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호숫가에 지은 별장에서

by 파롤

마음속에 품고 사는 내가 있다. 커피우유 하나로 얼굴에 생기가 돌고, 엉뚱하고 웃기지만 사랑과 동경이 가득했던 시절이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17살. 우리 학교는 동아리가 많았는데,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는 문예부에 들어갔다. 첫 모임날. 장소는 소각장 옆에 있는 어두운 창고 안.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조폭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기합을 받았는데 선배들은 다음달에 OO남고와 데면식을 해주겠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한달동안 기합만 받다가 ‘전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탈퇴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문예부는 결국 폭력사건이 터져 해체되었다.)


‘비록 문예부에서 글쓰는 로망은 사라졌지만 찾아보면 길은 있다! 친구들하고 소설 잡지를 만들어볼까?’라는 생각을 하며 걷고 있는데 교문 앞에서 신문편집부 모집 포스터를 봤다. 글을 쓸 기회를 찾고 있던 나에게 이건 기회였다!


사실 그동안 신문편집부는 따로 부원 모집을 하지 않았다. 국어 전교 1등, 전국 백일장 대회에서 수상실적이 있는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바로 윗 선배들이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우리들의 후배를 왜 우리가 뽑지 못하느냐, 우리가 직접 글을 보고 뽑겠다! 라고 이의를 제기하였고 선생님들이 받아들여서 처음 열린 신문편집부 부원 모집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귀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과거시험 치르듯 글을 썼다.


꿈은 이루어진다! 나는 결국 합격했다. 동기는 3명. 우리반 1등이랑 연예인 지망생인 친구였다. 그리고 2학년 선배는 3명이었는데 모두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난 친구들에게 선배들을 설명하기 위해 별명을 지어줬다. 재주가 만능이라 ‘만’선배, 최연소 시나리오 작가로 뽑혀서 ‘시’선배, 안경을 써서 ‘안’선배였다.


‘만’선배는 인형처럼 예쁜 외모에 재능이 많아서 동아리를 무려 5개를 하고 있었다. 학생회 부회장, 관현악부, 밴드부, 신문편집부, 댄스부. 공부도 잘하고 예쁘고 친절하고 저렇게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다니. 엄친딸 같은 캐릭터다. 지금 떠올려보니, 소녀시대 윤아를 닮았다.


우린 같은 중학교를 나와서 신문이 발간되면 함께 모교에 가서 신문도 드리고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남고를 가기도 했는데,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일제히 창문이 열리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교무실에 가기 위해 복도를 걷는데 이번에도 교실마다 창문이 열리며 남학생들이 매달려 바라봤다. ‘만’선배의 아름다움이 이 정도였다.


하도 다재다능한 선배라 대학교는 어떤 과를 갈지 궁금해서 버스 안에서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평소의 여름초록 같던 표정이 순간 가을빛으로 변했다. 생각에 잠긴 듯, 긴 속눈썹이 깊은 아우라를 드리웠다.


“윤슬아, 난 사회학과를 가려고 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뜻밖이었다. 물론 우리가 신문편집부에서 만나긴 했지만 워낙 연예인처럼 화려해보여서 사회학과는 매칭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사람이구나.’ 나는 말없이 선배의 손을 바라봤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을, 고운 손이었다.


