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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Aug 28. 2020

크리스토퍼 놀란이 돌아왔다

테넷, 2020

3년 만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이 약 33만 명의 연합군을 탈출시키는 전투를 배경으로 삼은 덩케르크(2017) 이후 첫 작품이다. 긴 시간의 공백만큼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궁금해졌다. '테넷(TENET)'이라는 아리송한 제목도 관객의 호기심을 이끈다.

놀란은 물리학자 킵 손의 자문을 받아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의 주제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간이라는 요소를 어느 곳에서도 변하지 않는 상수로 여긴다. 그러나 놀란은 이전 작품 인터스텔라(2014)에서 중력이 시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줬다. 질량을 가진 물체는 공간을 휘고, 그곳에 존재하는 시간의 길이도 바꾼다는 것이다.


우리는 질문을 하고 싶어진다. A가 있는 곳의 중력과 B가 있는 곳이 중력이 다르면, 두 곳의 시간도 다르다. 그럼 다른 시간대가 어떻게 같이 존재하는 것인가?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상대적'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A와 B는 시간이 바뀜을 느끼지 못한다. 그곳의 모든 입자까지도 같이 변하기 때문이다.


놀란 감독의 이번 영화는 그 입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상해보자. 천 원짜리 지폐에 불을 붙이면 재가 될 것이다. 지폐를 구성하는 입자가 바뀌고 불의 에너지는 공간으로 무질서하게 퍼진다. 만약 입자의 움직임과 에너지의 이동을 되돌리는 공식이 있다면, 지폐를 다시 원상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시간 이동 장치에서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동료 닐(로버트 패틴슨)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확장해보자. 지폐가 아니라 죽은 사람의 신체를 되돌린다면 그는 살아나지 않을까? 모든 물질을 되돌릴 수 있다면 자연스레 시간이 되돌려지지 않을까? 영화 속 세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입자와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바꾸고 조정하는 장치인 '회전문'과 기술인 '인버전'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동료 닐(로버트 패틴슨)은 인버전이 '양전자의 이동'으로 가능하다고 밝힌다. 원자는 핵과 전자로 이뤄졌고, 음전하인 전자의 반입자는 양전하를 띄는 양전자다. 전자와 양전자가 만나면 광자로 소멸하는데, "과거의 자신과 마주치면 사라지게 된다"는 그의 경고는 여기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인버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열역학'과 '엔트로피'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열역학은 단어처럼 열의 운동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열역학 1법칙은 형태가 변해도 에너지는 그대로라는 '에너지 보존법칙'이다. 그러나 지폐를 태우면 열에너지는 재가 돼버리지 않고 흩어진다. 이러한 방향성을 '엔트로피'라고 말한다.

내 앞에 있는 동료는 현재의 동료일까 미래에서 온 동료일까?

영화 후반부는 시간의 변수로 인한 갈등으로 채워졌다. 물리학에는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상으로 먼저 일어야 한다는 '인과율'의 원칙이 존재한다. 만약 과거로 이동하여 다른 원인이 발생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결국 기존과는 다른 또 다른 세계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테넷에는 이처럼 수많은 과학적 요소가 뒤섞여있다. 감독 자신이 가졌던 지식과 궁금증에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구성했다. 하지만 결론은 식상했다. 망가진 지구를 살리기 위해 현재를 파괴하려는 미래 세력의 등장, 사랑으로 귀결되는 주인공의 마지막 행동은 인터스텔라의 쿠퍼와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테넷은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다. 웅장한 배경음악과 역동적인 액션, 신속한 전개가 관객의 심장을 쉴 새 없이 쥐락펴락한다. 여기에 'TENET'이라는 아리송한 제목에 숨겨진 과학적 스토리가 잊고 있던 지적 욕구를 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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