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모임엔 왜 안 왔어~?”
7년 전, 첫 트레바리의 3회차 모임에서 모두에게 다정한 그가 내게도 말을 건넨다. “아.. 책을 다 못 읽어서요. 독후감을 쓸 수가 없었어요.”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답하자 그가 나긋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한다. “목차를 봐 봐. 이것만 읽어도 400자는 채울 수 있잖아. 책은 그 다음에 읽어도 되고. 그러니까 다음엔 꼭 와~.” 아! 나는 깨달음을 얻은 듯한 눈빛으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수개월 후, 그는 우리 단톡방에 글을 하나 올렸다. 자기가 어떤 모임을 기획했는데 시간 있으면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갑자기 그의 꿀팁이 떠올라 보답하는 마음으로 모임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그의 지인이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S대 법대를 나와 대기업 기획팀을 다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본 것은 사람들의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좋은 와인을 계속 대접하는,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이후에도 나는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녀 덕분이다. 그와 그녀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트레바리에서 우연찮게 재회했다고 한다. 그녀는 나와 함께 그를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 셋의 공통점은 반골기질이었다. ‘당신이 어떤 위치에 있든 나한테 무례하게 대하는 건 참지 않아!’ 그가 대기업을 나온 것도, 그녀와 내가 이직을 한 이유도 같았다. 재밌는 건, 그들의 상사들이 내 상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 인간이 거길 갔어?’, ‘그 언니가 거기 있어?’ 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인연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렸고, 그날도 우리 셋은 함께 술을 마셨다. 코시국이었다. 2차로 더 이상 갈곳이 없어진 우리에게 그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가는 길에 나지막히 “난 꿈을 하나 이뤘어. 마당에서 리트리버가 뛰어다니는 그런 집을 샀거든. 이제 리트리버만 있으면 될 텐데.”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우리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강남 한복판의 대저택이었다.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거대한 세계속으로 나와 그녀는 걸어 들어갔다.
비현실적인 그의 공간에서 맥주를 마시던 내가 “중학교 때 진짜 재밌게 놀았는데!” 라고 하자, “중학생이 어떻게 놀아~?” 그는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나긋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리의 세계는 자라온 환경부터 많이 다르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는 하루에 넷플릭스 30분 보는 것 외에는 계속 일을 한다고 했다. ‘저렇게 일하니 이런 결실이 오는구나.’
그는 나와 그녀에게 “다음주 금요일에도 와.”라고 다정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가지 않았다. 그의 세계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에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이 집의 웅장함이 주는 위압감이 아니었다. 살아온 궤적과 앞으로 그려나갈 삶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이었다.
1년 뒤, 그는 빌딩 한 채를 구입해 전층을 자신의 꿈으로 채웠다. 우리 셋은 그를 축하하기 위해 다시 만났다. 그녀는 그가 설계 중인 세계를 보고 싶다며 옥상에 가보자고 말했다. 그는 와인셀러에서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을 한 병 챙겨들었다. 그를 따라 올라간 옥상은 텅 빈 공터.
“난 이곳에 연인들을 위한 로맨틱한 루프탑을 만들거야. 저기 남산타워를 보면서 좋아하는 음식이랑 와인을 마시는 거지. 비가 와도 올 수 있도록 벽은 유리창으로 투명하게. 저쪽 벽면을 봐. 영화가 흘러나올거야.”
그는 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빛으로 꿈을 이야기한다.
“난 이곳을 우리나라 관광의 메카로 만들고 싶어. 상권을 살려서 예전의 영광을 되찾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텅 빈 옥상에서 와인 한 모금, 그의 꿈 한 소절. 낭만 한 스푼. 그는 가슴을 뛰게 하는 꿈에 매료된 듯이 보였다. 나는 꿈을 꾸는 어른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꿈을 말했던 때가 언제더라. 지금 나에겐 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나.
그가 꿈을 이뤄가고 있던 때, 나는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었다. 뒷담화와 위선을 오가며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아부와 통제욕을 넘나드는 나르시스트들, 분노조절장애자들의 무례함 사이에서 나는 인간 자체에 대한 혐오감이 일었다. 인간이 원래 그렇지, 하고 체념하면서 그들과 같은 모습이 되는 내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 무서웠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도망치고 도망쳐도 결국 제자리인 것 같은 삶 속에서 순수하게 꿈을 말하는 그의 눈빛은, 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빛이었다.
어느날의 나는 한없는 괴로움에 잠겨 술기운을 타고 마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말없이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슬픔과 어떤 분노를 머금은 듯한, 상처받은 소년의 눈빛으로 말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기엔, 네가 너무 아까워.”
나는 순간, 아득해진다. 나보다도 나를 더 가치있게 여겨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오랜시간 나를 봐온 사람이 해준 말이라는 사실이 뭉클했다. 마치 죽을 것처럼 힘들어서 떠났던 이탈리아 여행에서 한 세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눈물이 흐르던 순간 같았다.
그는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모두에게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 사업을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성적이고 냉철했겠지만 우리에게만큼은 다정한 안식처를 주는 사람이었다. 소년의 눈빛으로 꿈꾸는 어른. 그가 꿈을 속삭였던 목소리로 내가 나에게 되뇌여본다.
‘그래, 그런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기엔 내가 너무 아깝지.’
그날 이후로 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한다. 그러면 왠지 자신감이 붙는 것 같기도 하고 당당해진다. 덕분에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몇 번이나 나를 구해낼 수 있었다. 한 번 웃고, 나직한 목소리로 할 말 다 하고. 다시 미소 짓는다. 너를 이겼다는 승자의 미소가 아니라, 내 존엄성을 지켜냈다는 안도감의 미소다. 나날이 미소가 느는 것 같다.
그의 꿈은 이제 도쿄를 향하고 있다. 열심히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다며 새로운 꿈을 말하는 눈빛에서 또 한번 소년이 보인다. 나도 저렇게 반짝이고 싶다고, 소녀처럼 꿈꾸고 싶다고 생각하며 싱긋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