‘시’선배는 차분하고 생각이 깊은 타입이다. 편집부실에 항상 제일 먼저 와서 뉴스위크지를 읽고 있었다. 난 늘 두번째로 도착했는데 선배는 내가 오면 함께 청소를 시작했다. 한 번은 청소를 하다가 선배가 내게 “윤슬아, 너 천재야?’라고 물었다. 난 깜짝 놀라서 “아니에요! 저 둔재에요”라고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선배는 “아~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길래 내가 수줍게 물어봤다. “근데.. 제가 왜 천재 같아요?” 라고 하자 선배가 빵 터지며 “아니, 첫째냐고. 내가 왜 너한테 천재라고 하겠어. 근데 너 둘째라며~”라고 말했다. 민망해진 나는 “아~ 전 잘못 알아들어서 둔재라고 말씀드린 거에요.”라고 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우린 항상 함께 동기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편집부라는 공간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안’선배는 OO대학교 백일장 대회에서 3등을 했다고 한다. 성격은 엉뚱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등교하면 나와 친구들은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커피우유를 마시며 수다를 떨곤 했는데, 갑자기 내 뒤에서 나타나서 “윤슬아 안녕!”하며 커피우유를 건네주곤 했다. 매점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유 하나 사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선배는 내가 좋아하는 우유 취향까지 알고 서프라이즈 선물을 해주고 가는 것이다. 교내를 걷다가도 나를 발견하면 항상 먼저 다가와서 밝게 인사를 해주었다. 문예부 선배들은 빅브라더처럼 여기저기서 감시하고 있다가 인사 안했다고 불려가서 기합받고 그랬는데. ‘안’선배가 가고 나면 친구들이 나를 부러워하며 말했다. “저런 선배도 있어?”


나는 선배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들과 함께 회의를 하면 ‘와, 저렇게 생각이 넓고 깊구나!’ 하는 동경심이 들었다. 고작 1살 차이였는데, 선생님 같았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고, 지시하거나 강요한 적도 없었다. 늘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해 있었고 우리에겐 친절했다.


고3이 되자 선배들은 입시 준비를 위해 편집부를 떠났다. 애정이 깊었던 만큼 발걸음이 무거워보였다. 우리 동기와 후배들이 만든 첫 신문이 나오자 선배들이 다 같이 한번 모이자고 한 적이 있다. 기사에 대한 합평을 하며 자신들과 만들었던 신문에서 변한 게 없다고, 더 나은 신문을 만들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머리를 맞대었다. 편집부실이 아닌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우린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공부하기도 모자란 시간을 쪼개어,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모여준 선배들이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난 선배들을 닮고 싶었다. 만선배의 사랑스러움과 상냥함, 시선배의 배려심과 넓은 시야, 안선배의 유쾌한 다정함을 배우고 싶었다. 그 중 한가지만이라도 닮는다면 성공이다!


그렇게 노력하는 동안 내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슈렉 고양이 같은 눈으로 선배들을 바라보며 친구들한테 자랑하기 바빴다. 후배들에겐 엉뚱하고 웃긴 선배였다. 졸업식날, 후배들이 써준 롤링페이퍼와 엽서묶음은 내 3대 보물 중 하나다. 어느날, 털썩 주저 앉는 순간이 왔을 때 쇼파처럼 포근하게 지지해주는 마음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년. 나는 자랑스러운 선배들 덕분에 사랑스러운 후배들과의 추억까지 층층이 쌓였다. 내 인생에서 윤슬처럼 반짝이는, 마음속 호수 가까운 곳에 지어놓은 별장 같은 시간이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선배들이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다시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사회생활로 이어진 이후에도, 나는 그들같은 사람들은 다시 만나보지 못했다. 현실은 문예부 선배 같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고, 나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은 지나간 시절의 이상향으로, 마음속 비밀별장의 그림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도, 내가 너무 불운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학창시절의 내가 너무 행운이었을 뿐. 삶이 힘들 때마다, 사람한테 상처받을 때마다, 고등학교 때 행복을 너무 땡겨썼다고 생각하며 웃어 버린다. 그래도 아프면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보고 싶어서 마음속 별장에 놀러간다. 쇼파에 몸을 한없이 늘어뜨리고 앉아 그림을 본다. 보고 또 보고, 봐도봐도 좋은 사람들. 그렇게 행복을 충전하고 일어나자,


‘기회는 또 온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분명히 또 만날 수 있다!’


오늘의 나를 아껴주고 싶은 마음에게, 어제의 내가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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