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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식 Feb 04. 2021

가리지 않고 매달 10권

늦은 결산 그리고 다짐

해야지 싶었다. 객관화가 되지 않으면 현실을 인식하고 반성하기 어렵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것은 삶에서 많은 영역을 차지하므로 늦더라도 필요했다. 너도나도 올리는 파도 속에 평범한 흔적으로 묻히는 건 싫어서 연말연시에 쓰지는 않았다. 그 소심함은 이제야 사라졌다.


2020년에는 책 33권과 잡지 2종을 보았다. 책 33권 중 국내 작품은 15권, 외국 작품은 18권이다. 문학 부문 10권, 비문학 부문 23권을 읽었다. 9권으로 소설을 가장 많이 소비했으며 다음으로 7권의 자연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문학 영역에서는 국내소설 6권, 외국소설 4권, 국내시집 1권으로 시(詩)를 가장 적게 읽었다. 비문학에서는 자연과학을 제외하고 논픽션 6권, 사회과학 5권, 글쓰기와 에세이 각각 2권과 철학 1권을 보았다. 시집과 철학이 각 1권이라는 결과는 곱씹어 볼 대목이다.

2020년 독서 목록

33권의 제목을 다시 보면서 자체 시상식을 열어봤다. 총 9개 부문으로 나눠 작품을 선정했다. 최고상, 재미상, 슬픔상, 의미상, 여운상, 사회상, 번외상, 과학상, 어렵상 등으로 구분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로 상을 주었지만 누구에게도 추천할 만한 훌륭한 책들이다.


최고상은 <도덕경>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수백 명의 조언보다 성인의 책 한 권이 나은 듯하다'고 표현했다. 노자가 쓴 도와 덕에 대한 경전인데 평온과 행복을 유지하는 가르침을 전해준다. 여러 지인에게 선물할 정도로 인상이 깊었던 책이다.


재미상은 식물학자 호프 자런이 쓴 에세이 <랩 걸>이다. 그가 과학자로 성장하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작가 유시민이 딸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고른 작품이기도 하다. 투쟁을 마다하지 않고 삶을 개척해 나가는 지은이의 모습이 무척 멋있게 다가왔다.


슬픔상은 노인 경비원 조정진 씨가 쓴 <임계장 이야기>다. 고령 노동자의 참혹한 노동 여건과 그들을 대하는 무자비한 사회상을 마주하면서 며칠을 분노했다.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이 악이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은 진리였다. 지난 10월 저자는 강제추행 혐의로 피소당했다는 소식도 붙인다.

나를 비우는 것이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

의미상은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 정치 전문가 세 명이 함께 저술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이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는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다. 주거, 복지, 일자리 걱정이 없는 그들의 나라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늘 궁금했다. 북유럽의 정치∙사회 시스템을 알려주는 작품이다.


여운이 길었던 작품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왜 명작인지 느끼는 데는 시일이 필요했다. 물고기를 얼마나 잡느냐에 관계없이 항상 어구를 손질하고 바다로 떠난다는 노인을 보면서 깊은 삶의 철학을 얻었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었다. 태도였다.


사회적으로 유익했던 책은 <세습 중산층 사회>다. 갈수록 양극화는 극심해지고 부의 대물림은 더욱 공고해지는 대한민국이다. 어떤 정책도 정권도 그 견고한 틀을 바꾸지 못하는 비극적인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비즈 기자이자 서강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전문가다.


과학상은 아이뉴턴에서 발행한 <상대성 이론>이다. 큼직하고 색깔이 다양한 그래픽은 어려운 이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했다. 시간의 상대성, 일반 상대성과 특수 상대성의 차이, 등가원리, 광속불변, E=mc2 등등 관련 지식을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하란 말이야.

가장 어려웠던 책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다. 감옥, 감시, 처벌을 심층적으로 고찰한 책인데 개인적으로 상대성 이론보다 더 힘겨웠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모든 신체와 정신을 관리당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현대인이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번외상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다. 언론인 출신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저자는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과거를 그려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그의 글은 르포르타주의 한 전형으로 자리매김한 것처럼 보이며 매우 인상적이다.


1년을 33권으로 나누면 11일이다. 한 달에 약 3권쯤 읽은 셈이다. 적어도 일주일에 책 하나는 봐야 하는데 조금은 빈약하다. 그중 외국 작품은 18권 이상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국내 출판물을 적게 읽은 만큼 우리말과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이 빈곤해졌다.


2021년 2월부터는 다시 시작한다. 독서량을 늘리라는 선생님의 조언에 더 충실할 계획이다. 국내 서적의 탐독을 확장하고 시집과 철학서에 더 관심을 둘 생각이다. 이를 바탕으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처럼 '가리지 않고 매달 10권'을 읽는 것이 올해의 표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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