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안에서 — 나는 왜 그를 사랑하는가

by 파롤


"나를 사랑해다오! 무슨 이유 때문에? 나에게는 흔히 써먹는 지질하고 빈약한 이유 밖에 없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책 |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왜 나는 그를 사랑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감정이 간절하고도 강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해다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라고 온몸으로 갈구하는 그 마음은, 내 영혼을 속박에 가까울 정도로 에워싼다.


나는 그 감옥 안에서 달콤한 안락함과 갈구하는 자유 사이를 유영한다. 막상 자유로워지면 이미 그에게 길들여진 나를 발견하고 당황하면서. 위험한 사랑일수록 자유와 자극의 농도는 더 짙어진다. 마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사비나처럼, 프란츠처럼, 토마스처럼, 테레자처럼.


우리는 운명의 밧줄에 묶인 사람들처럼 서로를 탐구한다. 이미 사랑에 빠졌기에, 왜 묶였는지 그 이유를 찾듯 상대의 매력을 탐닉한다. 이성의 언어가 해석을 곤란해하는 감성의 언어는 온갖 모험을 즐기다 결국 이성에게 구조요청을 보낸다.


‘나를 구원해다오! 무슨 이유 때문에? 서로의 갈망이 식어버렸기 때문에.’


사랑의 이유는 재판받을 수 없다. 사랑은 철저히 개인의 영역이며, 타인의 시선이 침범할 자격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몰입할 수 있고 빠져나올 수 있다. 때로는 윤리마저도 사뿐히 즈려 밟아버리는 게 사랑이 갖고 있는 사악한 표정 중 하나다.


사랑은 왜 이토록 삶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짜릿한 감정으로 이끄는가. 술을 마신 기분을 분석하기보다, 그 취기를 즐기는 편이 낫듯, 나에겐 사랑도 그랬다. 그저 흠뻑 취해있다가 이성이 깨울 때, 눈을 비벼 뜨곤 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알랭드 보통처럼 다시 지난 사랑을 되돌아 생각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끝난 관계는 다시 기억하기보다는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지니까.


감정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구하러 이성이 찾아온다. 표정은 언제나처럼 쿨하다. 그 시원함에 한숨을 돌리며 다음 사랑을 상상하는 귀여운 내 모습이 있다.


새로운 그는 어쩐 일인지 첫눈에 내게 반한다. 자신과 다른 나의 모습을 추앙하는 눈빛. 어쩐지 그 눈빛은 프란츠가 사비나를 바라보던 순간과 닮아 있다. 결핍을 채워준다는 이유로, '사랑의 마르크스주의'는 나를 단숨에 여신으로 격상시킨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나는 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내 시선이 머무는 동안 그는 얼마나 일관적일까. 갈등의 순간에 기꺼이 내 편이 되어줄까. 내가 용기 내어 던진 진실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꾸밈없는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곁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입을 모아 고양이상이라고 칭하는 나에게 “제가 강아지상을 좋아해서... 강아지상 같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들은 끝이 없다. 그래서 결국 나는 생각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사랑에 빠지기로 한다.


어차피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는 이성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 비밀의 문 안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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