 체념과 순응이 아니라 변화와 도전이다."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주제'가 있다. 그 변주의 무한 반복을 이제는 멈춰야 하지 않겠는가?
— 최병건,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중
이 문장은 내가 프로이트를, 그리고 이 책을 사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사실 나는 본래 아들러 심리학을 선호하던 사람이었다. 『미움받을 용기』 시리즈를 탐독하고 지인들에게 선물까지 할 정도로 열렬한 독자였다. 스승 프로이트에 대한 열등감 혹은 반대 논리를 발판 삼아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아들러의 심리학은, 어쩌면 현대인에게 가장 '듣기 편한' 위로의 언어였는지도 모른다.
"과거가 어쨌든 지금부터 마음만 고쳐먹으면 돼", "과거 또한 지금의 내가 다시 써 내려갈 수 있어."
아들러식의 목적론은 지금 당장 변화할 수 있다는 강력한 동기와 미래지향적인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늘 개운치 않았다. 모든 시작을 '긍정'에 두고 과거와 미래를 장밋빛으로 채색하라는 메시지가, 정작 긍정적이지 못한 상태의 내게는 공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마치 '향수' 같다. 뿌리는 순간 기분 좋은 향취가 온몸을 감싸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코올처럼 증발해 버린다. 혹은 환자에게 투여하는 통증 완화제나 마취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당장 괜찮으니 어제도, 내일도 괜찮을 거야"라고 토닥이는 다정한 손길 같지만, 근본적인 통증은 여전했다.
반면, 이 책을 통해 만난 프로이트는 '종합병원'에 가는 기분이었다. 의사의 설명을 듣듯 차근차근 인간의 심리 기저를 파고든다. 마냥 행복한 줄로만 알았던 유년 시절의 가려진 고통을 상기시키고, 내가 왜 아픈지, 어디가 어떻게 손상되었는지 냉철하게 진단한다. 그리고 나지막이 일침을 가한다. "이것이 당신의 실체이니, 이제는 직면하고 고쳐야 한다"라고.
과거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인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라는 메시지는, 갈증을 단번에 씻어주는 '냉수' 한 사발처럼 시원했다.
진실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포장되지 않는다. 냉정하고 차분하게 내 안으로 파고들어 세포 하나하나를 이해하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의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몸소 통과하는 과정과도 닮아 보였다.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피눈물 나는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공부하며 성숙하게 나아가려는 '의지의 한국인' 같은 자아를 꿈꾸게 했다.
"어제는 아팠지. 그럴만한 이유가 이렇게나 많았으니까. 이제 알았으니 그 굴레에서 벗어나 보자."
책은 <메멘토>, <이터널 선샤인>,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대중적인 영화의 장면들을 빌려와 어려운 심리학 용어를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작가의 기지 덕분에 프로이트라는 인물은 한층 더 풍미 있게 다가왔다.
책을 덮으며 자문해 본다. 나라는 존재는 어떤 영화로 그려질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제야 비로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