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루는 57%의 T와 43%의 F성향을 가지고 있다. 7%의 차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향으로 끌어당기고 싶은 묘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나보다.
“여러분! 혜루님이 T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죠!”
F 그 자체인 사람은 혜루가 확신의 F라 주장하고, T 성향이 99%인 사람은 혜루에게서 자신이 보인다고 한다. 대부분은 F라고 주장한다. 이런 설왕설래 속에서 의사선생님이 조용히 말한다.
“본인이 T라는데..”
왜 저렇게 말들이 많냐는 말을 한숨으로 대신한다. 혜루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은 그녀의 말을 한번 되뇌여본다.
‘그래.. 내가 T라는데. 99%의 T도 아니고 확신의 F도 아니고 그냥 57%의 T.’
이번엔 사람들이 혜루에게 맛있는 양꼬치 집을 추천하며 가라고 말한다. 혜루가 “양꼬치 안좋아해요.”라고 말하자 “맛있는 양꼬치를 안먹어봐서 그래. 이번에 맛있는 양꼬치를 먹어봐”, “양꼬치 안먹으면 꿔바로우 먹으면 되지.”, “양갈비도 맛있어.”
모두가 몰려들어 혜루에게 양꼬치 집에 가라는 말을 반복하자, 혜루가 웃으면서 말한다.
“나라면.. 양꼬치 좋아하는 사람한테 맛집에 가보라고 할 것 같은데.. 양꼬치를 안 좋아하는 사람한테 굳이 가라고 하는 게 이해가 안되요.”
사람들이 혜루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멈춘다.
혜루는 직업 특성상 미팅이 많아 원피스와 같은 오피스룩을 많이 입는다. 커뮤니케이션 할 일이 많아 말은 정확하고 정돈되게 하는 편. 학창시절부터 책을 소리내어 읽는 습관이 있어 목소리는 아나운서 같다는 얘길 자주 듣는다. 콧소리를 좋아하는 남성에겐 목소리를 바꿔보라는 핀잔도 듣지만 혜루는 그럴 생각이 없다.
외동딸인 혜루는 강아지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달래왔다. 호기심이 넘치는 그녀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선할 것이라 생각하여 다정하게 다가간다. 하지만 혜루가 마주하는 것은 그녀를 자신의 맘대로 해석하여 휘두르려고 하는 사람들. 혜루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려고 하는 그들의 욕망에는 '빈틈없는 친절이 주는 역설적인 만만함’이 존재했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친절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이 사람은 일단 받아준다’라는 잘못된 시그널로 읽힌다. 호의를 권리로 착각한 것. 자기들의 결핍이나 욕망을 쏟아부어도 혜루가 일단은 웃으며 받아줄 거라는 비겁한 확신이 그들을 무례하게 만든다.
그리고 통제 욕구가 일어난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받아주면 내가 이 사람을 휘두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자신이 그런 대상이 됨으로써 이 사람보다 더 우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과시욕에 빠진다. 그래서 더 자신의 옆자리로, 자신이 주도하는 세상으로 끌어당기려고 한다. ‘봐, 이 사람이 날 이렇게 받쳐주고 있잖아.’
그 사람들은 혜루가 T라는 것을 자꾸 부정한다. 그들의 행동과 욕망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 자신의 친절을 누구에게 베풀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체하거나 아니라고 믿어버린다. ‘네가 내 욕망을 관찰하고 있을리가 없어. 넌 내게 친절해야 하는 대상이잖아.’
분석이 끝난 혜루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거울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매를 위로 끌어올려본다. ‘좀더 사납게 생겼어야 했나. T라고 주장하는 대신 그들에게 냉철하게 말할 걸 그랬나.’ 이런저런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도..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그랬다면, 남이 아니라 내가 싫어졌을 것 같네.’
눈매가 다시 제자리를 찾으며 입꼬리도 아래를 향하던 혜루는 문득 생각했다.
‘근데 T가 뭐 어때서. 난 내가 T라서 좋은데! 솔루션을 생각하잖아.’
싱긋!
혜루는 입가에 미소를 띄고 주머니에 있던 살구색 립밤을 꺼내 발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